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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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왕 玄王 | |
|---|---|
| 부여의 제?대 국왕 | |
| 재위 | 316년~346년 |
| 대관식 | 현왕(玄王) |
| 전임 | 의라왕(依羅王) |
| 후임 | 잔왕(孱王) |
| 이름 | |
| 휘 | 부여현(扶餘玄) |
| 이칭 | 해현(解玄) 여현(餘玄) |
| 별호 | 미상 |
| 묘호 | 미상 |
| 시호 | 미상 |
| 연호 | 미상 |
| 신상정보 | |
| 출생일 | 생년 미상(生年 未詳) |
| 출생지 | 부여(扶餘) |
| 사망일 | 몰년 미상(沒年 未詳) |
| 사망지 | 부여(扶餘) |
| 왕조 | 부여(扶餘) |
| 가문 | 미상 |
| 부친 | 미상 |
| 모친 | 미상 |
| 배우자 | 미상 |
| 자녀 | 미상 |
| 종교 | 미상 |
| 묘소 | 미상 |
현왕(玄王, 생몰년 미상 재위 316년~346년)은 부여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이다. 성은 부여(夫餘), 이름은 현(玄)이다. 전연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잃고 전연의 왕인 모용황의 사위가 되었다.
생애
[편집]현왕의 생몰년 및 즉위 시기는 알 수 없다. 의라왕과의 관계 역시 알려져 있지 않다. 346년에 선비족 모용씨가 세운 전연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배하고 포로가 되었다. 전연의 왕 모용황(慕容皝)은 세자인 모용준과 4남인 모용각을 시켜 부여를 공격하고, 현왕과 부여의 백성 5만 명을 전연으로 끌고와 사실상 부여를 멸망시켰다. 모용황은 부여 유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현왕을 사위로 삼고 진동장군(鎭東將軍)에 임명하였다.
가족 관계
[편집]현왕이 등장한 작품
[편집]참고 자료
[편집]- 이도학(李道學), 〈현왕(玄王)에 대하여〉,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
- 〈현왕〉.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주)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