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대부흥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평양대부흥회란 1907년 1월 6일부터 10일간 평양에 있는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기독교 신앙 대부흥운동이다. 원산에서 하디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운동에 영향을 받아 교회가 많은 평양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로 확산된 대부흥운동이다. 이 부흥운동은 4 교회가 연합한 집회로 1월 6일(주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되었다.[1]

배경[편집]

부흥회의 배경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성경 번역. 1882년 만주에서 로스 목사의 성경 번역, 일본에서 이수정의 성경 번역, 뒤따라 입국한 선교사들의 성경 번역이 부흥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② 1905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와 박치록 장로에 의해서 시작된 새벽기도회가 신앙 부흥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③ 1890년 서울에서 언더우드 선교사가 시작한 사경회와 1906년 원산에서 하디 선교사의 사경회가 1907년 평양 대부흥회의 도화선이 되었다.

영향[편집]

이 부흥회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은 다음과 같다. ① 회개 운동. 인간으로 범할 수 있는 모든 죄가 다 고백되었다. ② 선교사와 한국의 교인들 사이에 장벽이 허물어졌다. ③ 전도 운동이 활발해져 100만인 구령 운동으로 이어졌다.

결과[편집]

한국교회와 성도는 대부흥운동을 통해 배가된 믿음의 힘으로 일제하에서 모진 박해와 수난을 잘 견디고 전진할 수 있었다.

각주[편집]

함께보기[편집]

부흥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