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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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통일(韓國의 再統一, 영어: Korean reunification)은 한반도의 두 정부인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장기적, 최종적으로 단일 정부로 통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무장에 따른 군사적 충돌 발생시,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위협 과 손실 나아가, 미국와 중국간의 패권 경쟁에 따른, 세계적 핵전쟁 위협을 불식하게 된다. 통일된 한국의 경우, 러시아를 포함한 한,중,일 대규모 경제 공동체로써, 상호 교류 협력을 통해서,유럽 연합(EU) 및 유럽 연합(EU), 아랍 연맹(Arab League) 및 유라시아 경제연합(EEU) 등 세계적인 다른 경제 공동체와 공동의 이익을 추구 할수 있는 토대가 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서, 세계의 경제 정치 안보적으로 주는 영향이 커서, 통일된 한반도는 작게는 대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수출 주도형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가진 한국경제에 에 희망을 주며, 크게는 기존의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가 미국 경제 악화등으로 , 침체 터널에 갖힌, 세계 경제에, 새로운 가동 엔진이 되어, 동아시아 지역의 핵전쟁 위협이 사라진, 거대한 경제 공동체의 탄생을 통한 활력소가 되어 유라시아 경제 연합의 무역 교역량 증가를 기준하면, 최소한 88% 이상의 추가 확장이 예상된다. 대한민국과 북한 상호간에,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합의된, 통일 방식은 연방제의 의한 통일 방식으로, 상호 체제를 인정하며, 잠정적으로 각각의 지역 정부에 국방과 외교권 등을 부여하는 것으로, 중요한 기본 틀은 같지만, 연방제의 세부 사항에서 각각의 정부를 인정하여 2개의 정부에서, 남한은 2개의 국가를 북한에서는 1국가를 희망하여, 상호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한국의 재통일에 대한, 용어의 경우에는 대한민국 측에서는 남북통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측에서는 북남통일 (조국통일)이라고 표기한다.


분단 이전[편집]

한국은 신라의 삼국통일, 후삼국의 통일이후 통일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즉 676년에 신라는 당나라 군대를 대동강 북쪽으로 축출하여 통일을 달성하였으며, 1910년 일제 강점기로 일제의 지배를 받는 동안에도 하나의 지역으로 되어있었다. 즉 약 1300년 전을 기준으로 한민족은 통일된 국가를 이루었으며, 1937년 7월 7일 일본 제국의 중화민국 침략으로, 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어, 1945년 8월 6일, 일본 제국 히로시마 시와 나가사키 시에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38선 분할 점령안을 소련과 미국이 상호 합의 하여 38 선을 기준으로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었다. 이후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이후, 3년 1개월이후 1953년 7월 27일 발효된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으로 다시 38선이 다시 확인되었다. 남한과 북한이 다시 통일을 하는것은 짧게 보면, 2015년을 기준으로,약 70년간의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는것이며, 길게보면, 1000 년전부터 이루어졌던 민족의 통합을 다시 이루는 것이다.

연방제와 흡수 통일 방식[편집]

통일의 방식은 연방제에 의한 통일과 흡수 통일에 의한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연방제에 의한 통일 방식은 상호 대한민국과 북한간에 2체제 2정부를 인정하면서, 상호 교류 협력을 통해서 상호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면서, 분단의 장벽을 극복하고, 장기적이며, 최종적으로는 단일 국가 및 단일 정부에 이르는것을 의미 한다. 흡수 통일 방식은 독일과 같이 평화 통일을 이루지만, 한쪽에서 천문학적인 통일에 따른 경제적인 비용을 부담하면서, 한쪽의 정부를 흡수하는 통일 방식이며 독일의 경우 1800 조원 이상이 소요되었으며, 매년 1000 억 유로 이상이 소요되고 있다-" 미국 랜드 연구소(www.rand.org)의 분석 결과" 다른 흡수 통일 방식은 비평화적인 방식으로, 남북간의 통일은 전쟁에 의한 비평화적인 방식의 통일을 의미할수도 있다. 즉, 무력침공에 의한 국제법상 정복의 의미로 통일이란 단어를 사용할수 있으며, 예를 들면, 국제적으로 침략전쟁이라고 규정된 한국 전쟁의 경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것을 '조국통일전쟁'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통일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항상 평화적인 의미의 통일인지 비평화적인 적대적 통일인지 의미인지는 구별해야 한다. 강경파들이 사용하는 통일의 경우, 실질적으로는 적대적 통일인 침략전쟁을 의미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분단의 경로[편집]

제2차 세계 대전뒤에 연합국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조선을 신탁통치로 통치할 계획을 실시했고 38선을 경계로 하는 2개의 구역으로 조선을 분할했다. 그리고 남쪽에 미군정이, 북쪽에 소군정이 통치했고 서로 자기 지역에서 군정을 개시했다. 그러나 남쪽의 민족주의자들과 일부 공산당원들이 신탁통치결사반대 운동을 벌이자 미소는 신탁통치의 실시를 둘러싸고 대립이 깊어졌고, 최종적으로 한반도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는 2개의 국가로 분열된 상태가 되었다. 북한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대, 북한내의 항일 무장 투쟁 세력이었던 김일성을 주축으로한 세력의 일본군을 상대로한 승리에 의해서, 비록 일본군 전체를 상대로한것이 아닌, 대규모의 전투는 아니었지만, 북한내에서의 민족적 자긍심을 갖을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었으며, 이를 통해서, 김일성이 북한 민심을 얻었으며, 1948년에는 조선반도 총선거에 기초하여 김일성을 수상, 박헌영·홍명희 등을 부수상으로 하여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2] 그 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 적화통일을 목표로 한국 전쟁을 일으켰지만, 미군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연합군의 반격으로 퇴각했고, 휴전에 의해서 한반도는 군사 분계선으로 분단이 되었다. 아직도 남북한은 휴전한 상태로 대치 중이다.

통일운동 및 통일정책[편집]

군정기[편집]

좌우합작 운동[편집]

좌우합작운동은 1946년 통일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좌파, 우파세력이 합작을 하여 연대를 추진하였던 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에는 중도파 세력 인사들이 주축으로 구성되어 전개되었다.

남북 연석회의[편집]

남북 연석회의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북의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이 5·10 단독선거를 저지하고 통일민주국가 수립을 위해 대책을 논의한 회담을 말한다. 1948년 4월 19일부터 시작된 이 회의는, 김구, 김규식김일성, 김두봉과 같은 남북의 명망가들이 다수 참석하여 그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 듯하였으나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대한민국[편집]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편집]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1989년 9월 11일 국회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선언을 통해 발표됐다. 1982년 발표된 '민족화합민족민주통일방안'을 보강한 것이다. 자주, 평화, 민주를 3대 원칙으로 한다. 발표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연방제 통일안에 가장 근접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의 3단계로 통일을 이룬다

  • 민족공동체헌장 채택
    • 통일이 될 때까지 남북관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규칙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 남북연합
    • 민족공동체헌장에 기초하여, 남북정상회의와 실행기구인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등의 과도기구를 설치
  • 통일헌법 제정으로 통일민주공화국 건설
    • 남북평의회에서 마련한 통일헌법을 바탕으로 총선거를 실시해 통일국회와 통일정부를 구성

민족공동체통일방안[편집]

김영삼이 채택한 통일방안이다.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약간 수정하였다.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 이라고도 한다.

"선 교류 후 통일"의 원칙하에, 다음의 3단계를 거쳐서 통일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 화해협력단계
  • 남북연합단계
  • 통일국가 완성단계

햇볕 정책[편집]

햇볕정책은 남북한 간의 긴장관계를 완화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던 대북 정책이다. 대한민국의 민주당은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던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시절 햇볕정책에 의해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사업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당인 새누리당자유선진당 등의 보수 세력은 대부분 햇볕 정책 때문에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햇볕정책의 3대 원칙은 아래와 같다.

  • 첫째, 북측의 무력 도발을 허용하지 않는다.
  • 둘째, 남측은 흡수 통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 셋째, 남측은 화해와 협력을 추진한다.

상호주의 정책[편집]

햇볕 정책의 비판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대화나 무역이 평화적인 한반도 통일의 전망을 개선하는 것에 기여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햇볕정책은 비민주적으로 전체주의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체제 강화를 돕고 있다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당인 한나라당햇볕정책에 반대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제원조와 양국간의 교류에 대해 상호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우익 정치단체들도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일부 탈북자 역시 햇볕정책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있다.

휴전선 이북 영토 관리[편집]

이북 5도청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민국헌법에 의거, 휴전선 이북 지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할 지역,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지역 포함)을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체를 형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1962년에 《이북 5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1970년에 《이북5도직제》(以北五道職制)를 제정하여 통일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유통일 방안[편집]

대한민국의 헌법, 법률을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통치하는 북한(North Korea) 지역에 도입하는 흡수통일 방안이다. 대한민국은 북한 지역에서 대한민국 주도의 흡수통일을 원하게 될 경우에는 이에 응할 계획이나, 절대로 먼저 시도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아래는 문화어로 표기한 내용이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편집]

  •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국가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며 자주적인 정책을 실시하여야 한다.
  •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나라의 전 지역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민주주의를 실시하며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북과 남사이의 경제적 합작과 교류를 실시하며 민족경제의 자립적발전을 보장하여야 한다.
  •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과학, 문화, 교육분야에서 북과 남사이의 교류와 협조를 실현하며 나라의 과학기술과 민족문화예술, 민족교육을 통일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북과 남사이에 끊어졌던 교통과 체신을 련결하며 전국적범위에서 교통, 체신 수단의 자유로운 리용을 보장하여야 한다.
  •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과 전체 인민들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며 그들의 복리를 계통적으로 증진시켜야 한다.
  •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북과 남사이의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고 민족련합군을 조직하며 외래침략으로부터 민족을 보위하여야 한다.
  •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해외에 있는 모든 조선동포들의 민족적권리와 리익을 옹호하고 보호하여야 한다.
  •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북과 남이 통일이전에 다른 나라들과 맺은 대외관계를 올바르게 처리하며 두 지역 정부의 대외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절하여야 한다.
  •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전민족을 대표하는 통일국가로서 세계 모든 나라들과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애호적인 대외정책을 실시하여야 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편집]

  • 전민족의 대단결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중립적인 통일국가를 창립하여야 한다.
  •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여 단결하여야 한다.
  •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조국통일위업에 모든것을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단결하여야 한다.
  • 동족사이에 분렬과 대결을 조장시키는 일체 정쟁을 중지하고 단결하여야 한다.
  • 북침과 남침, 승공과 적화의 위구를 다같이 가시고 서로 신뢰하고 단합하여야 한다.
  • 민주주의를 귀중히 여기며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하여 배척하지 말고 조국통일의 길에서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한다.
  • 개인과 단체가 소유한 물질적, 정신적 재부를 보호하여야 하며 그것을 민족대단결을 도모하는데 이롭게 이용하는것을 장려하여야 한다.
  • 접촉, 래왕, 대화를 통하여 전민족이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며 단합하여야 한다.
  •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북과 남, 해외의 전민족이 서로 연대성을 강화하여야 한다.
  •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위업에 공헌한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민족대단결 5대 방침[편집]

  • 민족의 대단결은 철저히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야 한다.
  • 애국애족의 기치,조국통일의 기치밑에 온 민족이 단결하여야 한다.
  •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면 북과 남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여야 한다.
  •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위하여서는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외세와 결탁한 민족반역자들, 반통일세력을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한다.
  •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이 서로 래왕하고 접촉하며 대화를 발전시키고 련대련합을 강화하여야 한다.


조국통일 3대 원칙[편집]

  • 자주통일
  • 평화통일
  • 민족대단결

남북한 정부의 통일 정책 비교[편집]

남한 정부의 통일 정책[편집]

남한 정부 (직무 기간 및 임기) 통일 정책 및 실적 [1][2]
박근혜 정부 (2013/2/25~ 현재 : 임기 2018/02/24 )
  • 한반도 통일 대박론을 통해 통일 담론과 논의를 제시함.
  • 2014년 2월 남북 고위급 접촉, 상호 비방 중지, 이산 가족 상봉 진행에 남측을 믿고 한번 해보겠다고 대답: 실제로는 NLL 인근 사격 훈련 및 무인기, 미사일 등 북한 군사측의 도발 발생함. - 북한 김정은 정부의 통일 의지에 대한 북한의 군부에서의 반발이었는지, 직접적인 김정은 정부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는 검증되지 못함. - 남한측에서는 북한과의 대화를 중단함.
  • 2014년 8월 7일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드레스덴 구상 사령탑) - 북한 민생인프라 구축을 위한 남북한의 협력방안 마련과 문화·예술 및 스포츠 분야의 교류 협력, 긴장완화를 위한 DMZ 평화 공원의 조성 등.
  • 통일이 국민의 공감대나 주변국의 이해 내지는 동의없이 단독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냉엄한 대외 현실을 바탕으로 통일을 위한 나라 안팎의 공론을 모으고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통일이 한반도 뿐 아니라 주변 각국에도 이익이 되는 이벤트가 될 수 있도록 여건 조성.
  • 한반도 통일이 "동북아에 상당한 경제적 파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세계 기업도 주목하게 될 것"이라며 "독일 통일이 없으면 유럽 통합이 불가능했듯 동북아 평화와 새로운 유라시아 시대가 한반도 통일의 토대가 돼야 가능하다는 비전”을 목표함
  • 낙후된 북한의 인프라를 재건하고 주민들에게 복지를 제공해야하므로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것을 염려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실제 한국의 경제력과 국력, 국제 협력 등을 통한 통일이라면 실현 가능성이 높다.
  •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감정적인 비방과 심한 인신 공격에 대해서 북한을 비판하면서 북측이 신뢰있는 행동을 한다면 남한에서도 신뢰있게 대응을 하겠다고 조건부적인 대응함.
  • 박근혜 정부의 통일 정책 및 추진 방향에 대한 여론: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국가 비전과 통합적 통일정책, 통일 정책의 과제와 대안’을 주제로 한 평화재단 등은 박근혜 정부가 진정한 통일의 의지가 있다면, 일단 통일을 위한 발걸음을 한걸음이라도 조금씩이라도 진전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함. - 즉 현실적인 통일은 남한 주도의 통일 진행이 실제로 가능한 것이므로 북한의 인신 공격과 감정적 비방에 맞서는 비판 대신 지속적인 대화와 추진이 필요함을 강조. - 즉 북한이 신뢰 있는 행동을 할 때만 통일에 대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조건적 대응은 통일 정책이 진전되기 어렵다. 남북한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갖추어져야만, 남북 관계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전 정부처럼 임기 5년간 통일 정책 진전이 어렵다는 것.
  • 일단 통일을 위해 남한과 북한 간의 대화와 교류를 통한 실제적인 실천 내용이 구체화되도록 비록 신뢰하기 어려운 북한과 그러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북한과의 통일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해 어떤 것을 어떻게 추진해야할 지에 대한 것이 통일 정책이다.
  • 이것은 통일에 대한 실제적이고 간절한 목표 의식이 디딤돌이 된다면 북한의 심한 비방이나 신뢰하기 어려운 행동이 발생해도 통일에 진전이 있게 된다.
이명박 정부 (2008/02/25 ~ 2013/02/24)
  • 앞서 남북한 정부에서 합의된 통일 정책인 10.4 정상 회담과 6.15 공동선언을 제외하고, 남북 관계의 출발점을 10년전으로 되돌려 1991년 노태우 정권때의 남북기본합의서를 강조함.
  • 핵 문제를 종속 변수로 핵의 포기를 위한 진전 상황에 따라 남북관계 발전을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노무현 정부(2003/02/25 ~ 2008/02/24)
  • 남북한 간의 전쟁상태를 끝내 긴장을 완화하며 상호간의 평화를 정착시키며, 이를 통해서 남한과 북한 모두가 발전을 이루며 통일의 터전을 마련한다.
  • 남북한 경제적인 차이가 너무 크고 정치·사회적 격차가 크므로 북한 경제를 어느정도 끌어올린 후에 자연스럽게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북한의 경제적인 지원을 강화함.
  • 연평 해전을 남한만의 피해자가 아니라 남북한간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 남한과 북한 모두 피해자로 인식하고 상호 긴장 완화 노력. - 2007년 10월 4일 북한의 김정일을 만나 서해상 무력 충돌의 방지를 위해 “서해 평화 협력 특별 지대”에 합의함.
  •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 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
  •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 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한반도에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 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하여 공동 어로 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 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 사업과 군사 보장 문제 등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하여 북측 인민무력부장과 남측 국방부 장관 사이의 회담을 합의.
  • 남과 북은 민족 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역을 위해 견제 협력 사업을 공리 공영과 유무상통(有無相通: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융통한다)의 원칙에 의해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 발전해나간다.
김대중 정부(1998/02/25 ~ 2003/02/24)
  • 남북한 간의 전쟁 상태를 영속적으로 긴장을 완화한다.
  • 통일 정책은 폐쇄 전쟁 지향에서 적극 평화 지향으로 가자는 것.
  • 이후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에 입각해 연합제에 의한 국가연합제. - 단계→연방제, 단계→완전 통일 등의 단계를 거치는 점진적 통일 방식인 '3원칙 3단계 통일 방향'을 구상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공식 제안함.
  • 햇볕정책은 북한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외 정책으로, 북한에 협력과 지원을 함으로써 평화적인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
  • 햇볕정책은 비유법으로 사용된 상징어로 대북포용정책 또는 포용정책으로도 불리고, 공식적인 명칭은 대북화해협력정책.
  • 대북외교 정책 중 햇볕정책으로 시작된 대북포용정책은 김대중 정부 주요 정책중 하나로 당시의 정부 이전에는 북한과의 관계는 형식적이고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군사적 대치관계에 놓여있었으나, "선평화 후통일"을 통일의 기본원칙으로 계승해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 교류를 기반으로 한 화해, 협력 등을 강조한 포용정책으로 전환됨.
  •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정상회담과 개성공단 설립 등의 가시적 성과를 만듬.
  • 1998년 6월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에 합의했고 단독 사업자로 선정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경유해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경제 협력에 대해 회의를 함.

북한 정부의 통일 정책[편집]

북한 정부 (직무 기간) 통일 정책 등 [3],[4]
김정은 정부 (2011/12/17 ~ 현재)
  • 김정은은 3차 핵 실험등을 통해서 공세적인 태도와 핵무기를 갖고 있음을 표현함,
  • 2014년 3월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 등에 의해 남한의 정상과 합의된 낮은 단계 연방제 방안을 계승하여 추진하기를 제안.
  • 2014년 8월 10일 의 리수용 외부상은 , 아세안안보포럼서 "고려연방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함.
  • 김정은 제1 위원장은 공개 발언:
    • 첫째, 통일의 주체는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 민족이며, ‘우리민족끼리’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
    • 둘째, 통일을 바라는 누구와도 대화를 하겠다는 것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
    • 셋째,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자는 것 “북남공동선언을 존중하고 리행하는 것은 북남관계를 전진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근본전제”
  •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 합의가 상대방의 체제를 존중한다는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한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하며 남측이 남북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체제 비난을 중단하면 남북관계 경색이 풀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관계 개선은 쉽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짐.
  • 실제로 북한이 지난 1월 ‘중대 제안’에서 상호 비방 중단을 제안했고, 2월 남북고위급접촉에서도 비방 중상 중단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제기함.
김정일 정부 (1991/12/24 ~ 2011/12/17)
  • 김정일은 북한의 최악의 식량난인 “ 고난의 행군”을 겪은 후 2000년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기 하였으며, 남북 정부가 각각 정치, 군사, 외교권을 인정하면서, 상호 간에 체제를 인정함.
  • 199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라는 담화에서 체제 인정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 우리는 북과 남이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조국통일대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힘을 합쳐 나갈 것을 주장한다.
  • 북과 남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절박한 요구이다. 북과 남의 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관계로부터 신뢰와 화해의 관계를 전환시켜야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해나갈 수 있다.
  • 남쪽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북한은 김대중 정부가 화해협력 정책을 펴자 이에 호응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다.
  • 남과 북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
  • 공통점은 ‘평화공존’의 단계를 둔다는 점, - 차이점은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는 민족 통일 기구를 두어 하나의 연방 국가가 되는것, 남한의 연합제는 각각 주권을 가진 독립 국으로 협력관계를 발전케 하는 국가 연합.
  • 북한은 1990~92년에 진행된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조건으로 기존에는 주한 미군 철수주장을 바꾸어, 주한미군의 주둔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공식발언: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북(對北) 억제로부터 한반도 전체의 안정자와 균형자로 변형되어야 한다”고 주장함
  •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하루라도 빨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겁니다. ...주한미군은 공화국에 대한 적대적 군대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서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등의 발언을 함.
  • 2007년 2차 남북 정상 회담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 핵심인 “민족통일기구” 를 제외하여 “남북 연합 단계”의 필요성을 인정함.
김일성 정부 (1948 ~ 1994/07/08)
  •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25년 동안 1970년대까지 한반도 적화 통일 전략을 유지함.
  • 1970년대 이후 소련 및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 및 경제난 속에서 안정을 위하여, 남북 2체제를 공고화함.
  • 한국 전쟁(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까지) 전까지 북한은 민주 기지론(민족 해방론)에 의한 무력 적화통일이었으며, 미 제국주의 강점 하에 있는 남한을 북한 지역의 “민주 기지”로 삼아서 공산화하는 것이었음.
  • 김일성은 1960년 8.15 기념 연설에서 남조선이 남북 총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기적 대책으로 남북 연방제를 주장한다 라고 하여, 처음 남북 연방제를 제시하였고, 북한이 무력 통일론 대신 연방제를 주장함. - 정치,군사적으로 남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음. 당시 북한 국민 소득 1일당 137달러이므로, 남한 국민의 150%였음.
  • 1971년 4월 다시 제안한 남북 연방제에서는 “남북 총선거” 를 제외 하였음, 당시 한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총선거를 실시하면, 북한이 불리 할것으로 판단.
  • 1973년 6월 7.4 남북 공동 성명을 합의함.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바탕으로 고려 연방제 통일 방안을 내놓았고 남북간의 군사 대치 해소와 합작 교류, 대민족회의 소집 등을 거쳐 고려 연방 공화국을 수립하자고 제의하였다.
  • 1980년 10월에 “고려 민주 연방제”를 제안하여 남북 1국가 2체제를 공식화하였다고 이때는 중국의 개혁 개방, 미중간 수교로 냉전의 종식, 소련의 지원 축소 및 한국의 국력 신장에 따른 북한 내부 체제를 강화하는 비젼을 제시함.
  • 1991년도에는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를 제안하여 1980년 제안하였던 연방제에 2정부를 추가하여 분단 체제에서의 각각의 정부를 공고화함.
  • “북과 남이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초 우에서” 통일할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1993년 4월 발표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으로 공식화.
  • ‘선 남조선 혁명 후 합작통일’에서 ‘선 남북공존 후 연방통일’로 변화. 특히, 1991년 남과 북의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남한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대남정책이 시작.

남한의 통일 정책의 흐름[편집]

[5] [6]

  • 박정희 대통령시대는 오히려 북한이 우리보다 잘살았기에 당시에는 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
  • 노태우 시절에는 경제가 좋아 졌었지만 한국개발 연구원 (KDI) 추산 통일 비용 1000 억 달러가 도출되어 보류
  • 김영삼 정부는 민주주의 시장 경제로 통일을 이루려 협력하려는 중 김일성 사망으로 중단
  •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통일을 감당할 독자적 경제적 능력에 부담을 적게 하기위하여 , 평화 공존에 및 남북 연합에 의한 통일 방안을 추진을 하였으나, 김정일의 건강 악화로 인한 사망으로 중단
  • 이명박 정부는 기존 남북 정상간 합의된 통일 정책의 추진을 제외하고, 핵문제를 내세워 통일 정책을 10년전으로 후퇴시킴.
  • 박근혜 정부는 다시 유연한 상호 주의를 바탕으로, 국제 협력과 점진적 통일을 통해서 구체적 실현 방안을 추진 중이며, 기존에 합의된 통일 정책에 대해서는 인정하였으나, 북한에서 기존 남북 정상간에 합의된 통일 정책 방향에 대한 발전 요구에 대한 요청의 구체적 대응은 보류 중

독일의 통일 및 한반도 통일 및 정책에 대한 시각[편집]

[7] [8] [9]

  • 독일의 통일은 동독 인민회의에 결정에 따른 상호 합의에 의한 연방 편입방식에 의한 통일이며, 일부 부정적인 통일론자들이 언급한 일방적인 흡수 통일이 아니었다.
  • 독일은 20년 정도 전에 통일 당시 7700 억 달러 무역 규모가 3조 달라로 4배가 증가하고, 무역 흑자가 2500억 달러로 동독에 작센, 튀링겐 주 등 광학전지 등 최첨단 산업으로, 기존 영국, 프랑스 주도 유럽을 이제는 독일이 주도 하고 있다.
  • 한반도의 통일은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인해서 장기적으로 동북아 경제 발전에 일본과 함께 주도하는 역할을 할것이다.
  • 남한의 30배가 넘은 북한 지하자원 가치 1경원 이상의 가치와 북한의 노동력,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등에 대해서 골드만 삭스의 통일 강국론이 있었고,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 "전쟁 위험이 없어진, 통일된 한반도의 북한지역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 공언 하였다.
  • 한반도 통일은 독일의 통일보다 쉽게 이루어 질 수 있으며, 이유는 독일의 "블륨 교수" 및 오스트리아의 "프랑크 교수"의 1991년부터 남북관계를 연구해온 근거 있는 주장에 의한다.
  • 북한의 주체 사상 체제와 군사 정권의 건재함 등으로, 독일과는 다르게 통일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으며, 북한 주민의 95% 이상이 통일을 희망하고 있다.
  • 통일이 되었을 때 추진해야 할 주요 5가지 사항은 우선 재산권 반환 대신 보상을 원칙으로 하며, 둘째 인프라 개발 특별법으로 빠른 시간에 인프라를 개발하며, 세번째는 북한의 인공위성 및 미사일 개발등 다수의 우수 과학 기술진을 보호하며, 네번째 북한에 공장 건설 등 직접 투자를 촉진하고, 다섯번째는 대규모로 훈련된 인민군 조직을 사회 인프라 건설 사업 등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것이다.
  • 북한의 정권 지도부는 협력 파트너로 반드시 필요하며, 통일 후의 발생가능한 부작용을 최소화 하며, 통일 과도기에서 북한 주민들을 통제 할 수 있는, 김정은 북한 정부의 유지를 인정해야한다.
  • 즉 한국주도의 통일이 아니라, 북한과 남한이 같이 주도하는 앞서 합의된 연방제방식 통일을 상호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관건이다.
  • 한반도 통일은 제로 베이스 상태의 북한이 최적의 시점이며, 경제가 회복된 후에 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위험하다.
  • 과거 남북 교류 협력 기금의 일부분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미사일 개발과 핵을 보유할수 있도록 바탕이 되었으며, 북한에 자금을 더 투입된다고 해도, 북한 주민 식량 배급량과 체제 유지를 위한 군사력 증강에 투입되게 되게 되거나, 비효율적으로 기존 시설의 유지보수 부분에 사용될 것이다.
  • 최신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남한의 지원으로 북한의 허허 벌판에 새롭게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하며, 비용을 절감 효과를 언급하면서, 북한에 대규모 자금지원을 통한 후, 북한의 경제 개발후에 해야 한다는 통일 시기 지연보다는, 빠른 통일 후 체계적인 북한 인프라 개발이 효과적이다.

통일 과정의 해결 과제들[편집]

경제, 통일 비용, 이념적 성향[편집]

남북간의 경제는 상호 통합이 난해한 격차가 굉장히 큰 상황이며, 상호 이질적이며, 크게 3가지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이는 각각 소득의 비대칭성, 산업구조의 비대칭성, 경제제도의 비대칭성으로, 남북 간 국민소득의 격차는 40배가 넘는 수준이며, 탈공업화, 지식경제 사회로 진입 중인 남한과는 다르게, 북한은 제조업 기반 경제의 실패로 일차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퇴행적 과잉 공업화 경제이고, 시장경제제도를 유지중인 남한과 달리 북한은 계획 경제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비록 장기적으로 볼 때 통일이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편익이, 통일에 지출되어야 하는 투자 비용보다 크다는 주장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편익은 과도기를 지나서 단계적으로 오는 반면, 통일 비용은 통일 직후부터 집중적으로 발생을 예상해야 하므로, 단기적으로 과도기 에서는 경제적 큰 비용 지출을 예상해야 한다.[10]

• 통일비용에 대한 예상 1)초기 안정화 비용 2) 분야별 통합비용 3) 사회복지비용 4) 경제적 인프라에 대한 투자비용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 이념적 성향과 사회적 모순 및 정치적 이해관계 해소: 분단 70년 동안 남한과 북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게 되었으며, 상호 통일 이후에도 서로를 외국인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11]

• 과도기 필수 투자 비용 과 연방제 정부간 협력 조율: 남한 사람은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복지 비용 및 원시적인 수준의 공업, 도로, 전기, 철도등의 건설 비용을 예상해야 하며, 북한 사람들은 남한의 경제적 지원으로 굶주림에서 생활은 좀더 좋아 지더라도, 70년 동안 익숙해진 북한이라는 세계와 정신적인 주체 사상에 대한 혼란을 막을수 있도록, 남북한간 사전 협의된 연방제에 의한 통일이후, 남-북한 정부간의 긴밀한 협력과 역할이 필요하다. 즉, 장기적으로 통일 직후의 과도기가 끝난 다음, 통일한국은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사회적인 부분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문제는 과도기이며, 통일은 결국 한민족에겐 대박이지만, 통일 직후에는 영광스러운 길로 가는 험한 과도기의 길을 거쳐가려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 하다 [12]

• 탈북자 단체 인 자유 북한 운동 연합 협력과 조율: 2014년 10월 10일 북한 정권을 비난하는 대북 전단 20만장을 경기도 차주 오두산 통일 전망대에서 날려 보낸후, 남북간 총격전 발생 –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직접 적으로 위협하는 행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 와 추가 발생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동북아 4대 국가의 인식 및 손익[편집]

[13] [14] [15]

  • 한국의 통일 외교 전략을 위해서는 한국의 통일에 직접적 내지 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주요 관계국인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해당 국가와의 손익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방향을 수립하는 것이 순조로운 한반도 통일의 길을 열어가는데 필수적이다.
  • 특히 중국은 세계 경제를 두번째로 주도하는 G2 로 부상하는 신형 대국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는 존 미어샤이머(John J.Mearsheimer)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적” 대치 관계가 지속되면 원심력이 증가되어, 세계 중심국 G1, G2 사이에서 ”최악의 지정학적 위치”가 될 수 있다.
  • 그러나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의 저서 ‘Next Decade’에서 강조한 것처럼 향후 10년의 변혁기를 전략적으로 준비하여 한반도가 통일의 길로 간다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구심력이 크게 증가되어 원심력을 오히려 이끌면서 통일 한국은 선진 강대국(GK: Great power Korea)으로 도약·발전하게 될 것이며 한반도는 현재 어떤 길로 갈 것인지 중요한 과도기에 놓여져 있다.

미국의 인식과 손익[편집]

구분 요약
미국에서의 한반도 분단 및 통일의 손익
  • 미국이 한반도 분단으로 지불하는 유형 비용은 주한 미군 유지, 핵무기 방어를 위한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및 연합 군사 훈련 등이 있다. 또한 분단으로 인한 큰 군사적인 위협으로 인하여 협력 및 투자를 자제해야 하는 무형의 투자 기회 손실 비용이 있다. 한반도 통일은 중국과의 관계를 협력적이며 동반자적인 관계로 발전케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며,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동북아 지역의 시장 확대화 한반도의 전쟁 위협 소멸로 인한 대규모 투자 기회의 발판이 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 반면 경제, 사회, 문화적인 차원에서 한반도 통일의 부정적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통일 직후 북한 지역의 낙후된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한 상당한 비용의 투자가 될 때 미국 역시도 주요 국제 사회 일원으로 참여할 것이 예상되지만 이것은 기회 창출을 위한 투자 비용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통일 과정에서 주변국들의 발생될 수 있는 비용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급진적인 통일이 아닌 점진적이며 단계적인 통일이 바람직하다.
  • 43대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 체제에서는 군사 강국 및 신보수주의 네오콘(Neocon)을 기반으로 권위주의 및 자국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다소 강제적인 방법으로 전파하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사담 후세인을 사형하고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2008년 6월 27일 북한의 냉각탑 폭파 등이 있었다. 북한, 이란, 이라크는 악의 축 및 무법 정권(Outlaw Regime)이라고 표현하였으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 이후 김정일과의 상호 평화적인 통일 방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주변 인식이 있었다.
  • 44대-45대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한반도의 재통일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14년 11월 15일 호주 브리즈번의 UQ 대학교에서 “동북아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리더쉽”이라는 주제로 오바마는 공식적으로 미국은 한국과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의 평화적인 협력을 적극 지지하며 군사적인 개입은 최소화한다는 입장을 공표 하였다.[16]
  • 미국 헌법상 최대 2번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으므로 다음 미국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할지 현 미국 대통령 마지막 임기 2017년 1월 20일 이후에 알 수 있다.
미국의 통일에 대한 노력
  • 미국은 현재 정부 차원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특히,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의 해결을 중요시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은 민주주의와 국제 시장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며 세계 안보 전략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동북아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하여 주변 4개국을 포함한 6자 회담은 다자 협의체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의 통일 한국의 가치
  • 한반도 통일은 민주주의 및 시장 경제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이며 통일 한국이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공동 국제 번영에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통일 한국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지속적인 발전으로 하여금 시장 경제, 인권 및 평화 등의 가치를 현실화하는 등 국제 사회 기여도를 높힐 것이다.

중국의 인식과 손익[편집]

구분 요약
중국에서 한반도 분단과 통일의 손익
  • 중국은 북한에 원유와 식량을 포함한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규율을 위반하며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경제 원조는 중국의 ‘책임 있는 대국’ 이미지를 훼손시키지만 합의된 "조‧중우호조약"에 근거한 북한 안전 보장의 책무를 포함하여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 강화에 대한 안보적인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이런 중국의 비용 부담을 경감하여 중국의 국제 사회에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다.
  • 통일 한국에 미국이 주둔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경감될 것이며 이로 인해 중국은 동북 지역에 배치하고 있는 군사력을 대폭 경감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중국에서는 통일 한국에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은 북한이라는 전략적인 완충지(Buffer Zone)를 손실한 채로 미국과 직접 국경을 인접하게 되므로 미군이 주둔하지 않는 것을 희망한다.
  • 통일 한국의 경제 개발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 확대 및 국제 협력의 필요성 등을 통해 중국의 낙후한 동북 3성인 지린 성, 랴오닝 성, 헤이룽장 성 등의 뒤쳐진 경제를 회복할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본다.
  • 통일로 인해 한‧중 및 한‧중‧일 자유무역지대가 확대되고 러시아와 몽골 등이 포함되는 거대한 “아시아 경제지대”가 탄생되어 상호 공동의 이익이 발생할 것을 기대한다.
중국의 통일에 대한 노력
  •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6자 회담을 중시한다. 중국도 6자 회담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불완전한 다자 협의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현재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최선의 기제라고 주장한다.
  • 중국은 6자 회담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강경책과 더불어 핵 개발 포기시 국제사회가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이익, 예를 들어 위성 대리 발사와 같은 유인책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에서의 통일 한국의 가치
  • 중국은 통일 한국이 동아시아 문화에 기반을 두고 동아시아의 공동 번영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유는 통일한국이 인권, 민주, 자유 등 서구 이념의 잣대로 중국의 내정에 간섭해서는 않되며 현재 중국의 일당 독재 체제를 인정하고 통일 한국이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자국에 대한 통합 만에 집중해야 하며 통일 한국이 주변의 대국들 사이에서 균형자와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기를 원한다.
  • 중국과 홍산 문명 등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 인식, 영토와 해양 경계선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있기에 이것을 차근차근 풀어갈 수 있도록 중국의 입장에서는 통일 한국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적절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의 인식과 손익[편집]

구분 요약
일본에서의 한반도 분단과 통일의 손익
  •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로 인한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과 한반도 분단으로 인해 일본이 경제적으로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는 점과 한반도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일본 사회가 내부적으로 분열될 수 있다는 점을 한반도 분단으로 인한 일본의 비용이라고 본다.
  • 일본은 경제적 측면에서 통일 한국이 현재 세계적인 경제 대국인 일본과 향후 비슷한 규모의 경제 대국으로 경쟁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도 서로 큰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이것이 선의의 경쟁 관계가 되기를 희망한다.
  • 군사‧안보 그리고 경제‧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모두 일반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일본이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기를 희망한다.
일본의 통일에 대한 노력
  • 일본의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남북대화를 통한 남북 관계의 안정을 일차적인 과제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전제 하에 6자 회담을 재개하여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것이 일본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현재 미국과 중국에 큰 의지를 하는 대북 정책에서 일본의 역할을 재인식해주기를 희망하며 기존 6자 회담에서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동북아의 대표적인 지역협의체로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 한국이 일본에 대한 역사 문제로 인해 협력하려는 논리를 부정하려는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일본을 미들 파워 외교(Middle Power Diplomacy) 상대로 인식하면서 미국, 중국 등과 함께 통일의 주도권, 즉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한반도에서 가져가는 상대로 대해주기를 희망한다.
일본에서의 통일 한국의 가치
  • 통일 한국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일본과 협력할 수 있는 국가’라고 보며,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우호적인 국가로 지속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 분단 국가에서 통일 국가로 전환되는 모델이 되어 동북아 지역에서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국가가 되기를 바라며 특히, 지정학적인 이점을 활용하여 “동북아 경제 공동체”의 중심 국가의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러시아의 인식과 손익[편집]

구분 요약
러시아에서의 한반도 분단과 통일의 손익
  • 1945년 한반도의 분단으로 러시아가 감당하고 있는 분단비용은 군사‧안보적 측면과 경제‧사회‧문화적 측면의 비용이 있고, 구 소련은 한국전쟁과 북한 재건에 유형의 비용을 지불 했고, 1991년 이후 러시아는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 동북아 경제협력‧통합의 지연과 같은 무형의 분단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 군사‧안 보적 측면에서 남북한 대결구도의 종식으로 인한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안정을, 경제‧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으로 인한 러시아의 아태 지역 진출 가시화와 극동‧시베리아 개발 협력의 확대를 예상한다.
  • 단 통일 한국의 부상으로 인해서 동북아 세력 변화시 국경 관리 비용 및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경제적 영향력의 감소 및 북한 난민의 러시아 유입이 될 수 있는 부정적인 부분이 발생될 수 있기에 통일 과정에서 북한이 반드시 참여하여 국제 사회에서 협력을 통한 한반도 통일이 되기를 희망한다.
러시아의 통일에 대한 노력
  • “러시아 외교정책개념”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고 유엔 안보리(UNSC) 결의를 준수하며 6자회담의 틀 내에서 단계적 대화 진행을 지지한다. 궁극적으로는 북한 지도부를 압박하여 핵‧미사일 프로그램 폐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 러시아는 동북아 평화안보 메커니즘 구축을 주도한 바 있으며, 지역의 경제‧안보 행위자를 중재하여 공동의 접근을 제안할 수 있는 이른바 ‘5자 회담’의 중추적 역할을 하기를 희망한다.
  • 러시아는 또한, 경제적 차원에서 동북아 다자간 협력을 주도하는데 관심이 크며 남‧북‧러 가스관, TSR-TKR 철도망 연결 사업, 그리고 아태 지역 경제 통합 등 경제 협력 분야에서 성과를 만들기를 희망한다.
러시아에서의 통일 한국의 가치
  • 통일 한국은 상호 존중과 협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건전한 민족 노선의 확립을 통해 2개의 한국을 자연스럽게 통합함은 물론 세계평화와동북아 안정에 기여하고 공동 번영과 정치적 자유를 수호하는 모범적인 국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고 북한의 체제 이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함으로써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이끌고 남북한의 경제통합이 동북아 경제통합의 촉매제로 기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아태 지역의 개발 협력 패러다임(paradigm)을 지지하면서 이른바 ‘윈윈(win-win)’개념에 기초한 경제 협력 증대에 큰 역할을 기대한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http://www.dailynk.com/korean/sub_list.php?cataId=nk01401
  2. http://www.dailynk.com/korean/sub_list.php?cataId=nk01412
  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03/2014020300190.html
  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03/2014020300213.html
  5. http://www.kinu.or.kr/upload/neoboard/DATA05/1116-%C5%EB%C0%CF%B1%B3%C0%B0%C0%DA%B7%E1%C1%FD%28%C3%D6%C1%BEOK%29.pdf통일교육(과거•현재•미래) – 통일 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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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The Future of U.S. Leadership in Asia Pacific Region - Barack Obama speaks at Brisbane during G20 http://www.youtube.com/watch?v=52ZPlDSmEj4

참고문헌[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