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시몽 라플라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후작
Pierre-Simon Laplace.jpg
출생 1749년 3월 23일(1749-03-23)
프랑스, 노르망디
사망 1827년 3월 5일 (77세)
거주지 프랑스 프랑스
국적 프랑스 프랑스
분야 물리학, 수학
지도 교수 달랑베르
지도 학생 시메옹 드니 푸아송
주요 업적 블랙홀의 존재를 추측
라플라스 방정식
라플라스 변환
퍼텐셜 이론
구면 조화 함수 발견
《천체역학》 저술
라플라스 연산자
라플라스 분포
라플라스-벨트라미 연산자
라플라스-룽게-렌츠 벡터
라플라스 전개
이산 라플라스 연산자
라플라스 법칙
라플라스 수
라플라스 극한
드 무아브르-라플라스 법칙
라플라스 방법
종교 로마 가톨릭교회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후작(Pierre-Simon, Marquis de Laplace, 1749년 3월 23일~1827년 3월 5일)은 프랑스의 수학자이다. 그의 저서 《천체역학》(총 5권)에서는 고전역학에서 뉴턴이 택했던 방식인, 기하학적 접근방식에 대한 번역을 실어, 당시 물리학을 집대성하고 확장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불어 《확률론의 해석이론》 등의 명저를 남겼으며, 수리 물리학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라플라스 변환, 라플라스 방정식 등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는 1765년부터 의 한 예수회 계열 대학에서 공부했다. 1771년부터는 파리 군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그의 제자 중 한 명이다. 1773년 파리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며, 1788년 마리 샤를로트와 결혼한다. 1799년엔 내무부 장관으로 발탁된다. 이후, 1806년 프랑스 제1제정백작이 되었으며, 부르봉 왕정복고 이후 후작으로 승격된다.

그는 성운 가설을 다시 진술하고 발전시켰다. 이는 블랙홀중력 붕괴에 대한 최초의 이론적 예측이다.

《천체역학》에서는 강체 또는 유체의 운동에서부터, 지구의 모양, 조석이론까지 논하고 있다. 이 문제들은 결국 미분방정식을 푸는 것이지만,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여 발전시킨 것이 많다. 특히 오차평가 등은 그가 썼던 확률론의 응용이기도 하다.

라플라스 변환의 발견자이며, 결정론자로 잘 알려져 결정론적 세계관을 라플라스 세계관이라고도 한다. 결정론적 세계관이란 지금부터 일어날 모든 현상은 현재까지 일어났던 과거의 일들이 원인이란 생각이다. 어떤 특정 시간의 우주의 모든 입자의 운동상태를 알 수 있다면, 그때부터 일어날 모든 현상을 미분방정식을 풀어 계산해 낼 수 있다(라플라스의 악마 참조). 그러나 라플라스 사후 양자역학의 성립으로 이러한 생각은 옳지 않다는 것이 반증되었다.

라플라스는 때때로 ‘프랑스의 뉴턴’으로 불리며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수학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고 한다.[1]

남겨진 기록[편집]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라플라스의 성채(샤토(château))가 1925년 불타면서 라플라스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상당수 소실되어 자료가 적다. [2] 그는 유명해진 이후에 혼자 일하기를 즐겼기 때문에,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이에 관해서는 수학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간에 이견이 있다.

초기 생애[편집]

라플라스는 1749년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W. W. 라우즈 볼수학사 개론 4판(A Short Account of the History of Mathematics, 4th edition, 1908)에 의하면, 그는 가난한 농부 집안이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수학적 능력과 열정에 감복한 부유한 이웃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았고, Beaumont 의 학교에서 잡역부로 일하다, 학생이 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달랑베르 에게 소개장을 받은 이후, 파리로 올라가 인생을 개척했다고 한다.

하지만, 칼 피어슨[2]W. W. 라우즈 볼 의 서술이 매우 부정확하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라플라스 시대에, Caen노르망디의 제일 지적으로 활발한 지역이었다. 라플라스는 여기서 교육받았고, 교수가 된 것이다. 이곳에서 라플라스는 첫 논문 을 Royal Society of Turin 에서 발행하는 Mélanges 에 실었으며, 이는 1766- 1769 년에 발행된 것이다. 이는 최소한 그가 22-23세에 파리로 올라간 1771 년보다 2년 빠르므로, 그는 파리에 올라가기도 전, 20대에 토리노조제프루이 라그랑주와 교류했다는 증거이다. 그는 단순히 촌동네에서 조금 잘한 꼬맹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1765년, 다시말해 16세에 라플라스는 Beaumont의 "오를레앙 공작학교"를 졸업했고, 칸 대학교에 들어가 5년간 공부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라플라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피에르 라플라스였고, 어머니는 Marie-Anne Sochon이었다. 리플라스가는 1750년 정도까지는 농업에 종사했다.

그의 손자의 손자에 따르면, 라플라스가 소개받아 간 달랑베르는 매우 그를 귀찮아해서, 자기에게 오는 걸 막기 위해 두꺼운 수학책을 던져주고, 이걸 다 읽고 나서 들어오라고 했다. 라플라스가 며칠 안 돼서 돌아오자, 달랑베르는 더 화를 내며, 라플라스가 단 며칠 만에 그 책을 읽었을 리 없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몇 차례 책 내용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받고 나자 달랑베르는 그가 책을 다 읽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 후 라플라스는 그에게 인정받았다고 한다.

정치 활동[편집]

피어슨은 이를 부정하지만, 라우즈 볼에 따르면, 라플라스는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그에게 내무부장관직을 얻고자 찾아갔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과학자들을 후원하는 정책을 펴고자 했기 때문에, 그를 1799년 11월에 내무부장관으로 임명하지만, 6주 만에 해고했다. 나폴레옹은 이후에 (세인트 헬레나 유배기에서) 그를 해고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고 한다.

Géomètre de premier rang, Laplace ne tarda pas à se montrer administrateur plus que médiocre; dès son premier travail nous reconnûmes que nous nous étions trompé. Laplace ne saisissait aucune question sous son véritable point de vue: il cherchait des subtilités partout, n'avait que des idées problématiques, et portait enfin l'esprit des `infiniment petits' jusque dans l'administration.
(기하학자로는 일류이지만, 라플라스는 얼마 안돼서 자신이 평균 이하의 관리자라는 것을 보였다; 그가 사무를 본 첫날, 우리는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플라스는 어떤 비판도 객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곳의 사소한 점을 따져 트집잡고, 결국 관리부서에 '무한소'가 무엇인지 경험시켜주었다.)

라플라스가 내무부에서 해고됐지만, 나폴레옹과 라플라스는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나폴레옹은 그를 상원의원에 추대했으며, 라플라스는 천체역학 3권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였다. 부르봉 왕정복고 이후에 출판된 것에는 이것이 삭제되어 있으며, 피어슨은 그것을 내버려 두었더라도 검열 때문에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1814년 나폴레옹의 세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신호를 감지한 라플라스는 재빨리 부르봉 왕가와 당파로 돌아서고, 1817년 그는 왕정복고와 함께 후작으로 승격된다.

1827년 라플라스가 사망한 이후 그의 두뇌를 외과의사 François Magendie가 채집해서 오랜 기간 보존해 두었다. 나중에 이는 영국 해부학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평균 인간의 두뇌 크기보다는 작다고 알려졌다.

라플라스 변환[편집]

1744년 레온하르트 오일러,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에 이어, 미분방정식에 대한 해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라플라스는 다음과 같은 변환을 생각했다:[3]

 z = \int X(x) e^{ax} dx and  z = \int X(x) x^a dx.

1785년, 라플라스는 위의 식을 이용한 라플라스 변환을 이용해서 미분 방정식을 통째로 대수 방정식으로 변환해, 대수 방정식을 푼 뒤, 그 해를 다시 역변환해 미분 방정식의 해를 얻는 방식으로 미분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방식은 공학 수학분야에서 널리 응용되고 있다. [4][5]

구면조화함수[편집]

구면조화함수.

르장드르 는 1783 년 파리 아카데미 에 보낸 논문에서, 현재 연관 르장드르 함수로 알려져 있는 함수를 알렸다.[6] 만약 한 이차원 평면의 두 점을 평면에서 극좌표로 (r, θ)와 (r ', θ') 로 나타낸다고 할 때, 여기서 일반성을 잃지 않고 r ' ≥ r 로 나타낼 수 있다. 이때 코사인법칙을 이용해서, 두 점 사이의 거리를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frac{1}{d} = \frac{1}{r'} \left [ 1 - 2 \cos (\theta' - \theta) \frac{r}{r'} + \left ( \frac{r}{r'} \right ) ^2 \right ] ^{- \tfrac{1}{2}}.

이 표현을 테일러 급수 표현 방식을 써서 r/r ' 에 대해 전개하면,

\frac{1}{d} = \frac{1}{r'} \sum_{k=0}^\infty P^0_k ( \cos ( \theta' - \theta ) ) \left ( \frac{r}{r'} \right ) ^k.

을 얻는다. 여기서 P0k(cosф) 함수는 "연관 르장드르 함수" 라고 불리며, 제곱 적분한 값이 유한한 이차원 상의 모든 함수가 연관 르장드르 함수를 이용한 전개 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물리, 공학에서 많이 이용된다. ex) 전기장 문제.

라플라스는 르장드르에게 공을 돌리며, 위 결과를 삼차원 공간으로 확장하고, 현재 구면조화함수 또는 라플라스 계수 로 불리는 것을 만들었다. 이들을 적당한 계수를 곱해 더하면 제곱 적분 가능한 모든 3차원 모양 평면 위의 함수를 표현할 수 있다.[6]

퍼텐셜 이론[편집]

구면조화함수 이론을 다룬 논문에서, 스칼라 퍼텐셜 이론도 다루고 있다. 중력은 벡터량이므로, 크기와 방향을 가지고 있다. 퍼텐셜 함수는 스칼라 량으로, 크기만을 가지고 있는 함수이기 때문에 계산하기에도, 이론으로 다루기에도 훨씬 간편하다.

퍼텐셜 이론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지만, 라플라스는 미적분학을 퍼텐셜함수에 적용해, 퍼텐셜 함수가 항상 다음의 미분방정식(라플라스 방정식)을 만족함을 보였다.:[6]

\nabla^2V={\partial^2V\over \partial x^2 } +
{\partial^2V\over \partial y^2 } +
{\partial^2V\over \partial z^2 } = 0

- 그리고, 이 결과에 힘입어, 라플라스는 중력이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구면조화함수는 이 라플라스 방정식의 중요하고 실용적인 해이다. 구면좌표계에서 라플라스 방정식을 변수분리법 으로 변환하고, 각도에 관한 해만 뽑아내면, 이는 라플라스의 구면조화함수의 합이 된다. 이는 다른 좌표계에서 잡은 해를 구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할 때 쓴다.

라플라스와 나폴레옹[편집]

Rouse Ball 은 라플라스와 나폴레옹 간의 유명한 일화를 한 편 소개하고 있다[6]:

라플라스는 나폴레옹에게 올라가 자신의 저작을 한 부 진상했다. 이후 둘이 나눈 대화가 잘 기록되어 있으며, 특별한 대화였기 때문에 완전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누군가가 나폴레옹에게 이 책이 신에 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 적이 있었다(라플라스 이전까지만 해도 신의 천사가 신의 명을 받들어 행성들을 밀어 움직이고 있다는 이론이 횡행하고 있었다). 남을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을 하길 즐겼던 나폴레옹은, 책을 받으며 말했다. '라플라스 경, 사람들이 말하길, 당신이 우주에 대해 방대한 책을 썼으면서도, 창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고 하오.'(당시까지만 해도 무신론은 범죄시 되고 있었다.) 라플라스는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권력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지만, 자신의 철학을 굽히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얼굴을 들어 말했다.

제게는 그 가설이 필요 없었나이다.
Je n’avais pas besoin de cette hypothèse-là.

나폴레옹은 대단히 재미있어 하며, 그 대답을 조제프루이 라그랑주에게 전해주었다. 그 말을 전해들은 라그랑주는 이렇게 외쳤다.

아, 이건 멋진 가설이다. 그것 하나만으로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는가.
Ah! c’est une belle hypothèse; ça explique beaucoup de choses.


라플라스의 초상화.

참고 문헌[편집]

  1. [Anon.] (1911) "Pierre Simon, Marquis De Laplace", Encyclopaedia Britannica
  2. "Laplace, being Extracts from Lectures delivered by Karl Pearson", Biometrika, vol. 21, Dec. 1929, pp. 202-16
  3. Grattan-Guiness, in Gillispie (1997) p.260
  4. Grattan-Guiness, in Gillispie (1997) pp261-262
  5. Deakin (1981)
  6. Rouse Ball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