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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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음반 로고 | |
| 최영준과 노사사의 노래 | |
| 음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수록곡 | |
| 언어 | 한국어 |
| 발매일 | 1991년 |
| 녹음일 | LP |
| 길이 | 4분 5초 |
| 레이블 | 신세계음향공업 |
| 작사가 | 박문영 |
| 작곡가 | 박문영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韓國을 빛낸 百名의 偉人들)은 박문영이 작사, 작곡하고, 희극인 최영준과 대학교 노래 동아리인 노사사(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가 부른 노래이자 동요곡이다. 이 곡은 1991년에 동명의 앨범을 통해 발표되었다. 노래 가사는 한국의 역사 속에 등장한 실존 인물과 가공의 인물을 포함하여 100명의 역사적 인물들을 대략적인 연대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이 곡은 대한민국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사랑받고 있으나, 위인 명단에 포함된 일부 인물들에 대해서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1][2][3]
역사
이 곡이 발표되기 전인 1990년 12월, 희극인 최영준과 작곡가 박문영, 그리고 대학교 노래 동아리인 노사사('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줄임말)는 '어린이역사노래회'를 창립했다. 역사적인 어린이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이들 셋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이름의 12트랙 앨범을 제작했다. 이 앨범에는 타이틀곡과 그 반주곡을 포함한 5곡의 창작곡과 7곡의 재발매곡이 수록되었다. 1991년 신세계음향공업(현재의 신세계레코드/SSGG 컴퍼니)을 통해 LP, 카세트테이프, CD 형식으로 발매되었으며, 그해 '한국 노랫말 대상'에서 나라사랑 노랫말 부문을 수상했다.[3]
2008년 3월 21일, 박문영은 문화방송(MBC)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제작진과 방송사인 MBC를 상대로 자신의 저작권이 있는 곡을 무단으로 개사하여 방송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제작진과 합의에 도달하며 소송을 취하했다.[4][5] 2024년 인터뷰에서 박문영은 대한민국의 K-pop 보이 그룹인 방탄소년단(BTS)이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을 높인 점을 들어, 그들을 명단의 '비공식 101번째 위인'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이 곡이 본인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6]
2024년에 일어난 12·3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당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국회의원 105명의 명단을 담은 리믹스 버전이 화제가 되었다. '내란을 빛낸 105명의 공범들'이라는 제목의 이 곡은 12월 10일 한 유튜브 채널(촛불행동tv)을 통해 공개되었다.[7]
음악과 가사
이 노래는 5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절은 후렴구를 반복한다. 모든 절은 '역사는 흐른다'라는 구절로 끝난다.[3][8] 1절은 고조선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인물들을 다루며, 2절은 남북국 시대부터 고려까지, 3절은 조선 초기를, 4절은 조선 후기를, 그리고 5절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을 포함한 근현대 인물들을 다룬다.[1] 음절상의 문제로 인물 이름이 호나 자로 대체되어 있기도 하며 양쪽 다 병기된 경우도 있다.
노래 제목에도 불구하고, 가사에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 서명하여 매국노로 널리 간주되는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인 이완용처럼[1][3][6] 널리 비난받으면서도 영향력이 컸던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다.[9] 이 노래의 작사·작곡을 맡은 박문영은 나중에 이러한 인물들이 존재했음을 청취자들이 잊지 않고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노래에는 홍길동,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신화적 또는 문학적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홍길동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인물이고, 이수일과 심순애는 조중환의 소설 《장한몽》에 등장하는 인물이다.[1][3][6] 이 노래는 초등학교에서 널리 불리고 있다.[2]
등장 인물
| # | 이름 | 간략한 인물적 중요성 |
|---|---|---|
| 1 | 단군 |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시조이다. "금수강산에 터를 잡고 홍익인간이라는 뜻으로 나라를 세운 단군 할아버지"라는 내용과 함께 노래의 포문을 연다. |
| 2 | 동명성왕 (동명왕) | 고구려의 건국자이자 초대 국왕으로, '주몽'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삼국 중 하나인 고구려의 기틀을 마련했다. |
| 3 | 온조왕 | 백제의 건국자이자 초대 국왕이다. 주몽의 아들로 남하하여 한강 유역에 백제를 세웠다. |
| 4 | 혁거세 거서간 (혁거세) | 신라의 건국자이자 초대 국왕이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유명하며 신라(사로국)를 세운 인물이다. |
| 5 | 광개토대왕 | 고구려의 제19대 국왕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만주 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이라는 가사로 묘사된다. |
| 6 | 이사부 | 신라의 장군으로, 지증왕 시절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와 독도)을 정벌하여 한국의 영토로 편입시킨 인물이다. |
| 7 | 백결 선생 | 신라의 거문고 명인이다. 청빈하고 올곧은 삶으로 유명하며, 설날에 떡을 칠 곡식이 없자 거문고로 떡방아 찧는 소리(대악, 碓樂)를 내어 부인을 위로했다는 일화가 있다. |
| 8 | 의자왕 | 백제의 마지막 국왕이다. 초기에는 정력적인 개혁을 펼쳤으나, 결과적으로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할 당시의 왕으로 기록되었다. |
| 9 | 계백 | 백제의 장군이다. 황산벌 전투에서 5,000명에 달하는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군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충절의 상징이다. |
| 10 | 관창 | 신라의 화랑이다. 황산벌 전투에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맹하게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전사하여 신라군의 사기를 높였다. |
| 11 | 김유신 | 신라의 장군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끈 군사적 지도자이다. 태종무열왕, 문무왕과 함께 통일의 핵심 주역이었다. 화랑 시절에 말의 목을 벤 일화로도 유명하다. |
| 12 | 문무왕 | 신라의 제30대 국왕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완수했으며,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동해에 수중릉(문무대왕릉)을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
| 13 | 원효 (원효대사) | 신라의 승려이다. 어려운 불교 교리를 대중화하여 누구나 쉽게 믿을 수 있게 했으며, 당나라 유학 시절에 동굴 속에서 해골바가지에 담긴 더러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일화로 유명하다. |
| 14 | 혜초 | 신라의 승려로, 인도의 다섯 왕국(천축)을 여행하고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세계적인 여행가이다. |
| 15 | 장보고 | 신라의 군인이자 해상 무역상이다. 청해진을 설치하여 동아시아 해상 무역을 장악했으며 '해상왕'(海上王, '바다의 왕자'라는 뜻)으로도 불린다. |
| 16 | 고왕 (대조영) | 발해의 건국자이자 초대 국왕이다.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기치 아래 발해를 세워 남쪽의 신라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열었다. |
| 17 | 강감찬 | 고려의 문신이자 장군이다. 제3차 고려-거란 전쟁이 한창이던 1019년에 귀주 대첩에서 거란의 대규모 침공을 물리쳐 나라를 구했다. |
| 18 | 서희 | 고려의 외교관이다.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이 한창이던 993년에 거란의 소손녕을 상대로 뛰어난 외교 담판을 통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강동 6주를 고려의 영토로 확보했다. |
| 19 | 정중부 | 고려의 장군이다. 1170년 무신정변을 일으켜 무신정권 시대를 연 인물이다. |
| 20 | 최무선 | 고려의 군사 과학자이다. 한국 최초로 화약 제조법을 터득하고 화포를 만들어 고려를 침공한 왜구를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
| 21~27 | 강좌칠현 (죽림칠현) | 중국의 죽림칠현을 본떠 부르는 이름으로, 고려 중기 세속을 떠나 자유로운 삶과 문학을 즐겼던 7명의 선비(이인로, 오세재, 임춘, 조통, 황보항, 함순, 이담지)를 뜻한다. |
| 28 | 김부식 | 고려의 학자이다.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
| 29 | 지눌 (지눌 국사) | 고려의 승려이다. 선(禪)과 교(敎)의 통합을 강조하며 조계종을 확립하여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세웠다. |
| 30 | 의천 | 고려의 승려이자, 고려의 제11대 국왕인 문종의 아들이다. 불교 교단 통합을 위해 천태종을 창시했으며, 속장경을 편찬하는 등 고려의 불교 발전에 기여했다. |
| 31 | 이종무 | 조선의 장군이다. 세종 시대에 쓰시마섬을 정벌하여 왜구의 근거지를 소탕한 공이 크다. |
| 32 | 정몽주 | 고려의 충신이다. 끝까지 고려 왕실에 충성했으며, 이방원의 회유에 맞서 부른 시조 〈단심가〉로 잘 알려져 있다. |
| 33 | 문익점 | 고려의 문신이다.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붓뚜껍에 숨겨 들여와 백성들이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게 한 공로가 크다. |
| 34 | 최충 | 고려의 학자이다. '해동공자'(海東孔子, '동방의 공자'라는 뜻)라 불릴 만큼 고려의 유교 발전에 기여했으며, 사립학교의 효시인 구재학당을 세웠다. |
| 35 | 일연 | 고려의 승려이다. 고조선의 건국 신화 등을 수록한 역사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
| 36 | 최영 | 고려의 장군으로, 조일신의 난을 진압하고 왜구와 홍건적을 물리쳤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명언으로 유명하다. |
| 37 | 황희 | 조선의 정승(영의정)이다. 세종대왕 시절 오랫동안 재임하며 국정을 안정시킨 청백리의 상징이다. |
| 38 | 맹사성 | 조선의 정승(좌의정)이다. 황희와 함께 세종대왕 시대의 태평성대를 이끌었으며, 소박한 삶과 음악적 재능으로 잘 알려져 있다. |
| 39 | 장영실 | 조선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이다. 노비 출신이었으나 세종대왕에 의해 발탁되었고, 측우기,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 혼천의(천문 관측 기구) 등을 개발했다. |
| 40 | 신숙주 | 조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으며, 일본 기행문인 《해동제국기》를 남기는 등 외교와 학문 분야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한편으로는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을 몰아낸 쿠데타인 계유정난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
| 41 | 한명회 | 조선의 문신이자 전략가이다.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을 몰아낸 쿠데타인 계유정난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다. |
| 42 | 이이 (이율곡) | 조선의 성리학자이다. 호는 율곡(栗谷)이며, 이황과 함께 한국 유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
| 43 | 이황 (이퇴계) | 조선의 성리학자이다. 호는 퇴계(退溪)이며, 이이와 함께 한국 유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영남학파를 형성하고 도산서원을 세웠으며, 일본의 성리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
| 44 | 신사임당 | 조선의 화가이자 작가이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현모양처(賢母良妻)의 표상으로 존경받으며, 초충도 등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졌다. |
| 45 | 곽재우 | 조선의 의병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붉은 옷을 입고 싸워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렸다. |
| 46 | 조헌 | 조선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임진왜란 중 의병을 이끌고 싸우다 금산 전투에서 칠백의총의 주인공이 되어 장렬히 전사했다. |
| 47 | 김시민 | 조선의 장군이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어 호남으로 향하는 왜군을 저지했다. |
| 48 | 이순신 | 조선의 제독(삼도수군통제사)이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을 앞세워 해전에서 연승하며 나라를 구한 민족의 영웅으로 여겨지고 있다. |
| 49~55 | 태정태세문단세 | 조선의 초기 7명의 왕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태조(건국자, 제1대 국왕), 정종(제2대 국왕), 태종(제3대 국왕), 세종(제4대 국왕), 문종(제5대 국왕), 단종(제6대 국왕), 세조(제7대 국왕)를 의미한다. |
| 56~61 | 사육신 |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세조에 의해 처형된 6명의 충신인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를 가리킨다. |
| 62~67 | 생육신 |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며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6명의 선비인 김시습,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 남효온을 가리킨다. |
| 68 | 논개 | 조선의 기생이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을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했다고 전해진다. |
| 69 | 권율 | 조선의 장군이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에서 승리하여 조선군의 한양 탈환의 발판을 마련했다. |
| 70 | 홍길동 |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번쩍번쩍 홍길동"이라는 가사처럼 신출귀몰한 도술로 탐관오리를 징벌했다. |
| 71 | 임꺽정 | 조선의 백정 출신 의적이다. 부패한 관리의 재물을 털어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준 실존 인물로, 소설로도 유명하다. |
| 72~74 | 삼학사 | 병자호란 때 끝까지 청나라와의 화친을 반대하다 청나라에 끌려가 죽음을 맞이한 3명의 조선 선비(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말한다. |
| 75 | 박문수 | 조선의 암행어사이다.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고통을 덜어준 일화가 구전 설화로 널리 알려진 공정한 관리의 상징이다. |
| 76 | 한호 (한석봉) | 조선의 서예가이다. 호는 석봉(石峯)이며, 어머니와 '떡 썰기 대 붓글씨 쓰기' 대결을 했다는 일화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
| 77 | 김홍도 (단원) | 조선의 화가이다. 호는 단원(檀園)이며, 풍속화의 대가로서 당시 서민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
| 78 | 김병연 (김삿갓) | 조선의 방랑 시인이다. 권력을 풍자하는 시를 쓰며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아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
| 79 | 김정호 | 조선의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이다. 정교하고 과학적인 전국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 |
| 80 | 영조 (영조대왕) | 조선의 제21대 국왕이다. 붕당 정치의 폐단을 막기 위해 탕평책을 펼치고, 한동안 폐지되었던 신문고 제도를 부활시켰으며,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하며 안정을 꾀했다. |
| 81 | 정조 | 조선의 제22대 국왕이자 영조의 손자이다. 규장각을 세워 학문을 장려하고 실학을 중시하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 군주이다. |
| 82 | 정약용 | 조선의 실학자이다. 수원 화성 건립 과정에 사용된 거중기를 발명하고 《목민심서》 등 수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후기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이다. |
| 83 | 전봉준 | 동학 농민 혁명의 지도자이다. '녹두장군'(綠豆將軍)이라 불리며 부패한 관리와 외세의 침략에 맞서 민중을 이끌었다. |
| 84 | 김대건 | 한국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로, 세례명은 안드레아이다.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다 처형되었으며, 교황청에 의해 로마 가톨릭교회 성인 반열에 올랐다. |
| 85 | 황진이 | 조선의 기생이다. 빼어난 미모뿐만 아니라 지성과 예술성(시조)으로 당대 문인들과 교류하며 이름을 날렸다. |
| 86 | 홍경래 | 홍경래의 난을 주도한 인물이다.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과 부패에 항거하여 대규모 농민 봉기를 일으켰다. |
| 87 | 김옥균 | 조선의 개화파 정치인이다. 조선의 근대화를 목표로 갑신정변을 주도했으나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인해 '삼일천하'(三日天下)로 끝난 비운의 개혁가이다. |
| 88 | 안중근 |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하얼빈역에서 일본 제국의 내각총리대신과 한국통감을 역임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
| 89 | 이완용 |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 정치인이자 매국노이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선 '을사오적',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앞장선 '경술국적' 중 한 명으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증오받는 배신자, 반역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
| 90 | 윤동주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다.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같이 자아 성찰과 양심, 민족의 슬픔을 노래한 시들로 유명하며, 광복을 몇 달 앞두고 옥중에서 순국했다. |
| 91 | 지석영 | 조선의 학자이자 의사이다. 한국에 처음으로 종두(천연두 예방 접종)를 도입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한 근대 의학의 선구자이다. |
| 92 | 손병희 |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의 천도교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 운동 당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
| 93 | 유관순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어린 학생의 몸으로 3·1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천안에 위치한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이끈 '독립의 꽃'으로 여겨진다. |
| 94 | 안창호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인이다. 호는 도산(島山)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흥사단을 이끌며 실력 양성 운동에 힘썼다. |
| 95 | 방정환 | 일제강점기의 아동문학가, 교육인, 사회운동가이다. '어린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어린이날을 제정하는 등 어린이 인권 향상에 평생을 바쳤다. |
| 96~97 | 이수일과 심순애 | 일제강점기의 소설가인 조중환의 신소설 《장한몽》(長恨夢)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들이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단 말이냐?"라는 대사로 유명한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다. |
| 98 | 김두한 |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협객 출신 정치인으로,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종로 거리의 주먹왕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광복 이후에는 국회의원을 지냈다. |
| 99 | 이상 | 일제강점기의 모더니즘 작가이자 시인이다. 《오감도》, 《날개》 등 파격적이고 난해한 실험적 작품들을 남긴 천재 예술가이다. |
| 100 | 이중섭 |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모더니즘 화가이다. 소를 주제로 한 역동적인 그림으로 한민족의 기상을 표현했으며,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린 그림 등 독창적인 기법으로 한국 근대 미술의 거장으로 여겨진다. |
관련 음반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 |
|---|---|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음반 표지 | |
| 최영준과 노사사의 싱글 음반 | |
| 발매일 | 1991년 1월 |
| 언어 | 한국어 |
| 레이블 | 신세계음향공업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은 1991년 1월에 최영준과 노사사(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가 발표한 음반이다.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 최초로 수록된 음반이기도 하다.
| #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가수 | 재생 시간 |
|---|---|---|---|---|---|---|
| 1.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 박문영 | 박문영 | 최영준과 노사사 | 4:05 | |
| 2. | 〈마음은 하나〉 | 박문영 | 최종혁 | 최영준과 노사사 | 2:10 | |
| 3. | 〈대한의 용사〉 | 박문영 | 박문영 | 최영준과 노사사 | 2:00 | |
| 4. | 〈김치 주제가〉 | 박문영 | 박문영 | 노사사 | 2:00 | |
| 5. | 〈힘내라 힘〉 | 박문영 | 박문영 | 노사사 | 3:00 | |
| 6.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어린이를 위한 반주음악)〉 | 박문영 | 4:05 | |||
| 총 재생 시간 | 17:20 | |||||
| #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가수 | 재생 시간 |
|---|---|---|---|---|---|---|
| 7. | 〈우리는 한민족〉 | 박문영 | 박문영 | 최영준과 노사사 | 2:05 | |
| 8. | 〈탈춤 노래〉 | 박문영 | 박문영 | 최영준과 노사사 | 3:50 | |
| 9. | 〈짜라빠빠〉 | 박문영 | 박문영 | 노사사 | 4:00 | |
| 10. | 〈악어 사냥〉 | 박문영 | 박문영 | 최영준과 노사사 | 2:40 | |
| 11. | 〈독도는 우리 땅〉 | 박문영 | 박문영 | 최영준과 노사사 | 2:20 | |
| 12. |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 박문영 | 박문영 | 최영준 | 2:30 | |
| 총 재생 시간 | 17:25 | |||||
기타
- 문익점의 목화 관련,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 왔다’는 것은 조선 후기부터 유행된 이야기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기록에는 그가 목화씨를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왔다’거나 그냥 ‘얻어 갖고 왔다’라고만 되어 있다.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의 ‘양업기’라는 글에서 상투 속에 씨앗을 숨겨왔다는 설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붓두껍 전설은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 온 사건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키고픈 많은 사람들의 의도가 낳은 전설인 셈이다. 더구나 당시 원나라에서 목화가 정말로 국외 반출 금지 품목이었는지도 논란의 대상이다.[10]
-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 아버지의 유언이다. 《고려사》의 〈최영 열전〉을 보면 "최영의 나이 16세 때 아버지가 죽을 무렵에 훈계하기를 '너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如當見金如石)'고 하였다. 최영은 이 말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재물에 관심 두지 않았으며 거처하는 집이 초라하였으나 만족하고 살았고, 의복과 음식을 검소하게 하여 간혹 식량이 모자랄 때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 문헌
- 박은봉 (2007).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서울:책과함께.
각주
- 1 2 3 4 이수환 (2019년 5월 12일).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에 이완용이 들어간 이유…실제 위인 아닌 이도 상당수”. 《국제신문》. 2025년 5월 19일에 확인함.
- 1 2 이재욱 (2023년 11월 11일).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문학뉴스》.
- 1 2 3 4 5 권정구.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네이버 지식백과》. 2025년 5월 22일에 확인함.
- ↑ 최승현 (2008년 5월 12일). “남의 노래 멋대로 바꿔 즐기면 그만?”. 《조선일보》. 2025년 5월 21일에 확인함.
- ↑ 김현록 (2008년 12월 1일). “'100명의 위인들' 작곡가, '무한도전' 고소 취하”. 《스타뉴스》. 2025년 5월 21일에 확인함.
- 1 2 3 이솜 (2024년 10월 30일). “[피플&포커스] '독도는 우리땅' '한국을 빛낸~' 만든 박문영 "101번째 위인은 BTS"”. 《천지일보》. 2024년 12월 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5년 5월 21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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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익점 네이버캐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