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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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립진(廢假立眞) 또는 폐가입진(廢假入眞)은 1389년 고려수문하시중이자 섭정이었던 이성계(李成桂)가 창왕(昌王)을 보위에서 내쫓아 몰아 내고 공양왕(恭讓王)을 보위에 추대하여 옹립한 사건이다.

사건의 배경[편집]

고려 말기인 1389년 음력 11월 15일에, 수문하시중 이성계(당시 55세)가 우왕(禑王)의 아들 창왕을 보위에서 내쫓아 방축시키고, 왕족 종실 왕요(공양왕)를 진짜 왕씨라 하여 군주(국왕)로 추대하였다. 1389년 음력 11월 15일을 기하여 공양왕(당시 45세)이 즉위한지 1개월여가 지난 후인 1389년 12월 31일을 기하여 우왕(당시 25세)과 창왕(당시 10세) 두 폐주를 모두 신돈(辛旽, 1323년 1월 21일 출생 ~ 1371년 8월 21일 사망)의 핏줄이자 가짜 왕씨 군주라 주장, 이른바 폐가립진론(廢假立眞論)을 내세워 끝내 사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우왕과 창왕이 신돈의 아들·손자라는 소위 신돈의 후손이라는 주장인즉, 이른바 비왕설(非王說, 또는 폐가입진론(廢假入眞論) 또는 우창 비왕설(禑昌 非王說))은 단지 이성계 일파가 정치적 명분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실상 원색적으로 날조된 정치 성향 모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