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문 (고려)
혜문(惠文: ?~1234년)은 고려의 승려이다. 자(字)는 빈빈(彬彬), 호(號)는 월송화상(月松和尙), 속성은 남, 본관은 고성이다.[1]
생애[편집]
30세가 넘어 승과(僧科)에 뽑혔고, 여러 번 계급을 거쳐 대선사(大禪師)에 이르렀다.[1]
1232년(고종19)에 화악사에 머물렀고 수도 개성에서 보제사(普濟寺)에 우거(寓居)하면서 불법을 전하기도 했다. 이 해에 조정에서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강화천도). 보제사도 몽골의 침략을 받았기 때문에 운문사로 가서 3년을 지낸 뒤인 1234년(고종21)에 사망했다.[1]
사람됨이 강직했고 이름난 사대부들도 그와 교류가 많았다.[1] 이인로(李仁老)·이규보(李奎報)·최종선(崔宗善)·유충기(劉冲基) 등이다.[2] 이규보는 20세 시절부터 그와 교류했으며,[1] 서신을 주고받기도 했다.[3] 또한 그의 시에 차운하기도 했다.[4] 이인로도 그를 위해 시 한 수를 보내주기도 했다.[5] 또한 시를 짓는 것을 좋아해 산인(山人)의 체를 얻었다.[1] 《동문선》에 시 한 수[6]가 수록되어 있다.
전기 자료[편집]
-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전집〉37, 문선사의 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