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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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교(仙敎)는 한반도의 고유 종교이다. 상고시대부터 시작된 신선사상은 신화적 국가인 신시와 고조선 · 삼국 · 조선시대의 제천의식(祭天儀式)과 선도(仙道)를 수행하는 선풍(仙風)으로 이어져 오다가, 1997년 취정(聚正) 박광의 원사가 환인(桓因)을 섬기는 "한민족고유종교 선교(仙敎)를 중창"하고.[1] "선교종단(仙敎宗團)을 설립"하여.[2] "대한민국의 종교"로 등록되었다.[3]
한국의 선교 현황
[편집]한국의 선교(仙敎)를 중국의 도교(道敎)나 무속(巫俗)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선교종단(仙敎宗團)의 선교경전[4] 및 선교정기간행물[5] 출판 보급을 통하여[6] 한국 선교의 역사를 알림으로써[7] 선교(仙敎)는 한민족고유종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8] 2017년 현재 선교(仙敎)는 전국에 7교구 33교당과 12,942명의 신도가 있으며.[9] 재단법인선교(仙敎) · 선교종단보존회 · 선교총림선림원 · 선교문화예술보존회로 형성된 선교종단이 정부에 등록되어 있다.[10]
한국 선교의 역사
[편집]선교(仙敎)는 환인을 신으로 모신 것에서 시작되어, 환웅(桓雄)의 신시의 제천(祭天),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계승되었다.[11] 그 후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고구려(高句麗)의 동맹(東盟), 예(濊)의 무천(舞天) 등 제천의식과[12] 신라 화랑의 명산대천 기도와 팔관회, 고종 34년에 세운 원구단(圓丘壇), 태백산 천제단(天祭壇), 마니산 참성단(塹星壇),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경일로 정한 개천절(開天節)은 모두 선교(仙敎)의 선풍(仙風)을 이은 것이다. 이렇듯 상고시대의 하늘 교화와 고조선의 건국이념 이후, 선풍으로 이어진 한국 고대선교(古代仙敎)의 역사(仙史)는 현대에 이르러 환인(桓因)을 한민족의 하느님으로 섬기며 선도를 수행하는 선교종단(仙敎宗團)으로 계승되었다.[13]
- 저술과 자료, 종교 교리에서 나타나는 한국 선교 관련 기록과 주장
《동국고대선교고》
[편집]1910년에 신채호가 쓴 글로, 한국 고대에 선교(仙敎)라는 고유 종교가 있었다는 점을 논증하려 한 사론(史論)이다.[14]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교(仙敎)는 우리 고대에 성행하였던 것이다. 당시의 서적들이 흩어지고 없어져서 그 원류(原流)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에, 혹자는 이를 중국의 도교(道敎)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여러 방면으로 참고하여 보건대, 이것은 우리나라에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지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라는 증거들은 사실 매우 많다.
천선(天仙), 국선(國仙), 대선(大仙) 등의 명칭이 삼국 이전 및 삼국 초기에 여러 번 나타나는데, 도교의 경전(經傳)은 고구려 영류왕(榮留王)때에 처음 전래된 것이 그 첫째 증거이다. 도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불교가 들어온 이후이지만, 선교(仙敎)는 불교가 수입되기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이 그 둘째 증거이다. 도교는 노자(老子)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기년아람(紀年兒覽)』에 단군(檀君)을 천선(天仙)이라 칭하였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단군을 선인(仙人)이라 칭하였으니, 단군과 노자의 선후(先後)를 계산해 보라. 단군은 천수백 년 이전 사람이고 노자는 천수백 년 이후 사람인데, 천수백 년 이전 사람이 어찌 천수백 년 이후 사람이 창설한 교(敎)를 수입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셋째 증거이다. 선교(仙敎)가 만일 삼국시대의 임금(人君)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이라면, 동명성왕과 대무신왕(大武神王)도 저 중국의 한 무제(武帝), 선제(宣帝)와 같이 방사(方士)(:도교에서 신선술神仙術을 수련하는 사람)를 바다로 보내어 불사약(不死藥)을 구하였을 것이며, 명림답부(明臨答夫)와 김유신(金庾信)도 저 장량(張良), 이비(李泌)처럼 벽곡(辟穀)(:수련법의 하나로, 곡식은 먹지 않고 솔잎, 대추, 밤 등을 생식하며 사는 것)을 하고 도인술(導引術)(:도가道家에서 신선이 되기 위한 양생법의 하나)을 배웠을 텐데,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 그 넷째 증거이다. 도교에는 천사(天師), 진인(眞人)과 같은 봉작(封爵)이 있지만, 이것은 당(唐), 송(宋) 이후에 시작되었을 뿐더러 또한 단지 재초(齋醮)(:불교나 도교의 제사) 등을 주관 할 뿐이고 정치상 어떤 실권도 없는 것이지만, 고구려, 백제의 조의(皂衣), 대선(大仙) 등은 그 권력이 당시 왕과 유사하여 서양 고대의 예수교의 대사제(大司祭)와 같았다는 것이 그 다섯째 증거이다. 중국의 도교는 세상을 피하여(避世) 사는 것을 숭상하는 교(敎), 죽음을 겁내어(畏死) 오래 사는 길을 추구하는 도(道)이다. 그러므로 제왕의 자리에 있는 자가 이 교를 믿으면 만승(萬乘)의 자리를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벗어버리고 밝은 대낮에 승천(昇天)하기를 추구하며, 사민(士民)이 이 교를 믿으면 산에 들어가 금단(金丹)(:선단仙丹. 신선이 만든다고 하는 장생불사의 영약)을 연마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선교(仙敎)는 그렇지 않았다. 명림답부는 대선(大仙)이었지만 폭군(次大王)을 폐하고 외구(外寇)(:공손도)를 물리 쳤으며, 바보온달(愚溫達)은 대형大兄(:즉 仙人)이었으나 선비(鮮卑)를 물리쳐 영토를 개척하였고, 또 신라와 싸우다 죽었으며, 김유신(金庾信)은 국선(國仙)이었으나 중악(中岳)에 들어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고구려, 백제를 멸하였으며, 김흠순(金欽純), 김인문(金仁問)은 선도(仙徒)였으나 모두 전쟁터에 나가서 싸웠던 명장(名將)들이었으며, 관창(官昌), 김영윤(金令胤), 김흠운(金歆運)도 역시 선도(仙徒)였으나 나라를 위하여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 그 여섯째 증거이다.
최고운崔孤雲(: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이르기를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었으니, 선교(仙敎)(:風流)가 그것이다. (國有玄妙之道[국립현묘지도] 仙敎是已[선교시이]”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다. (設敎之源[설교지원] 備詳仙史[비상선사]”라고 하였다. 아, 슬프다. 만약 선사가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이 있다면 민족 진화(進化)의 원리를 연구하는 데 큰 재료가 될 뿐만 아니라, 동양 고대의 여러 나라에는 보통의 역사만 있고 종교, 철학 등 전문사(專門史)는 없는데, 홀로 이 선사(仙史)는 우리나라에서만 특별히 산출된 종교이므로 사학(史學)상 일대 광채(光彩)를 낼 수 있었을 텐데, 그 책이 지금까지 전해지지 못함이 아깝다.
『고기(古記)』에서 기록하기를, "환인(桓因)이 아들 환웅(桓雄)을 내려 보내어 따르는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白山)에 내려오니, 이가 곧 환웅천왕(桓雄天王)이다."라고 하였다.
환웅천왕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主宰)하며 아들 단군(檀君)을 낳았다고 하였다. 『기년아람(紀年兒覽)』에서는 이르기를 "환인(桓因)은 하늘(天)이요, 환웅(桓雄)은 신(神)이다."라고 하였다. 환인, 환웅, 단군은 소위 삼신(三神)(:또한 삼성이라고도 한다)이고, 삼신(三神)은 즉 선교(仙敎) 창립의 조상이다. 그 뜻은 대략 예수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나 불교의 삼불여례(三佛如來)와 같은 것이다.
묘향산(妙香山)에는 단군굴(檀君窟)이 있고, 금수산(錦繡山)에는 동명왕의 기린굴(麒麟窟)이 있으며, 석다산(石多山)에는 을지문덕굴(乙支文德窟)이 있으며, 중악산中岳山에는 김유신굴(金庾信窟)이 있으니, 단군시대는 기록이 없어져 고찰하기 어렵지만, 삼국시대라면 결코 우리 민족이 혈거(穴居)하던 시대는 아닐 것이다. 또한 을지문덕, 김유신 두 분은 경천위지(經天緯地)의 대인물이거늘 무슨 이유로 굴에서 살았겠는가? 생각건대, 이는 석가(釋迦)의 영산(靈山)과 마호메트의 동굴(洞窟)과 같이 선교도(仙敎徒)가 심술(心術)을 수련할 때 반드시 굴속에 들어가서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대저 이 선교(仙敎)가 삼국시대에는 불교와 격렬한 경쟁을 하였다. 그러므로 불교가 처음 수입되자 신라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그것을 이도(異道)라고 배척하였다. 이러므로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불교가 대성(大盛)하게 되자 마침내 선교(仙敎)는 멸절(滅絶)하였다.
이는 중고사(中古史)의 한 큰 연구의 가치가 있는 것인데, 이를 모두 모호하게 지나쳐 버렸기 때문에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선교(仙敎)의 시말(始末)의 알기 어려움을 탄식하였던 것이다. 고서적(古書籍)의 흩어지고 없어짐을 한탄하며 옛 역사가들의 노망(魯莽)을 안타깝게 여겨 이 선교 사실을 여러 가지 책에서 베껴서 역사를 읽는 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바이다.[15]"
《삼국유사》
[편집]"古記云 昔有桓因 謂帝釋也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遺往理之"
"고기(古記)에 이런 말이 있다. 옛날에 환인(桓因)ㅡ제석(帝釋)을 이른다ㅡ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계셔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어 구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산(三危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 사람을 다스리게 했다."[16]
1979년 이유립이 출간한 책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이 책과 그 내용에 대해 위서라고 결론지었고, 고중세사의 사료로 인정되지 않는다.[17]
"後桓雄氏繼興奉天神之詔降于白山黑水之間鑿 子井女井於天坪劃井地於靑丘 持天符印主五事在世理化弘益人間 立都神市國稱培達 擇三七日祭天神忌愼外物閉門自修呪願有功"
"후에 환웅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에 천평을 마련하고 청구에 정지를 정했다. 천부인을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다. 또 신시(神市)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倍達)이라 칭했다. 삼칠일三七日을 택하여 천신께 제사지내고 밖의 물건을 꺼리고 근신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몸을 닦아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18]"
《고려의종칙서》
[편집]"遵尙仙風. 昔新羅, 仙風大行, 由是, 龍天歡悅, 民物安寧. 故祖宗以來, 崇尙其風久矣. 近來, 兩京八關之會, 日減舊格, 遺風漸衰. 自今八關會, 預擇兩班家産饒足者, 定爲仙家, 依行古風, 致使人天咸悅."
"선풍(仙風)을 준수하고 숭상하라. 옛날 신라에서는 선풍(仙風)이 크게 행하여져서 이로 말미암아 용천(龍天)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백성과 만물이 안녕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조종(祖宗) 이래 그 선풍을 숭상한 지가 오래되었다. 근래에 양경(兩京)의 팔관회(八關會)가 날로 예전의 격을 잃어 유풍(遺風)이 점차 쇠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팔관회에서, 양반(兩班)으로 가산(家産)이 풍족한 자를 미리 골라 정하여 선가(仙家)로 삼고 고풍(古風)대로 행함으로써 사람과 하늘로 하여금 모두 기쁨을 다 누리도록 하라.[19]"
《천지인합일선교》
[편집]"우리 민족의 고유종교는 선교이다. 선교는 우리 한민족의 시원(始原)을 함께 하는 근원종(根源宗)으로써 선교(仙敎)는 고조선 이후 우리 한민족의 뿌리가 되어온 한민족 고유종교(固有宗敎)이며, 이러한 선교의 역사를 빼놓고는 역사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20]
《선교소경전1. 선교-선교신앙》
[편집]"한민족은 환인상제의 직계자손으로 하늘을 아버지로 섬기는 천손민족(天孫民族)이다. 한민족의 전통과 의례 풍속과 민간신앙 속에는 환인상제님의 교화와 지극한 마음으로 사람이 하늘을 섬기던 고대로부터의 신앙의식이 담겨있다. 우리 한민족은 본래 하느님사상을 본원으로 한다. 일만년에 달하는 한민족의 역사 속에 환인하느님을 섬기는 믿음이 뜨거운 핏줄을 타고 살아 있다. 선교(仙敎)는 환인상제(桓因上帝)를 경외하는 아버지로 신앙하는 천손신앙의 맥을 계승하였다."[21]
1994년 윤내현이 쓴 단행본 서적이다.
"선인사상(仙人思想)은 고조선의 사상이었는데, 그것이 태제국(泰帝國 :고조선)이나 그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 중국에 전달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고조선의 선인사상(仙人思想)은 중국의 삼국(三國)시대 이후 도교(道敎)가 종교로 성립되면서 중국의 전래사상과 혼합되어 신선사상(神仙思想)으로 그 명칭과 내용이 변모되어 도교(道敎)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의 옛 문헌에 고조선의 종교는 선(仙)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래서 이를 수행하는 사람을 선인(仙人)이라 불렀던 것이다. 따라서 선(仙)을 추구하는 길을 선도(仙道)라 했을 것이며 그 가르침을 선교(仙敎)라 하였을 것이니 종교의 명칭으로는 <선교(仙敎)>라 함이 마땅할 것이다."[22]
《민족종교통합연구》
[편집]"선교(仙敎)는 천일(天一) · 지일(地一) · 인일(人一)의 삼신일체(三神一體) 즉 도불유일체(道佛儒一體)의 종교(宗敎)이다. 삼신일체(三神一體)가 만사만물(萬事萬物)에 공동작용(共同作用)하면 도불유일체(道佛儒一體)의 선교(仙敎)가 되고 나누면 각각 도교(道敎) · 유교(儒敎) · 불교(佛敎)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삼신일체(三神一體)를 집일합삼(執一合三) 회삼귀일(會三歸一) 한다고 풀이한다."[23]
각주
[편집]- ↑ 한민족고유종교 선교(仙敎). “한민족종교회담 개최(세종문화회관)”. 《한겨레신문》.
재단법인 선교는 상고시대의 역사적 근거를 가진 한민족의 고유신앙으로, 1997년 창교돼 한민족 정기회복을 위한 경전편찬 및 포덕교화사업을 활발히 진행해 왔다.(2016.11.4일자 20면)
- ↑ 한국의 선교종단(仙敎宗團). “재단법인선교 산하법인”. 《대법원인터넷등기소》.
사단법인선교종단보존회(법인등록번호200121-0023963), 사단법인선교총림선림원(법인등록번호205221-0000443), 사단법인선교문화예술보존회(법인등록번호274321-0030536)
- ↑ 선교종단. “재단법인선교(법인등록번호200122-0020561)”. 《대법원인터넷등기소》.
법인의 목적: 본 법인은 선교의 교리와 수행법을 통하여 건전한 신앙인을 배출함으로써 선교종단을 보존하고, 선교문화를 발굴보존하며, 자선 구호 등의 공익적 사업을 통하여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평화로운 사회상 구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한다.
- ↑ 선교경전. “천지인합일선교”. 《국립중앙도서관》. 2017년 8월 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2월 12일에 확인함.
표제/저자사항 仙敎: 天地人合一 / 원저: 선교환인집부회 원사 선교환인집부회 선교총림선림원 발행사항 용인: 선가서림, 2012 형태사항 363 p. ; 23 cm 총서 사항 (仙敎叢書 ; 1) 주기사항 감수: 선교총림선림원 원주 참고 문헌: p. 362-363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969701-1-8 93200
|인용문=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55) (도움말) - ↑ 선교정기간행물. “선교(仙敎)”. 《국립중앙도서관》. 2017년 8월 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2월 12일에 확인함.
표제/저자사항 仙敎 = 선교 / 선교환인집부회 [편] 발행사항 화순: 선교환인집부회, 2007- 형태사항 책 ; 26 cm 주기사항 표제관련정보: Korean traditional religion, since time immemorial haven·SeonGyo 표제관련정보: 한민족유교신앙·천지인합일·선교 변경전표제: 선교신앙, 통권1호(2007년)- 전자자료: http://www.seongyo.kr 전자자료: http://www.seongyo.info 전자자료: http://www.seongyokorea.info 계간, 표준번호/부호 ISSN 2287-6596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법-> 240.5 소장사항 통권1호(2007년)-통권18호(2017년여름)
- ↑ 한국잡지정보관, 종교지. 《선교》. 2018년 8월 7일에 원본 문서 (정기간행물 1권~18권)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4월 12일에 확인함.
'정기간행물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전라남도청에 등록된 '한국의 고유문화 연구개발 및 보급' 을 위한 연속간행물.
- ↑ “한민족고유종교 선교(仙敎)의 부활”. 《한겨레신문》 (2016.6.30 일자 7면).
- ↑ 선교(仙敎) (2016년 4월 11일). “재단법인선교 창교20주년”. 《전남매일》.
(재)선교(仙敎)는 지난 9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창교 2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환인·환웅·단군 삼성(三聖)을 한민족의 성인으로 숭배하며 환인을 신앙대상으로 하는 민족종교 선교는 1997년 대창교 이후 한민족 정기회복을 위한 포덕교화 지원사업을 활발히 진행해 왔다.
- ↑ 특허청(종교). 《仙敎》. 선교종단 재단법인선교 신도현황 2017년.
총신도수 12,942명(수계자 3,093명, 미수계자 9,849명)
- ↑ 재단법인 선교(仙敎) (2016년 11월 3일). “"민족종교대통합을 위한 한민족종교회담"”. 《뉴스와이어》.
선교는 상고시대의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한민족 고유신앙으로 신라의 석학 최치원의 <난랑비서>와 단재 신채호의 <동국고대선교고>에 현묘지도(玄妙之道)·풍류(風流)·유불도 삼교의 근본이 되는 실내포함삼교(實內包含三敎)로 설명되어 있으며 선사(仙史)라는 말로 선교의 역사가 실재했음을 기록하였다. 선교(仙敎)는 1997년 정축년, 선교종단의 종정 취정원사가 전라남도 나주에서 창교한 민족종교다. 고대의 선교는 풍류도 신선도 현묘지도와 같은 것이며, 환웅천왕의 신시배달국과 선인왕검의 고조선의 국교였다. 사회가 극도로 혼란한 현대에 이르러 ‘정회(正回)’의 종교로서 선교가 계원창교 되었다. 대한민국의 신성회복과 한민족의 정기를 부활하여 정회희 세상을 만드는 것이 선교의 창교종리다. 선교는 환인상제(桓因上帝)를 신앙대상으로하며, 일심정회(一心正回)를 종지로 한다. 선교의 종표 ‘옴’은 환인상제(桓因)께서 교유하신 천부인(天符印)으로 천지인합일사상이 담겨져 있다. 포덕교화에 정진하는 선교종단보존회, 선교총림선림원, 선교문화예술보존회, 선교지역문화보존회 등 선교의 산하단체가 있다.
- ↑ 윤내현(尹乃鉉). 《고조선연구》. 일지사. 682-692쪽. ISBN 89-312-0433-7.
仙敎는 고조선의 종교였다...국가에 대한 의식은 가족공동체와 씨족에 대한 의식의 연장...더불어 행복해야한다는 홍익인간 이념이 작용...고조선의 국신은 하느님으로서 고조선의 모든 국민은 하느님을 숭배해야 했다.
- ↑ 《후한서》. (後漢書) 卷85 東夷列傳 <夫餘傳>, <濊傳>, <韓傳>.
- ↑ 김형수, (金亨洙, 단국대학교 행정학과교수, 동북아정책전략연구소장, 문화원형컨텐츠산업연구소수석위원). 《천지인합일선교》. 선가서림. 10~15쪽.
선교보전의 말
- ↑ “동국[東國] 고대[古代] 선교고[仙敎考]”. 2025년 12월 15일에 확인함.
- ↑ 단재 신채호 원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문화사》. 사론(史論) 4.동국(東國)의 고대 선교고(仙敎考): 비봉출판사. 519~524쪽. ISBN 978-89-376-0349-5.
- ↑ 일연(一然) 지음; 이재호 옮김. 《삼국유사》. (三國遺事) 기이편(紀異篇) 상(上) 고조선조(古朝鮮條): 솔. 65~66쪽. ISBN 89-8133-125-1.
- ↑ 檀君은 神話가 아니다, 《경향신문》, 1986.10.2. 書店街, 「단군神話」 바람, 《동아일보》, 1986.6.10. 주요 견해로는 김상호, 〈고조선 문제를 둘러싼 노쟁과 금후의 과제〉, 《창작과비평》 1988년 가을호. 박광용, 〈대종교 관련 문헌에 위작 많다〉, 《역사비평》 10호, 1990년. 이도학, 〈재야사서 해제 《환단고기》〉, 《민족지성》, 1986년 11월호. 이순근, 〈고조선 위치에 대한 제설의 검토〉, 성심여자대학교, 1987년. 이상시, 《단군실사에 관한 문헌고증》, 고려원, 1990년. 조인성, 〈《규원사화》론첨보〉, 《경대사론》 3, 경남대학교, 1987년. 조인성, 〈현전 《규원사화》의 사료적 성격에 대한 일검토〉, 《이병도 구순기념 한국사학논집》, 1987년. 조인성, 〈《규원사화》와 《환단고기》〉, 《한국사시민강좌》 2집, 1988년. 조인성, 〈한말단군관계사서의 재검토 - 신단실기·단기고사·환단고기를 중심으로 -〉, 《국사관논집》 3, 1989년. 문혁, 〈《환단고기》에 대한 사료학적 검토〉, 사회과학원-한국학술진흥재단, 2006년 등을 참조.
- ↑ 안함로 撰; 임승국 번역. 주해. 《한단고기》 (1987년) 중판. 삼성기전 상편: 정신세계사. 17쪽.
- ↑ 《고려사》. (高麗史) 世家券第十八 毅宗22年.
高麗毅宗勅書
- ↑ 선교환인집부회 원사. 《천지인합일선교》. 선가서림. 35~39쪽. ISBN 978-89-969701-1-8.
- ↑ 박광의(朴光義) 원저; 사단법인 선교종단보존회 편찬. 《선교_선교신앙》. 선교신앙입문: 선가서림. 19쪽. ISBN 978-89-969701-3-2.
- ↑ 윤내현(尹乃鉉). 《고조선연구》 (1994년) 초판. 일지사. 699쪽.
- ↑ 안창범(安昶範). “민족종교통합연구”. 《한민족종교회담》 (2016.11.2 세종문화회관).
연구자 저서 참조* 한국본원사상강의, 세계4대종교의 발상지는 한국의 백두산이다, 배달성전, 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