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의 의료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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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의 의료 지원한국 전쟁 중 직접 군대를 파견한 것이 아니라 의료진만 파견한 나라들이다. 대한민국에 의료 지원을 수행한 나라는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의 5개국이었다. 이 중에서 중립국은 스웨덴과 인도이며, 나머지 3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었다(덴마크, 노르웨이는 원래 중립국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외교 정책을 바꾼 나라들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소련과 중국 외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의료지원을 하였다.

대한민국[편집]

스웨덴[편집]

부산 롯데백화점 근처에 있는 스웨덴 의료지원 기념비

예전부터 그랬지만, 지금도 무장 영세 중립국을 고수하는 스웨덴은 한국전쟁에 제일 먼저 의료지원단을 보냈다. 의사 10명, 간호사 30명, 기타 행정 등의 요원을 포함하여 160명의 적십자 병원을 조직하여 보냈고, 이들은 9월 28일한국에 도착했다. 초대 병원장은 칼 에릭 그로스(Karl Erik Groth) 대령이었는데, 이 사람도 의사였는지, 아니면 그냥 군인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부산에 200병상 규모의 병원을 세웠으나, 점점 커져 400병상까지 갔다고 한다. 스웨덴 적십자 병원은 부상병들만 치료한 것이 아니라 민간인들도 치료했으며, 아직 의료 수준이 낮았던 한국 의료진에게 선진 의료 기술을 전달했다. 한국 전쟁이 휴전된 이후 스웨덴 적십자 병원은 스칸디나비안 교육병원으로 바뀌었다. 이 병원은 의학 교육을 위해 설립된 병원이었고, 1968년에 대한민국 정부로 운영이 넘겨졌다. 이것이 현재의 국립의료원이다.

1957년 4월에 스웨덴 적십자 병원은 완전히 귀국했으며, 부산광역시 부전동 롯데백화점 옆에 스웨덴 의료지원 기념비가 세워졌다. 원래 이 자리는 스웨덴 적십자 병원이 있던 곳이었다. 지난 2005년 9월 26일에 오래된 기념비를 다시 제막하는 행사가 열렸다. 아 행사에는 스튜레 안데르손 스웨덴 군 의무사령관을 비롯해 김록권 육군본부 의무감, 중립국 감시위원회 스웨덴 대표부 라스 프리스크 장군, 부산 지역 주둔 사단인 서진현 53사단장, 하랄드 산드베리 주한 스웨덴 대사, 유재진 스웨덴 영사 등이 참석했다.

인도[편집]

1950년 11월 20일, 의사 14명, 위생병 329명, 행정관 1명, 보급관 1명으로 구성된 인도군의 제60야전병원이 부산에 도착했다. 이 병원은 인도군 공수사단 소속 부대로 공수작전도 가능한 부대였다. 이 점을 살려 1951년 3월 23일, 문산 공수작전 시에 미국 제187연대전투단과 함께 강하하여 지원했다. 제60야전병원은 둘로 나뉘어 1대는 영연방 제27보병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직접 지원했고, 2대는 대구에 주둔하며 한국 육군병원과 민간인 치료를 지원했다. 영연방 여단에 배속된 인도군 야전병원은 1951년 7월 28일에 영연방군을 통합한 영연방 사단이 창설되자 그대로 사단 야전병원이 되었다. 전쟁말, 포로송환감시단으로 인도군이 파견되자, 인도군 포로송환감시단에 통합되어 포로 송환 업무를 지원했고, 1954년에 함께 철수했다.

덴마크[편집]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MS 윌란디아 기념비

덴마크는 5개국 중에서 3번째로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덴마크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100명의 인원과 함께 병원선을 파견했고,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 호는 초기에는 부산항을 거점으로 했고, 1952년 가을부터는 인천항에 정박하여 의료지원을 수행했다. 덴마크 병원선은 의료진 교체와 보급품 확보를 위해 전쟁 중에 2번 덴마크로 귀환했는데, 이때 유럽 각국에서 파견된 국가들의 부상병들 및 송환된 포로를 함께 데리고 가기도 했다(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네덜란드, 터키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 전에 거치게 되는 에티오피아). 덴마크 병원선은 1953년 8월 16일에 한국을 떠났다.

노르웨이[편집]

노르웨이는 4번째로 의료진을 파견했다. 의무 및 행정요원 83명으로 구성된 60병상 규모의 야전병원이었고, 나중에 106명으로 늘어났다. 1951년 6월 22일에 파견되어 1954년 10월 18일에 귀국했는데, 파견 기간 중 대부분을 서울 북쪽에서 미국 제1군단(대한민국 제1보병사단, 미국 제24보병사단, 제1기병사단)을 지원했으며, 여유가 있으면 주변 민간인들도 치료했다. 병원 인력은 6개월마다 교체하였으며, 연 근무 인원은 623명이었다.

이탈리아[편집]

마지막 5번째 파견국가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의 68 야전병원이 한국에 도착한 것은 1951년 11월 16일이었으며, 1955년 1월 2일에 철수했다. 150 병상 규모였으며, 군의관 6명, 약제사 1명, 간호원 6명, 위생병 50명이 주축이었다.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체코슬로바키아[편집]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한국 전쟁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료 지원대를 파견하였다. 전쟁 이후 한국인 의사 4명은 자유와 독립 2호 훈장, 21명의 기타 의사, 간호사, 의료 지원병은 국가 3호 훈장을 받았다. 체코슬로바키아 의사 3명은 병원 훈장, 15명은 용기 훈장을 수여받았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미국 망명자 얀 셰이나(Jan Šejna)가 1996년 9월 17일 발표한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잡힌 미군 포로를 체코로 이동시켜 프라하 스트르제쇼비체(Střešovice)에 있는 군사 병원에서 생체 실험을 했다고 하였다. 체코 정부에서는 이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없으며, 그가 언급했던 사람은 한국 전쟁 당시 의료 지원단으로 복무하지도 않았으며, 한국 전쟁에서 했던 활동을 비밀에 부칠 이유는 없다고 하였다.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체코슬로바키아에 파견되었고, 의사들은 자주 바뀌었고 장비는 부족했으며, 기밀을 취급할 수 없었다.

참고 문헌[편집]

  • 《한국전쟁 요약》,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86년 11월 1일 국방부)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