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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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
혜능의 미라. 1960년대에 문화대혁명으로 홍위병들이 미라를 훼손하기 전에 찍은 사진.
출생638년
중국 광동성 신주
입적713년
광동성 신흥현 국은사
속명노씨(盧氏)
칭호육조혜능

혜능(慧能, 638년~713년)은 당나라(618~907) 시대의 선승이며, 선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선종(禪宗)의 제6조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이다.(남종선 6대 조사)[1] 스승은 5조 홍인으로, 북종선의 시조인 신수(북종선 6대 조사)와 같은 스승 아래서 공부했다.

육조대사 또는 조계대사(曹溪大師)라고도 한다. 입적한 지, 100여년이 지난 816년에 대감선사(大鑑禪師)라고 시호되었다.[2] 조계혜능으로도 부른다.[3]

대한민국 불교종파인 조계종,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에서 조계라는 두 글자는 모두 혜능이 머물렀다는 조계에서 따온 단어들이다.[4]

혜능의 직계제자 중에는 아들 뻘로는

이러한 직계제자(아들 뻘)들에서 뻗어나간 손자 뻘 이상의 제자까지 합친다면

혜능 vs 신수[편집]

혜능은 신수보다 나이가 32살이나 어렸고, 신수는 측천무후를 비롯한 당나라 황제 3명의 국사였으므로 생전에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치였다. 그러나 732년 활대 대운사 무차대회에서, 수만명이 모인 가운데 하택신회가 단박에 깨닫는 돈법(남종선)으로 점차 깨닫는 점법(북종선)을 논쟁에서 압도함으로써, 비로소 남종선이 북종선에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6]

하택신회는 당나라 황제 덕종이 공인한 7대 선사가 되었고, 이로써 혜능은 사후 30년이 지나 공식적인 6대 조사로 인정받게 된다. 하택신회가 오늘날 혜능의 지위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더욱이 하택신회는 원래 신수의 제자이기도 했었다.[7]

그러나 당시 혜능에게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것 같다. 혜능이 하택신회에게 조계의 뜻을 물었지만, 하택신회는 대답하지 못하고 몸만 흔들 뿐이었다. 그러자 혜능은 아직도 하택신회가 기와쪽이 막혀서 쓸모없다고 말해버렸다. 다시 하택신회가 "왜 요즘 사람들에게 진짜 금(깨달음)을 주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혜능은 "그대에게 준다한들 어디에 쓰겠냐"고 답해버렸다.[8]

생애[편집]

가난한 나무꾼[편집]

혜능의 아버지는 본관이 범양(范陽)이었다. 그러나 좌천되어 영남(嶺南)의 신주(新州)로 와서 살았다. 혜능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는 남해로 왔다. 가난에 시달리며 나무를 해서 땔나무를 장터에 팔았다.[9]

<금강경>을 한 번 듣고는 깨치다[편집]

어느 날, 손님이 땔나무를 사서 혜능이 관숙사(官宿舍 : 관리들이 묵는 여관)에 가져다 주고는 돈을 받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손님이 <금강경>을 읽고 있었는데, 혜능이 한 번 듣고는 마음이 밝아지고 문득 깨우쳤다.[10]

혜능은 손님에게 어떻게 <금강경>을 가지고 읽게 되었냐고 물었다. 손님은 기주 황매현 동빙무산에서 오조 홍인대사를 예배하고 오는 길인데, 그는 1,000명을 거느리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고 하였다. 또한 홍인대사는 사람들에게 <금강경> 1권이면 곧 자성을 보아 부처를 이룰 수 있으니 지니기를 권한다고 하였다. 혜능은 어머니에게 하직인사를 드리고 홍인대사를 만나러 떠났다.[11]

오조 홍인대사를 만나다[편집]

혜능은 기주 황매현 동빙무산으로 찾아가서 오조 홍인대사를 만나 예배를 올렸다. 홍인대사는 혜능에게 어디 사람인지, 자신에게 무엇을 구하는지 물었다. 혜능이 스스로 소개하기를 자신은 영남의 신주 백성이며, 부처님 되는 법을 구한다고 하였다.[12]

홍인대사가 갑자기 꾸짖으며 영남사람은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냐고 하였다. 혜능이 말하길, 사람에게는 북쪽사람과 남쪽사람이 있지만, 부처의 성품에는 남과 북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혜능은 다시 남쪽 오랑캐(남쪽사람인 혜능 자신)의 몸은 스님(북쪽사람인 홍인대사)의 몸과 같지 않겠지만, 부처의 성품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냐고 반문했다.[13]

오조 홍인대사는 혜능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주위에 사람이 많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행자를 시켜, 혜능에게 방아를 찧게 하였다.[14]

홍인대사가 게송을 짓게 하다[편집]

혜능이 8달 정도 방아를 찧었을 때였다. 오조 홍인대사가 문인(부처가 되 공부를 하는 사람)을 모두 모아놓고는 게송을 지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지어온 게송을 읽어 보고 깨우쳤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가사(스님 옷)와 법을 물려주어, 육대조사(육조)가 되게 해주겠다고 하였다.[15]

이때, 오조 홍인대사의 제자 중에 가장 높은 상좌가 신수(神秀)라는 승려였다. 다른 승려들은 어차피 자신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신수이므로, 당연히 신수가 오조 홍인대사를 이어 육조대사가 될 것이니 게송을 짓지 말자고 했다.[16]

상좌 신수의 게송[편집]

신수는 다른 승려들이 자신때문에 게송을 바치지 않음을 알았다. 그러나 신수는 자신이 육대조사의 자리를 넘보는 것은, 일반인이 성인의 지위를 넘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17]

하지만 게송을 짓지 않으면 오조 홍인대사가 자신의 견해가 깊은 지, 얕은 지를 알 수 없으로 게송을 짓지 않으면 법을 얻지 못할 것이 두려웠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신수는 삼경(23시~1시)이 되는 야심한 시각에 몰래 게송을 적어놓고 오기로 했다.[18]

그리고 신수는 만약 오조 홍인대사가 자신의 게송을 보고도 가사와 법을 물려주지 않으면, 자신의 전생업장이 두꺼워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성인의 뜻은 원래 알기 어려운 것이라고 위로하며, 삼경에 남쪽 복도 벽 중간에 몰래 다음 게송을 적었다.[19]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아무도 신수가 위의 게송을 적는 것을 보지 못했다.[20]

오조 홍인대사가 신수의 게송을 평가하다[편집]

오조 홍인대사가 신수의 게송을 보고는 문인들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는 게송을 평가하기를, 이를 외우면 자성을 보고 타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른 문인들이 다들 외워보고는 신수에 대한 공경한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21]

오조 홍인대사는 신수를 몰래 방으로 불러, 신수가 지은 것이 맞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만약 신수가 지은 것이라면, 자신의 법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수가 부끄러워 하며, 자신이 지었으나 감히 육대조사의 자리를 얻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자비롭게 봐달라고 하였다. 자신이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큰 뜻을 알았겠냐며 겸손을 보였다.[22]

그러자 오조 홍인대사는 신수에게 당도는 했으나, 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고 문 앞에 있다고 하였다.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서 문 안으로 들어와서 자성을 본다면, 가사와 법을 물려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신수는 게송을 짓지 못했다.[23]

혜능이 몰래 게송을 적다[편집]

한 동자가 방앗간을 지나며, 신수가 적었던 게송을 외우고 있었다. 혜능이 이를 듣고는 동자에게 무슨 게송이냐고 물었다. 동자가 말하기를 이 게송은 신수가 지은 것인데, 오조 홍인대사가 이 게송으로 수행하면 죽음을 벗어난다고 말했다고 했다.[24]

혜능은 신수의 게송이 견성도 깨닫지도 못한 것임을 바로 알았으나, 짐짓 자신도 부처님의 나라에 나고 싶으니 신수의 게송이 적혀 있는 남쪽 복도로 데려가 달라고 하였다. 동자가 혜능을 남쪽 복도로 데려갔고, 혜능은 게송에 예배하였다. 혜능은 글을 읽을 줄 몰랐으므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을 불러 다시 신수의 게송을 들었다. 혜능은 대강의 뜻을 알고는 자신이 게송을 지어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서쪽 벽에 다음 게송을 써달라고 하였다.[25]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요.

혜능은 또 다음 게송을 적어달라고 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사람들이 몰려 들어 혜능의 계송을 보고는 놀라면서도 괴상히 여겼다. 오조 홍인대사가 나와 혜능의 게송을 보고는 바로 큰 뜻임을 알아보았으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이것도 아니라고 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26]

혜능이 법을 물려받아 육대조사가 되다[편집]

그날, 삼경(23시~1시)이 되자 오조 홍인대사는 급히 혜능을 불렀다. 그리고는 <금강경>을 설해주었다. 혜능은 1번 듣고, 말 끝에 문득 깨우쳤다. 오조 홍인대사는 단박에 깨치는 법인 돈법(頓法)과 가사를 물려주며, 혜능에게 이제 육대조사가 되었다고 말하며 그 징표가 가사라고 말했다.[27]

그리고 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되, 물려 받는 사람이 스스로 깨우치도록하라고 당부했다. 또한 사람들이 혜능을 해칠까하여(까막눈에다 절에 들어온지 8달 밖에 안 되었으므로 질투를 하므로), 빨리 떠나라고 하였다. 밤중에 떠나는 혜능을 오조 홍인대사는 몸소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남쪽으로 가서 계속 노력하고, 환란이 일어난 것이니 3년 동안은 법을 펴지 말라고 했다. 혜능은 오조 홍인대사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남쪽으로 떠났다.[28]

혜능을 쫓는 사람들, 16년을 숨어지내다[편집]

혜능은 남쪽으로 길을 떠난 지 2달이 되어서,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다. 그런데 사실 혜능은 몰랐지만, 그동안 수백명의 사람들이 혜능을 뒤쫓고 있었다.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법을 빼앗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혜능을 따라 잡지 못하고 길을 반정도 왔다가 돌아갔다.[29]

하지만 삼품장군의 후손인 진혜명(陳惠明)이라는 승려는 집요하게 혜능을 뒤쫓고 있었다. 그는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하기로 유명하였다. 그가 대유령 고개마루까지 와서 혜능을 덮치려고 하였다.[30]

혜능이 곧 가사를 돌려주었으나, 혜명이 말하기를 자신이 혜능을 뒤쫓은 것은 가사를 탐한 것이 아니라, 법을 구하기 위함이었다고 하였다. 혜능이 고개마루에서 혜명에게 법을 전하자, 혜명은 말끝이 마음이 열렸다. 혜능은 혜명에게 북쪽으로 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하였다.[31]

이후 혜능은 남방으로 가서 16년을 숨어지냈다. 혜능은 나이가 39세가 되자 법을 널리 설할 시기가 되었음을 알고는 정처없이 떠돌기 시작했다.[32]

인종대사가 혜능의 제자가 되다[편집]

떠돌던 혜능은 광주의 법성사에 이르렀다. 마침 인종대사가 행자 수백 명을 거느리고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가 깃발이 펄럭였는데, 행자 2명이 이를 가지고 싸우기 시작했다.[33]

한 명은 깃발이 움직인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한 명은 바람이 움직인 것이라고 했다. 이내 모든 행자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져 싸우기 시작했다. 이때, 혜능만 빙그레 웃고 있으니, 대표 행자 2명이 와서 혜능에게 판단을 맡겼다. 혜능은 이건 깃발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인 것도 아니며, 스님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고 했다.[34]

인종법사는 이 말에 감동을 하여 혜능이 육조대사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인종법사는 혜능에게 절을 올리고, 혜능의 머리를 밀어주었으며, 스스로 제자가 되어 혜능을 스승으로 모셨다.[35]

조계(曹溪)[편집]

이듬해 혜능은 남쪽 조계산에 보림사(현재는 남화사)를 짓고 36년간 법을 펼쳤다. 보림사가 있는 마을에는 조(曹)씨 들이 많이 살았는데, 마을 입구에 흐르는 개울이 조계(曹溪)였다. 혜능이 36년간 이곳에 머물자 조계는 혜능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혜능의 시신을 그대로 모신 진신육신상이 있다.[36]

육조단경의 바탕이 된 대범사 설법[편집]

혜능이 워낙 유명해지자 소주자사 위풍이 혜능을 대범사 강당으로 모셔 설법하게 하였고, 이를 문하생인 법해가 기록하는데 이것이 나중에 육조단경으로 편집되게 된다.[37]

관직을 거부하다[편집]

이후 설법으로 유명해지자, 당나라 측천무후와 아들인 중종이 관직을 내렸으나 사양하였다.[38]

입적을 하고 시호를 하사받다[편집]

713년 국은사(國恩寺)에서 입적하면서 제자 10명을 불러서, 단경을 읽으면 자신을 만나는 것과 같다며 단경을 이어받게 했다.[39]

혜능이 입적하고 100여년이 지난 816년에 대감선사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후 대감진공선사, 대감진공보각선사, 대감진공보각원명선사라는 시호가 계속 내려졌다.[40]

법맥[편집]

중국 선종의 1대부터 5대 조사는 1대 달마 → 2대 혜가 → 3대 승찬 → 4대 도신 → 5대 홍인이다.[41] 선종은 혜능으로부터 융성했다.

앞의 생애항목에서 보았듯이, 5조 홍인대사에게는 상좌 신수와 가사와 법을 물려준 혜능이 있었다. 신수(神秀: ?~706)로 이어진 선을 북종(北宗) 또는 북종선(北宗禪)이라고 하고, 혜능으로 이어진 선을 남종(南宗) 또는 남종선(南宗禪)이라 한다.[42]

남종선은 돈오(頓悟)를, 북종선은 점오(漸悟)를 주장하여, 흔히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 하였다. 남종선은 단박에 깨닫고, 북종선은 점차적으로 깨닫는 다는 뜻이다.[43] 북종선은 신수 이후 2~3대가 지나자,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44]

혜능대사를 하나의 꽃에 비유한 일화오엽(一花五葉)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혜능대사라는 하나의 꽃에서 선종의 다섯 종파가 나왔기 때문이다.[45]

선종의 다섯 종파를 보면, 다음과 같다.[46]
1. 위앙종 : 남악회양마조도일백장회해위산영우앙산혜적
2. 임제종 : 백장회해임제의현
3. 조동종 : 청원행사석두희천동산양개조산본적
4. 운문종 : 운문문언
5. 법안종 : 법안문익

이후 북송시대가 되면 총 7종이 된다.
6. 양기파 : 임제종의 석상초원양기방회
7. 황룡파 : 임제종의 석상초원황룡혜남

다른 용어로 5가7종(五家七宗)이 있는데, 이는 남종선의 번성을 보여준다. 5가는 위앙종, 임제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을 말하고, 7종은 위에서 언급한 7종을 말한다.[47]

게송[편집]

마음의 땅이 뜻의 씨앗을 머금으니
법의 비가 꽃을 피운다.
스스로 꽃 뜻의 씨앗을 깨달으니,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는도다.[48]

저서[편집]

육조단경[편집]

혜능의 대범사 설법을 문하생인 법해가 기록하였고, 이를 편집하여 만든 책이다.[49]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을 경전 또는 경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이 아닌 혜능의 설법을 육조단"경"이라고 하는 데서, 혜능이 불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알 수 있다.[50]

육조법보단경 또는 법보단경이라고도 한다.[51]

사진[편집]

그림[편집]

서적 사진[편집]

아래 그림은 메이지 42년(1909년)과 쇼와 3년(1928년)에 촬영된 것이다.

각주[편집]

  1. 류, 동학 (2019년 6월 17일). “[류동학의 인문명리] 육조 혜능의 남종선과 한국 조계종”. 《경북일보》. 경북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인 혜능은 
  2. 변, 희욱 (2007년 6월 5일). “14 혜능과 〈단경〉”.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혜능이 입적한 지 100여년이 지난 816년, 대감선사(大鑑禪師)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3. 장, 영섭 (2007년 8월 16일). “조계혜능 스님(曹溪慧能, 638~713), <단경>”.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조계혜능 스님(曹溪慧能, 638~713) 
  4. 류, 동학 (2019년 6월 17일). “[류동학의 인문명리] 육조 혜능의 남종선과 한국 조계종”. 《경북일보》. 경북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우리나라의 조계종(曹溪宗)이나 조계사 및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도 여기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5. 류, 동학 (2019년 6월 17일). “[류동학의 인문명리] 육조 혜능의 남종선과 한국 조계종”. 《경북일보》. 경북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혜능의 문하 제자 중에는 청원행사·남악회양·하택신회·남양 혜충· 영가 현각이 유명하다. 
  6. 윤, 창화 (2012년 9월 17일). “12. 남종선과 북종선”.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4년 2월 7일에 확인함. 서기 732년 하남성 활대(滑臺) 대운사(大雲寺)에서 수만 명이 모인 가운데 무차대회를 개최하고는 북종을 향하여 “신수는 방계이다. 조계 혜능이야말로 달마선의 정통 조사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동시에 그는 돈오사상을 전개했는데, 이것을 ‘활대(滑臺)의 종론(宗論)’이라고 한다. 스승 혜능을 6조로 세우기 위한 하택의 모험적인 도전이었는데, 역사적인 이 사건으로 인하여 혜능은 입적한지 30년 만에 공식적으로 선종의 제6조가 된다. 
  7. 김, 형규 (2009년 3월 17일). “중국 남종 천하 이끈 하택종 종조”.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4년 2월 7일에 확인함. 처음엔 신수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나, 후에 혜능의 문하로 들어가 
  8. 불교신문, 불교신문 (2003년 8월 27일). “남종선의 거장 행사스님”.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4년 2월 7일에 확인함. 하루는 하택신회(荷澤神會, 668∼760)스님이 와서 절하고 스님에게 도를 물으니, 스님이 말했다. “어디서 왔는가?” 신회스님이 대답했다. “조계에서 왔습니다.” “조계의 뜻하는 바가 어떠하던가?” 신회스님이 아무 대답도 못하고 몸을 흔들기만 하니, 스님이 말했다. “아직도 기왓쪽이 막혀서 쓸모가 없구나.” 신회스님이 다시 물었다. “화상(和尙)은 요사이 진금(眞金)을 사람들에게 주시지 않습니까?” 스님께서, “설사 그대에게 준다 한들 어디에 쓰겠는가?” 하며 신회스님을 눌렀다. 
  9. 혜능, 혜능. 《육조단경》. 2. 尋師 - 스승을 찾아감. 선지식들아, 조용히 들어라. 혜능의 아버지의 본관은 범양(范陽)인데 좌천되어 영남의 신주(嶺南新州) 백성으로 옮겨살았고 혜능은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늙은 어머니와 외로운 아들은 남해로 옮겨와서 가난에 시달리며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았었다. 
  10. 혜능, 혜능. 《육조단경》. 2. 尋師 - 스승을 찾아감. 어느 날 한 손님이 땔나무를 샀다. 혜능을 데리고 관숙사(官宿舍)에 이르러 손님은 나무를 가져갔고, 혜능은 값을 받고서 문을 나서려 하는데 문득 한 손님이 <금강경> 읽는 것을 보았다. 혜능은 한 번 들음에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고, 
  11. 혜능, 혜능. 《육조단경》. 2. 尋師 - 스승을 찾아감. 이내 손님에게 묻기를 "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가지고 읽습니까?" 하였다. 손님이 대답하기를 "나는 기주 황매현(黃梅縣) 동빙무산에서 오조(五祖) 홍인(弘忍)화상을 예배하였는데, 지금 그 곳에는 문인(門人)이 천여 명이 넘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오조대사가 승려와 속인들에게 다만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自性)을 보아 바로 부처를 이루게 된다고 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숙세의 업연(業緣)이 있어서,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12. 혜능, 혜능. 《육조단경》. 2. 尋師 - 스승을 찾아감. 황매의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화상을 예배하였다. 홍인화상께서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에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며, 이제 나에게서 새삼스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제자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짐짓 멀리서 와서 큰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을 구함이 아니옵고 오직 부처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하였다. 
  13. 혜능, 혜능. 《육조단경》. 2. 尋師 - 스승을 찾아감. 오조대사께서는 혜능을 꾸짖으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하셨다.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얼굴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하였다. 
  14. 혜능, 혜능. 《육조단경》. 2. 尋師 - 스승을 찾아감. 오조스님은 함께 더 이야기하시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는 것을 보시고 다시 더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혜능을 내보내어 대중을 따라 일하게 하시니, 그 때 혜능은 한 행자가 이끄는 대로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 달 남짓 방아를 찧었다. 
  15. 혜능, 혜능. 《육조단경》. 3. 命偈 - 게송을 지으라 이르심. 오조 홍인대사께서 하루는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셨다. 문인들이 다 모이자 말씀하셨다. "내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세상 사람의 나고 죽는 일이 크거늘 너희들 문인들은 종일토록 공양을 하며 다만 복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는 괴로운 바다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들의 자성(自性)이 미혹하면 복의 문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아라. 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각기 게송 한 수를 지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六代)의 조사(祖師)가 되게 하리니, 어서 빨리 서둘도록 하라." 
  16. 혜능, 혜능. 《육조단경》. 3. 命偈 - 게송을 지으라 이르심. 문인들이 처분을 받고 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서로 번갈아 말하기를 "우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뜻을 써서 게송을 지어 큰스님께 모름지기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神秀)상좌는 우리의 교수사(敎授師)이므로 신수상좌가 법을 얻은 후에는 저절로 의지하게 될 터이니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하고, 모든 사람들은 생각을 쉬고 다들 감히 게송을 바치지 않았다. 
  17. 혜능, 혜능. 《육조단경》. 4. 神秀 - 신수스님. 상좌인 신수는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게송(心偈)을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오조 스님께서 내 마음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아시겠는가. 내가 마음의 게송을 오조스님께 올려 뜻을 밝혀서 법을 구함은 옳지만, 조사(祖師)의 지위를 넘보는 것은 옳지 않다. 도리어 범인의 마음(凡心)으로 성인의 지위를 빼앗음과 같다. 
  18. 혜능, 혜능. 《육조단경》. 4. 神秀 - 신수스님. 내가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오조 스님께서 내 마음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아시겠는가. 내가 마음의 게송을 오조스님께 올려 뜻을 밝혀서 법을 구함은 옳지만, 조사(祖師)의 지위를 넘보는 것은 옳지 않다. 도리어 범인의 마음(凡心)으로 성인의 지위를 빼앗음과 같다. 그러나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마침내 법(法)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한 참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어렵고 어려우며,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로다. 밤이 삼경(三更)에 이르면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마음의 게송을 지어서 써 놓고 법을 구해야겠다. 
  19. 혜능, 혜능. 《육조단경》. 4. 神秀 - 신수스님. 만약 오조스님께서 게송을 보시고 이 게송이 당치 않다고 나를 찾으시면 나의 전생 업장이 두꺼워서 합당이 법을 얻지 못함이니, 성인의 뜻은 알기 어려우므로 내 마음을 스스로 쉬리라." 신수상좌가 밤중에 촛불을 들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게송을 지어 써 놓았으나 사람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게송은 이르기를, 
  20. 혜능, 혜능. 《육조단경》. 4. 神秀 - 신수스님. 몸은 보리의 나무요(身是菩提樹)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時時勤拂拭)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莫使有塵埃) 신수상좌가 이 게송을 다 써 놓고 방에 돌아와 누웠으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21. 혜능, 혜능. 《육조단경》. 4. 神秀 - 신수스님. 오조스님께서 아침에 노공봉을 불러 남쪽 복도에 '능가변상'을 그리게 하려 하시다가, 문득 이 게송을 보셨다. ~~~ 이 게송을 그대로 두어서 미혹한 사람들로 하여금 외게 하여, 이를 의지하여 행을 닦아서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법을 의지하여 행을 닦으면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니라." 이윽고 홍인대사께서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여 게송을 앞에 향을 사루게 하시니,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므로 오조스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두 이 게송을 외라. 외는 자는 바야흐로 자성을 볼 것이며,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 않으리라." 문인들이 다들 외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말하였다. 
  22. 혜능, 혜능. 《육조단경》. 4. 神秀 - 신수스님. 오조스님이 신수상좌를 거처로 불러서 물으시되, "내가 이 게송을 지은 것이냐? 만약 지은 것이라면 마땅히 나의 법을 얻으리라"하셨다. 신수상좌가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실은 제가 지었습니다만 감히 조사의 자리를 구함이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써 보아주옵소서. 제자가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큰 뜻을 알았겠습니까?"하였다. 
  23. 혜능, 혜능. 《육조단경》. 4. 神秀 - 신수스님. 오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은 이 게송은 소견은 당도하였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없는 보리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안으로 들어와야만 자기의 본성을 보느니라. 너는 우선 돌아가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 다시 한 게송을 지어서 나에게 와 보여라. 만약 문안에 들어와서 자성(自性)을 보았다면 마땅히 가사와 법을 너에게 부촉하리라"하셨다. 신수상좌는 돌아가 며칠을 지났으나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24. 혜능, 혜능. 《육조단경》. 5. 呈偈 - 게송을 바침. 한 동자가 방앗간 평을 지나면서 이 게송을 외고 있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이 게송이 견성(見性)하지도 못하였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이 동자에게 묻기를 "지금 외는 것은 무슨 게송인가?"하였다. 동자가 혜능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너는 모르는가? 큰스님께서 말씀하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전하고자 한다 하시고, 문인들로 하여금 각기 게송 한 수씩 지어 와서 보이라 하시고, 큰 뜻을 깨쳤으면 곧 가사와 법을 전하여 육대의 조사로 삼으리라 하셨는데, 신수라고 하는 상좌가 문득 남쪽 복도 벽에 모양 없는 게송(無相偈) 한 수를 써 놓았더니, 오조스님께서 모든 문인들로 하여금 다 외게 하시고, 이 게송을 깨친 이는 곧 자기의 성품을 볼 것이니,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나고 죽음을 벗어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25. 혜능, 혜능. 《육조단경》. 5. 呈偈 - 게송을 바침. 혜능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서 방아 찧기를 여덟 달 남짓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에 가보질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여 이 게송을 보고 예배하게 하여주게. 또한 바라건대 이 게송을 외어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 하였다. 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 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에 예배하였고, 글자를 알지 못하므로 어느 사람에게 읽어 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듣고서 곧 대강의 뜻을 알았다. 혜능은 또한 한 게송을 지어, 다시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 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 보이었다. 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아야만 곧 큰 뜻을 깨닫느니라. 혜능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26. 혜능, 혜능. 《육조단경》. 5. 呈偈 - 게송을 바침.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菩提本無樹)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明鏡亦無臺)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佛性常淸淨)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요.(何處有塵埃) 또 게송에서 말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心是菩提樹)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身爲明鏡臺)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明鏡本淸淨)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何處染塵埃) 절 안의 대중들이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기므로, 혜능은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오조스님이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시고, 곧 큰 뜻을 잘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하시어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도 또한 아니로다!" 하셨느니라. 
  27. 혜능, 혜능. 《육조단경》. 6. 受法 - 법을 받음. 오조스님께서 밤중 삼경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시었다. 혜능이 한 번 듣고 말끝에 문득 깨쳐서(言下便悟) 그날 밤으로 법을 전해 받으니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이내 오조스님은 단박 깨치는 법(頓法)과 가사를 전하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육대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써 신표로 삼을 것이며, 
  28. 혜능, 혜능. 《육조단경》. 6. 受法 - 법을 받음.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라." 오조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혜능아, 옛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실날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 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떠나라." 혜능이 가사와 법을 받고 밤중에 떠나려 하니 오조스님께서 몸소 구강역까지 혜능을 전송해 주시며, 떠날 때 문득 오조께서 처분을 내리시되 "너는 가서 노력하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 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으리라"하셨다. 이에 혜능은 오조스님을 하직하고 곧 떠나서 남쪽으로 갔다. 
  29. 혜능, 혜능. 《육조단경》. 6. 受法 - 법을 받음. 두 달 가량 되어서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는데, 뒤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쫓아와서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법을 빼앗고자 하다가 반쯤 와서 다들 돌아간 것을 몰랐었다. 
  30. 혜능, 혜능. 《육조단경》. 6. 受法 - 법을 받음. 오직 한 스님만이 돌아가지 않았는데 성은 진(陳)이요 이름은 혜명(惠明)이며, 선조는 삼품장군으로,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하여 바로 고갯마루까지 쫓아 올라와서 덮치려 하였다. 
  31. 혜능, 혜능. 《육조단경》. 6. 受法 - 법을 받음. 혜능이 곧 가사를 돌려주었으나 또한 받으려 하지 않고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을 구함이요 그 가사는 필요치 않습니다"하였다.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문득 법을 혜명에게 전하니 혜명이 법문을 듣고 말끝에 마음이 열이었으므로,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하였다. 
  32. 안, 종국 (2017년 1월 5일). “[행복한 인문학] 스스로가 부처인가? - 혜능과 ‘육조단경’”. 《제주환경일보》. 제주환경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그리고 다른 이들의 위협을 피해 남방으로 가서 숨어 지내기를 16년, 세월이 흘러 혜능의 나이 39세가 되자, 이제 홍법할 시기가 왔음을 알고 의발보따리를 지고 정처 없이 떠돌다 광주 땅 법성사에 들르게 되었다. 
  33. 안, 종국 (2017년 1월 5일). “[행복한 인문학] 스스로가 부처인가? - 혜능과 ‘육조단경’”. 《제주환경일보》. 제주환경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광주 땅 법성사에 들르게 되었다. 이 절에서는 마침 도가 높은 인종법사가 수백 명 행자를 거느리고 열반경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혜능은 맨 뒷자리에 앉아 법사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때는 늦은 여름이라 조는 자도 있었고, 작은 소리로 잡담을 하는 자도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절의 깃발이 펄럭거리니 
  34. 안, 종국 (2017년 1월 5일). “[행복한 인문학] 스스로가 부처인가? - 혜능과 ‘육조단경’”. 《제주환경일보》. 제주환경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인종법사는 강연을 멈추고 그들의 논쟁이 어떻게 끝맺을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혜능이 빙그레 웃으니, 두 행자는 혜능에게 판단을 해달라고 했다. 이에 혜능은“그것은 깃발의 움직임도 아니요, 바람의 움직임도 아닙니다. 단지 두 스님의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35. 안, 종국 (2017년 1월 5일). “[행복한 인문학] 스스로가 부처인가? - 혜능과 ‘육조단경’”. 《제주환경일보》. 제주환경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인종법사는 혜능의 대답이 간략하고 이치가 뛰어난데 감동받고 그가 6조 혜능임을 알아 보았다. 크게 놀란 인종법사는 곧 예를 갖추고 절을 올렸고, 혜능의 머리를 깎아 주고 스스로 제자가 되어 그들 스승으로 모셨다. 
  36. 안, 종국 (2017년 1월 5일). “[행복한 인문학] 스스로가 부처인가? - 혜능과 ‘육조단경’”. 《제주환경일보》. 제주환경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이듬해부터 혜능은 남쪽 조계산에 보림사(현 남화사)를 짓고 36년간 전법을 펼쳤다. ‘조계’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마을에 조(曹)씨들이 많이 살고, 동구에 시내가 흐르고 있다 하여붙여진 이름인데 혜능이 오래 주석함으로써 조계는 혜능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쓰이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조계종’이나 ‘조계사’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온 것이다. ~~~ 이곳에는 지금도 혜능의 시신을 그대로 모신 진신 육신상이 있다. 
  37. 안, 종국 (2017년 1월 5일). “[행복한 인문학] 스스로가 부처인가? - 혜능과 ‘육조단경’”. 《제주환경일보》. 제주환경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혜능이 조계의 보림사에서 선풍을 드날리자 소주자사 위거가 청하여 대범사 강당에서 설법을 하였는데, 이때 강연한 것을 문하생인 법해가 기록하여 편집되어 오늘날 전해지는 단경이 되었다. 
  38. 안, 종국 (2017년 1월 5일). “[행복한 인문학] 스스로가 부처인가? - 혜능과 ‘육조단경’”. 《제주환경일보》. 제주환경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그 이후 30여년간 설법을 통해 명성을 드날렸는데, 측천무후와 당나라 중종은 칙서를 내려 관직을 주려하였으나 혜능은 이를 거부하였고, 
  39. 변, 희욱 (2007년 6월 5일). “14 혜능과 〈단경〉”.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713년 국은사(國恩寺)에서 입적하기 직전, 혜능스님은 열 명의 제자를 불러놓고 이렇게 당부했다. “이후에 법을 전하되 서로가 〈단경〉 한 권을 가르쳐 주어 본래의 종취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단경〉을 이어받지 않는다면 나의 종지가 아니다. 이제 얻었으니 유포하여 행하게 하라. 〈단경〉을 얻는다면 내가 친히 주는 것을 만남과 같다.” (이어 “열 명의 제자들이 가르침대로 〈단경〉을 베껴서 대대로 널리 퍼지게 하니, 얻은 이는 반드시 자성을 볼 것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단경〉 대법) 
  40. 변, 희욱 (2007년 6월 5일). “14 혜능과 〈단경〉”.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혜능이 입적한 지 100여년이 지난 816년, 대감선사(大鑑禪師)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연이어 대감진공선사(大鑑眞空禪師), 대감진공보각선사(大鑑眞空普覺禪師), 대감진공보각원명선사(大鑑眞空普覺圓明禪師)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여졌다. 
  41. 류, 동학 (2019년 6월 17일). “[류동학의 인문명리] 육조 혜능의 남종선과 한국 조계종”. 《경북일보》. 경북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이후 달마는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그의 법은 혜가·승찬·도신·홍인을 거쳐 혜능에게 이어졌다. 
  42. 윤, 창화 (2012년 9월 17일). “12. 남종선과 북종선”.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혜능의 법을 이은 계통을 남종선이라 하고 신수의 계통을 이은 선을 북종선이라고 한다. 
  43. 윤, 창화 (2012년 9월 17일). “12. 남종선과 북종선”.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남종선과 북종선의 사상적 차이는 수증법(修證法, 닦아 깨닫는 방법), 즉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에 있다. 돈오란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최고의 경지까지 깨닫는다는 뜻이고, 점수는 점오(漸悟)와 같은 말로 하나하나 깨달아 올라감, 점진적·단계적으로 수행하여 깨닫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남돈북점(南頓北漸, 남종은 돈오, 북종은 점수)’이라고 한다. 
  44. 윤, 창화 (2012년 9월 17일). “12. 남종선과 북종선”.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반면 대통신수의 북종선은 2∼3대를 지나 뛰어난 제자들이 배출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가르침이 계승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45. 무비스님, 무비스님 (2006년 8월 30일). “[기획연재/무비스님의 명구해설] 무일물(無一物)”.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또한 혜능대사라는 한 송이 꽃에서 선가(禪家)의 오종(五宗)이 온 천하를 뒤덮었다고 하여 일화오엽(一花五葉)이라는 말이 있게 되었다. 한국 선불교의 원류를 혜능스님이 법을 폈던 조계산(曹溪山)에서 찾고 전통불교의 종파 이름을 조계종이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46. 류, 동학 (2019년 6월 17일). “[류동학의 인문명리] 육조 혜능의 남종선과 한국 조계종”. 《경북일보》. 경북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혜능의 문하인 남악 회양-마조 도일-백장 회해의 법손에서 위산영우와 앙산 혜적의 위앙종, 백장 회해-임제 의현의 임제종이 출현한다. 또한 청원 행사-석두 희천의 법손에서 동산 양개와 조산 본적의 조동종, 운문 문안의 운문종, 법안 문익의 법안종이 출현하였다. 북송대에 이르러 임제종의 석상 초원의 제자 방회가 양기파, 혜남이 황룡파로 갈라져 나와 7종(宗)을 이루었다. 
  47. 윤, 창화 (2012년 9월 17일). “12. 남종선과 북종선”.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중국 선을 총칭하는 5가7종(五家七宗)은 모두 남종선 계통이다. 
  48. 혜능, 혜능. 《육조단경》. 29. 傳偈 - 게송을 전함. 
  49. 안, 종국 (2017년 1월 5일). “[행복한 인문학] 스스로가 부처인가? - 혜능과 ‘육조단경’”. 《제주환경일보》. 제주환경일보.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혜능이 조계의 보림사에서 선풍을 드날리자 소주자사 위거가 청하여 대범사 강당에서 설법을 하였는데, 이때 강연한 것을 문하생인 법해가 기록하여 편집되어 오늘날 전해지는 단경이 되었다. 
  50. “육조단경 (六祖壇經)”.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엄밀한 의미로 말하면 경(經)일 수 없고, 조사어록(祖師語錄)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박한 사상성과 간결한 문체 때문에 우리 나라·중국·일본 등의 여러 나라에서 경과 같은 존숭을 받아 오고 있다. 
  51. “육조단경 (六祖壇經)”.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9월 14일에 확인함.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법보단경(法寶壇經)≫이라고도 한다. 

외부 링크[편집]

전임
홍인
제6대 중국 선종조사
674년 ~ 713년
후임
남악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