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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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북위 36° 42′ 47″ 동경 126° 32′ 15″ / 북위 36.713127° 동경 126.537628°  / 36.713127; 126.537628

해미순교성지
Korea Haemi Martyrdom Holy Ground 16 (14031341538).jpg
현황
종파 로마 가톨릭교회
위치 국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소속 관구 서울관구
소속 교구 천주교 대전교구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설립일 2003년 6월 17일
웹사이트 http://www.haemi.or.kr/

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 영어: Haemi Martyrdom holy ground)는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에 위치한 한국 로마 가톨릭교회순교 성지이다.

'여숫골'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박해 시기를 거쳐 1872년까지 조선의 천주교 신자 1,000명 이상이 처형당한 곳이다. 조선 시대에 해미현의 담당 지역이던 충청도와 경기도 평택에 이르는 넓은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왔다.

처형된 신자의 유해들은 1935년 서산성당의 바로 주임신부에 의해 일부 발굴되었다. 유해는 임시 안장되다가 1995년 유해 발굴터인 이곳으로 옮겨져 모셔지고 있다. 성지는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홍보, 모금 활동을 하여 부지를 확보하고 건립을 시작해 2003년 6월 17일 완료하였다.

2014년에는 교황청이 해미 순교자 3명을 가톨릭교회의 공적 공경 대상인 복자로 추대하였으며, 교황 프란치스코가 직접 이곳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역사[편집]

이곳은 '여숫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려 왔다. 이는 순교자들이 생매장터로 끌려가면서 "예수 마리아"라 부르짖던 소리를 주민들이 '여수(여우의 방언) 머리'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해져 내려와 '여숫골'이 되었다.[1]

순교[편집]

순교자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는 해미순교성지 기념관의 입구.

해미는 조선 초기 충청 병마절도사영이 위치한 곳이였다. 조선 중기에는 1651년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지고 해미는 현으로 축소되지만, 여전히 1,400~1,500여 명의 군사가 주둔한 진영이 존재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군사를 거느린 무관 영장은 해미 현감을 겸하였고, 이에 해미 현감은 충청좌도의 내포 지방 해안수비 명목으로 국사범을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당시 해미 관아의 담당 지역은 충청도는 물론이고 경기도 평택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아울렀다. 이에 담당 지역의 신자들이 체포되면 모두 해미읍성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이들이 해미읍성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후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으러 가는 곳이 해미읍성 서문 밖과 바로 이곳 해미순교성지의 장소였다.[1][2][3][4]

1801년의 신유박해 이전 해미에서 인언민(마르티노)과 이보현(프란치스코)이 순교하였고, 1839년의 기해박해 이전까지는 1814년에 옥사한 김진후(비오)를 비롯하여 모두 8명이 순교하였다. 1866년의 병인박해 시기에는 122명이 해미에서 순교하게 된다. 이름이 알려진 132명에 순교자에 무명의 순교자 47명 이상을 더하면 박해 시기에 해미에서 순교한 사람은 179명 이상이 된다. 당시 해미읍성의 큰 감옥 두 곳은 항상 신자들로 북적였다고 전해진다.[3]

박해는 병인양요신미양요를 거치며 더욱 심해졌다. 이는 조선의 완강한 쇄국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1866년 병인양요부터 신미양요 직후인 1872년 사이 충청도 각 고을에서 잡혀 온 천주교 신자 1,000명 이상이 이곳에서 생매장되었다. 원래는 해미읍성 서문 밖으로 끌어내 교수형, 참수형, 몰매질형,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의 방식으로 한 명씩 처형하였다. 그러다 인원이 너무 많아지자 편의를 위해 처형 방식을 생매장으로 바꾼 것이었다.[3]

이곳에 무명 순교자가 많은 이유는 사후에 문책 거리가 될 만한 신분의 사람들을 인근 공주홍주로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처형된 자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서민층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2][3]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들이 순교자의 뼈를 일부 캐내 냇물에 버렸다는 증언을 통해서도 이곳이 생매장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이던 1935년 서산성당의 제5대 신부인 바로(Barraux) 베드로 주임신부가 유해를 발굴하였다. 바로 신부는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 등을 30리 밖 상홍리공소에 임시 안장하였고, 1995년 유해 발굴터인 이곳으로 옮겨지게 된다. 하지만 이는 유해 중 일부분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홍수로 유실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순교자 유해는 별도로 보존 처리하여 안치하고 있다.[2][3][4]

성지 건립[편집]

1985년 4월 해미 공소가 성당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해미 순교 선열 현양회를 발족하고, 대한민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홍보, 모금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노력으로 1998년 순교 성지 부지 약 2만 3100m2을 확보하였다. 이어 1999년 5월부터 3000명의 회원에게 성전 건립 기금을 모았다. 2000년 8월 기공식을 시작으로, 2003년 6월 17일 성지 건립을 완료하였다. 대성당 아래의 12개 기둥에는 건립 후원자들의 이름이 적혀있다.[4][5]

순교자 3위의 시복과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문[편집]

소성당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단과의 만남'에서 연설을 준비 중인 교황 프란치스코.

2014년 8월 16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이번 교황의 대한민국 방문은 역사상 두 번째의 일이었다. 그리고 당일 광화문 앞에서 교황 집전 아래 순교자 124위 시복식이 열렸다. 여기에는 해미 순교자인 인언민(마르티노), 김진후(비오), 이보현(프란치스코)의 3위가 함께 시복되었다. 8월 17일에는 해미순교성지를 들러 유흥식 대전교구장 주교와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완섭 서산시장 등의 영접을 받은 뒤 아시아 주교단과의 만남과 오찬을 가졌다. 그리고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앞에서 열린 해미 순교자 3위의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하였다.[6][7]

성지 구성[편집]

해미에 위치한 8,903m2의 무명 순교자 성지 터에 지어졌다. 성지에는 전체면적 3234m2에 지상 4층, 700석 규모의 대성당과 200석 규모의 소성당을 지었다. 성당 뒤편에 위치한 기념관은 순교자의 무덤을 형상화하여 지었다. 기념관 내부에는 순교 기록화와 벽화 조각이 설치되어 있으며, 발굴된 순교자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파수대를 상징하는 팔각의 탑과 사제관, 수녀원을 지었다.

이 밖에도 신자들을 묶어 물웅덩이에 빠뜨려 수장시킨 '진둠벙', 해미천 옆에서 생매장당한 무명의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한 높이 16m의 '해미순교탑', 무명순교자의 묘, 유해 발굴지에 조성된 노천성당, 해미읍성 서문 밖 순교지에 있던 자리개 돌의 원석이 존재한다.[3][5][8]

종교적 의미[편집]

로마 가톨릭교회에서의 순교는 신봉의 대상인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한 자들이 목숨을 바쳐 그 신앙의 증거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순교 신심'이라고 표현한다. 해미순교성지 터에서의 순교는 한국 로마 가톨릭교회 역사에서 이러한 순교 신심 정신의 형성에 기여하였다.[9] 더불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과 해미 순교자 3위의 시복은 현세의 신자들에게 해미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배워나갈 것을 권하고 있다.[10]

사진[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정성수 (2014년 4월 28일). “교황이 방문할 천주교 내포 성지 탐방…3 홍주 성지와 해미 성지”. 《세계일보》. 2017년 12월 4일에 보존된 문서. 
  2. 전희진 (2014년 8월 7일). “한티고개서 해미성지 눈물로 넘었던 고갯길”. 《대전일보》. 2017년 12월 4일에 보존된 문서. 
  3. 기획취재팀 (2014년 8월 12일). “한국 유일의 생매장 순교터 … 핍박의 흔적 생생”. 《중부일보》. 2017년 12월 4일에 보존된 문서. 
  4. 정관희 (2014년 3월 20일). “모진 고문속 처형 수난의 복음 역사”. 《대전일보》. 
  5. 허수진 (2014년 8월 11일). “교황방문지 7, 서산 해미읍성…3000여명 신자들의 피로물들다”. 《뉴스1》. 
  6. 오진희 (2014년 8월 16일). “교황방한, 17일 해미성지, 아시아 주교·청년 만난다.”. 《아시아경제》. 
  7. 한경닷컴 뉴스룸 (2014년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 비 뚫고 해미순교성지 방문”. 《한국경제》. 
  8. 전병득 (2003년 6월 18일). “서산 해미에 순교자 성전 문열어”. 《매일경제》. 
  9. 전용준 (2017년 1월 22일).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9 - 2세기 4 - 순교 영성”. 《가톨릭평화신문》. 
  10. 박지순 (2014년 8월 10일).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8 - 어떻게 순교하시겠습니까?”. 《가톨릭신문》.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