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저 (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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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저(許褚, 170년? ~ 226년?)는 후한 ~ (魏)의 무장으로, 자는 중강(仲康)이며 예주(豫州) 초국(譙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생애[편집]

생몰년[편집]

확실한 생년은 알 수 없다. 다만, 170년에 태어나 226년에 57세의 나이로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황건적 토벌[편집]

황건적의 침입이 있었을 때 황건적 만 명의 침입을 젊은이 수천 명을 모아 막았다. 무기가 다하면 바위를 들어 올려 던져 대항했으나 수적 열세인 탓에 피로가 극에 달했다. 식량 부족으로 황건적에 소를 보내 맞바꾸기로 했는데, 도망가는 소의 꼬리를 한 손으로 잡아 백 보 남짓 끄는 모습에 대한 소문이 퍼져 모두 두려워했다.

조조의 수하가 된 이후[편집]

휘하와 함께 조조에 복종하자 그를 본 조조는 전한(前漢)의 용장 번쾌(樊噲)와 견주면서 도위(都尉)로 임명했다. 장수 토벌전에 선봉으로 활약하여 교위(校尉)가 됐다.

관도대전이 끝났을 무렵[편집]

원소와의 싸움인 관도대전이 끝난 직후 조조의 동향인으로 원소의 수하에 있다가 심배에 의해 자신의 비리가 발각되자 조조의 수하로 들어온 허유가 "내가 아니였더라면 너희들은 오히려 원소에게 잡혀 죽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며 허저를 비롯한 조조 휘하의 장수들을 비웃고 무시하자 허저는 허유를 주먹으로 때려죽였다. 조조는 허유를 때려죽인 허저에게 자신의 친구를 함부로 죽이면 어떡하냐며 나무랐지만 그 말을 하며 조조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서량전투[편집]

조조가 동관에서 한수(韓遂)·마초(馬超)와 싸울때 마초가 황하(黄河)를 건너는 조조를 맞아 만 명을 이끌고 파상적인 화살공격을 가하자 허저는 배에 조조를 싣고 건너면서 올라타려는 아군을 베면서 왼손으로 말의 안장을 들어 조조를 화살로부터 지켰다. 뱃사공이 화살에 맞아 죽자 오른손으로는 배를 저으면서 간신히 도강에 성공했다. 이러면서 허저는 조조의 배에 달려드는 마초의 부하 수백명을 혼자 사살했다. 후일 조조는 허저 덕분에 생명을 부지했다고 술회한다.

조조가 한수·마초와 말을 탄 채로 회담할 때 호위로 허저를 데려갔다. 틈만 나면 조조를 죽이려 했던 마초였지만 허저의 용맹함은 익히 알고 있어 조조에게 수행원이 허저가 아니냐고 묻는다. 조조는 말없이 뒤를 가리키면서 허저의 존재를 시인했고 마초는 자신을 노려보는 허저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전투에서 이기자 무위중랑장(武衛中郎將)이 됐다.

전투에서는 사나운 모습을 보였으나 평소 허저는 가공할만한 괴력을 지녔으면서도 성격은 소박하여 함부로 힘자랑을 하지 않고 지냈다.

호랑이의 힘과 미련함이라는 상반되는 특징 때문에 호치(虎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조조가 이 별칭과 함께 칭찬을 자주 했으므로 자신의 이름처럼 여겼다고 한다.

조조 사망 이후[편집]

조조가 죽자 허저는 피를 토하며 통곡했다.

위 초대황제인 세조 문황제 조비(曹丕)의 치세에 만세정후(萬歳亭侯), 무위장군(武衛將軍), 중군속위금병(中軍宿衛禁兵) 도독(都督)에 올랐다. 허저에게 친위대로 발탁되어 후일 후(侯)와 도위·교위가 된 자가 각각 수십과 백이었다.

허저의 친족 관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