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룰리족

헤룰리족(Heruli, 또는 Eruli, Herules, Herulians 등)은 고대 후기의 소규모 게르만계 민족 중 하나로, 서기 3세기에서 6세기의 기록을 통해 알려져 있다. 가장 잘 기록된 헤룰리족은 중부 다뉴브강의 북쪽(아마도 오늘날의 빈 북쪽 지역을 포함)에 왕국을 세운 집단이다. 이 왕국은 5세기 후반과 6세기 초에 스키리족, 루기족, 다뉴브 수에비족, 게피드족 등 다른 소규모 단명 왕국들과 이웃해 있었다. 508년 랑고바르드인에게 이 헤룰리 왕국이 정복된 후, 분파된 집단들은 스웨덴, 동고트족의 이탈리아, 그리고 당시 동로마 제국의 통제하에 있던 오늘날의 세르비아 일대로 이동했다.
다뉴브의 헤룰리족은 일반적으로 3세기 후반이나 4세기 초에 아조프해 근처에 살았던 "엘루리(Elouri)"와 동일시되며, 이들이 서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여겨진다. 267~270년에 엘루리족은 고트족 및 다른 동유럽 민족들과 함께 발칸반도와 에게해의 로마 속주를 대상으로 한 두 차례의 대규모 약탈에 참여했는데, 육로뿐만 아니라 해로를 통해서도 공격했다. 이 "엘루리(Eluri)"와 "헤룰리(Eruli)"를 동일한 집단으로 보는 시각은 여러 비잔티움 측 기록에서도 이루어진 것이고 여전히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엘레고르(Ellegård)와 같은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불확실하며 헤룰리족의 고향이 다른 곳에 있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6세기의 한 헤룰리족 집단이 다뉴브에서 스칸디나비아로 이동했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헤룰리족의 가장 초기 기원이 스칸디나비아에 있다고 믿는다. 또한 3세기와 4세기에 이미 유럽의 여러 지역에 북방에 공통 기원을 둔 헤룰리 왕국들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간접적인 증거에 기반한 한 가지 가설은 라인강 하류 근처에 "서부 헤룰리족" 정착지가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동부 약탈이 있은 지 불과 몇 년 후인 서기 286년에 헤룰리족이 로마의 갈리아 공격 중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한때 그들의 동맹이었던 고트족과 마찬가지로, 헤룰리족은 동유럽의 약탈자로 당대 기록에 처음 언급된 직후 로마 제국에 들어가 군대에서 복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4세기에 특히 서로마 제국에서 두드러진 명성을 얻었다. 이탈리아 북부에는 신생 헤룰리 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반면에 로마 국경 근처에 살던 헤룰리족은 이 시기 제국에 혼란을 일으킨 여러 집단 중 하나이기도 하다. 헤룰리족은 아마도 4세기에는 이미 다뉴브강 북쪽에 정착했을 것이다. 서기 409년 성 히에로니무스가 로마의 갈리아 전역을 점유하고 있다고 기록한, 주로 다뉴브 지역에서 온 "사나운" 민족들 중에는 헤룰리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이러한 민족들의 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훈족의 서진이었는데, 결국 아틸라의 제국은 다뉴브 지역에 근거지를 두게 되었다. 후대의 기록을 통해 알려진 다뉴브 헤룰리 왕국은 동고트족, 스키리족, 게피드족의 왕국들처럼 아틸라의 제국 내에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453년 아틸라가 사망한 후, 다뉴브 헤룰리족은 454년 네다오 전투에서 싸웠으나, 옛 동맹 민족들 가운데 어느 편을 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들은 또한 오도아케르(476년), 테오도리쿠스 대왕(493년), 나르세스(554년), 그리고 아마도 랑고바르드인(568년 시작)에 의한 일련의 이탈리아 정복에도 참여했다. 로마의 지휘 하에서 헤룰리족은 발칸반도, 아프리카, 이탈리아의 분쟁에서 중요한 군사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발칸반도에 있던 그들의 마지막 왕국이 결국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고, 더 작은 집단들이 게피드족이나 랑고바르드인과 같은 더 큰 정치 체제에 통합되면서, 헤룰리족은 랑고바르드인이 이탈리아를 정복할 무렵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시기 중부 다뉴브 지역은 판노니아 아바르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