혜충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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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충태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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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
| 휘 | 인겸 |
| 신상정보 | |
| 출생일 | 750년경(?) |
| 사망일 | 791년/792년 1월 |
| 국적 | 신라 |
| 경력 | 태자 |
혜충태자(惠忠太子, 750년경(?) - 791년/792년 1월)는 신라하대의 왕족, 왕태자로 본명은 인겸(仁謙)이다. 신라의 제38대 원성왕의 장남이다. 소성왕, 헌덕왕, 흥덕왕, 김충공의 아버지이자 애장왕, 김체명, 민애왕의 할아버지이다.
원성왕 즉위 후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791년 또는 792년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혜충(惠忠)이고, 800년 소성왕 즉위 후 왕으로 추봉되었다.
생애
[편집]아버지는 원성왕이고, 어머니는 각간(角干)을 지낸 김신술(金神述)의 딸 연화부인(蓮花夫人)이다. 동생으로 헌평태자(憲平太子) 의영(義英)과 혜강태자 예영(惠康太子 禮英)이 있다. 785년(원성왕 1)에 왕태자로 책봉됐으나, 791년 1월 또는 792년 1월에 왕위를 잇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그가 죽은 뒤 왕태자에 봉해진 의영도 일찍 죽어 헌평의 시호를 받았고, 셋째 아들인 예영도 왕태자로 임명되었으나 곧 죽었다. 결국 795년 당시 병부령으로 있던 혜충태자의 큰아들 준옹(俊邕)이 태자가 되고, 798년에 원성왕이 죽고 왕위를 계승하였다. 798년 소성왕이 즉위하자 혜충왕(惠忠王)으로 추증되었다. 그리고 애장왕 때에는 5묘(五廟)에 배향되었다. 그의 이른 죽음으로 신라의 왕위계승상 인겸의 후손들과 셋째 동생 예영의 후손들 사이에 왕위쟁탈전이 일어나 정치가 혼란해졌다.
가계
[편집]인겸계 왕통
[편집]김인겸계는 하대 신라 초기 왕위를 독점한 왕통이었다. 인겸의 네 아들은 모두 국왕으로 즉위하였거나(소성왕 · 헌덕왕 · 흥덕왕) 왕위 계승자(태자)로 공인되어(선강태자 충공) 김인겸 역시 소성에서 애장 · 헌덕 · 흥덕· 희강 · 민애 다섯 조정에 이르는 동안 오묘에 부묘되어 당시 왕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다.
소성왕 사후 즉위한 애장왕의 친정은 인겸계 내에서 소성왕 직계와 인겸계 방계 왕족들 간의 분열과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였고, 이 갈등과 대립은 김언승과 제옹이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대 초기 정치에서는 중대와 달리 외척들의 정치 참여가 두드러지지 않는데, 이는 원성 이래 왕실 친족 집단 구성원 중심의 정국 운영에 더하여 인겸계의 근친혼에 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원성왕이나 김인겸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뒤 하대 초기 왕실은 분지화된 가계를 단위로 분열하고 대립하였다. 인겸계의 근친혼도 국왕 직계와 방계 왕족 간의 갈등을 불러왔고, 다른 진골 귀족과 왕실을 고립시켰다.
민애왕이 죽은 뒤에 예영-균정계의 김우징이 즉위하면서 인겸계 왕통은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