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하 전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해하 전투
초한전쟁의 일부
교전국
한나라 초나라
지휘관
유방
한신
항우

해하 전투(垓下戰鬪)는 초한전쟁 당시 초나라 항우한나라 유방이 벌인 마지막 결전으로 유방항우를 쓰러뜨리고 승리했다. 하지만, 이는 분쟁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반한의 세력들이 커나가는 배경이 되어 유방은 이 후로도 많은 적들을 상대한다.

배경[편집]

항우가 광무산에서 10달 넘게 유방과 대치하면서 초군은 굶주렸고 맹장 용저도 한신에 의해 잃었다. 반면 유방군은 서광무의 곡창 덕분에 굶주리지 않았기 때문에 항우는 퇴각을 결정한다. 항우는 협상을 통해 인질로 잡혀있던 유방의 가족들을 유방에게 인도하고 초군이 팽성까지 갈 때까지 한군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퇴각한다. 하지만 장량과 진평이 추격할 것을 진언하여 유방은 정예 10만으로 항우를 뒤쫓다가 고릉에서 초군 3만에 대패해 군사의 절반을 잃었다. 하지만 조참과 관영의 지원군과 합류해서 다시 10만 병력을 모았다. 진성에서 항우는 기선제압을 위해 돌진하였으나 군사가 적어 포위되자 포위망을 뚫고 해하로 간다

경과[편집]

유방은 한신과 팽월, 경포를 불러 군대 30만까지 모으고 항우를 뒤쫓고 있었다. 하지만 항우는 5만 군사와 계포의 3만 군대가 오자 8만 군대 군사를 10만 군대까지 늘렸다 .한신은 군대 30만을 배치하여 좌군 공희, 우군 진하, 전군 한신, 중군 한유방, 중군앞 번쾌, 역상 중군 뒤 근홉과 시무등을 포진하여 상대하였다. 하지만 사기가 오른 항우의 군사들이 돌진하자 전군이 뚫리고, 중군까지 뚫릴 위험이 있으며, 뚫리면 30만 군대는 아수라장이 되어 결국 대패하게 되기 때문에 한신은 미리 좌, 우익 공희와 진하에게 옆구리를 찌르라고 지시하여 초나라 군사들은 결국 당황해서 패배를 하고 만다.

사면초가[편집]

한나라의 유방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하여 해하(垓下)에서 포위된 초나라의 항우는 사방을 에워싸고 있던 한나라 군대 안에서 초나라 군대의 노래를 듣고 "초나라는 이미 한나라의 유방에게 넘어갔다는 말인가? 어째서 외부의 적보다 초나라 사람들의 수가 저렇게 많은가?"라고 말하면서 크게 놀랐다고 한다. 초나라 군대의 노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力拔山兮氣蓋世 (역발산혜기개세;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백은 온 세상을 덮을 만하다네.)
時不利兮騅不逝 (시불리혜추불서; 때가 불리하니 추마저도 달리지 못한다네.)
騅不逝兮可奈何 (추불서혜가내하; 추가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 해야 하는가.)
虞兮虞兮奈若何 (우혜우혜내약하;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 하랴.)

초나라 군대의 노래는 항우가 자신의 애인인 우미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지은 노래로서 한나라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초나라의 심리전이었다. 사방이 적에게 포위당하여 고립되어 있거나 곤경에 처한 상태를 비유하는 말인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결과[편집]

초패왕 항우(楚覇王 項羽)는 한왕 유방(漢王 劉邦)에게 구리산에서 대패하여 강동으로 가 재기하려 하나, 해하에서 남은 28명과 함께 전투를 벌이다 항우는 1000명과 한장(漢將) 9명을 죽인다. 그러나 항우 측은 2명만 전사했을 뿐이다. 오강에서 정장이란 자가 배를 타라고 하나, 항우는 부하 26명과 오추마(항우의 말)만 보낸다. 그런데 오추마는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항우는 한의 기병 5000명을 베다가 고향사람 여마통에게서 유방이 자신의 목을 가져가는 사람을 왕으로 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항우는 옛정을 생각해서 여마통을 왕이 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목을 베어 자살한다. 이로써 한왕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여마통을 비롯하여 항우의 시체를 가져간 한장 9명은 약속대로 열후(列侯)에 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