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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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Friedrich)는 합스부르크가 출신으로 중세의 중요한 인물이다. 별명은 데어 쇤네(der Schöne, 미공) 그는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마르의 공작으로 통치했으며, 1314년에 로마-독일 대립왕으로 선출되었다.
초기 생애
[편집]프리드리히는 1289년경 빈에서 알브레히트 1세와 괴르츠의 엘리사벳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306년 형 루돌프의 사망 후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의 합스부르크 영지 관리를 인수했다.
왕 선출과 왕위 분쟁
[편집]아버지의 1308년 암살 후 보헤미아 왕관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1314년 이중 선출에서 4명의 선제후에 의해 루트비히 바이에른공에 맞서 왕으로 선포되었고, 이는 장기적인 경쟁으로 이어졌다.
패배와 포로 생활
[편집]1322년 뮐도르프 전투에서 결정적 패배를 입고 루트비히의 포로가 되었다. 1325년 트라우스니처 화해와 뮌헨 조약으로 석방되었으나 명목상 공동 왕에 불과했다.
말년과 사망
[편집]이후 제국 정치에서 물러나 종교 후원과 합스부르크 영지 안정화에 집중했으며, 빈이 거처로 부상했다. 1330년 구텐슈타인 성에서 사망했으며, 미공이라는 별칭은 16세기에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