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테논 신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파르테논
Parthenon from west.jpg
문명 그리스 문명
건립 연대 기원전 490년 ~ 기원전 432년
건립자 페이디아스, 익티노스, 칼리크라테스
발굴자 --
현 소재지 그리스 그리스 아테네 시내

파르테논 신전(고대 그리스어: Παρθενών)은 고대 아테나이의 수호자로 여겨지던 아테나 여신에 봉헌된 그리스 아테네의 신전이다.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건설되었다. 현존하는 고전기 그리스 건축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며, 도리스식 기둥 양식 발전의 정점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신전의 장식 조각도 그리스 예술의 정수로 여겨진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아테나이 민주정의 오랜 상징이자 세계적으로 위대한 기념물로 인정받는다. 현재는 그리스 문화부에서 복원 및 개축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1]

파르테논 신전이 건설된 자리에는 원래 아테나 여신의 옛 신전으로 역사가들은 이를 옛 파르테논 신전(Pre-Parthenon)이라 칭하는 건물이 있었으나,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되었다. 여타 그리스의 신전과 마찬가지로 파르테논 신전도 국가 금고로 쓰였으며, 특히 이곳은 한때 델로스 동맹의 금고로 쓰였다. 기원후 6세기에 파르테논 신전은 성모 마리아에 봉헌된 기독교 교회로 쓰였다.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뒤에 1460년대 초에 모스크로 쓰였고 첨탑이 건설되었다. 1687년 9월 26일 파르테논 신전 안에 쌓아놓은 오스만 투르크의 화약 더미가 베네치아군의 포격으로 불이 붙었다. 화약이 폭발하면서 신전과 그 조각물이 크게 훼손되었다. 1806년 엘긴의 7대 백작, 토머스 브루스(엘긴 경)이 오스만 제국의 허가를 얻어 파르테논에 남은 일부 조각을 떼어냈다. 이 조각물은 오늘날 엘긴 대리석 조각군 또는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군으로 불리는데, 1816년 런던대영 박물관에 매각되어 지금까지 그 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엘긴 대리석 조각군을 다시 그리스로 반환해 주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2]

이름[편집]

이 신전의 '파르테논'이란 이름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제프리 M. 허윗(Jeffrey M. Hurwit)에 따르면, '파르테논'은 '처녀의 장소'를 뜻하며, 원래 파르테논 신전의 어느 방 한 곳을 이컫는 말이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어느 방인지 그리고 그 방에 어떻게 이 이름이 붙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일설에서는 '파르테논'이 범아테네 축제 때 아테나에게 바치는 페플로스(고대 그리스의 여성 겉옷)를 아레포로이(해마다 아테나 여신을 위해 일하는 네 소녀)가 짜는 방이라고 한다.[3] 크리스토퍼 펠링(Christopher Pelling)은 아테나 파르테노스가 아테나 폴리아스("도시의 아테나")와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같지는 않은 개별적인 아테나 숭배 의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4] 이 이론에 따르면, '파르테논'이란 이름은 "처녀 여신의 신전"을 뜻하며, 아테나 파르테노스 숭배 의식이 이 신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5] 역시 그 기원이 불명확한[6]'파르테노스'(παρθένος)란 별칭은 "처녀,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뜻하며, 특히 야생 동물과 사냥, 식물의 여신이자 전쟁, 수공예 그리고 실용적인 것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이를 때 쓰는 말이다.[7][8][9] 또 이 신전의 이름은 처녀들('파르테노이')를 암시하는데, 처녀들의 최고위 희생 의식은 도시의 안전을 보장하였다.[10]

'파르테논'이란 이름이 신전 건축물군 전체를 분명히 일컫는 첫 사례는 기원전 4세기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의 말에서 나온다. 5세기에 건축 기록에서 이 건축물은 그저 '호 나오스'("신전")으로 불렀다. 건축가 므네시클레스와 칼리크라테스는 현존하지는 않지만 아테나이 건축에 대해 이들이 쓴 기록에서 이 건물을 '헤카톰페도스'("100피트의 키다리")라고 불렀다고 하며,[11] 4세기와 나중에도 '파르테논'이란 이름 뿐 아니라 '헤카톰페도스' 또는 '헤카톰페돈'으로 불렸으며, 기원후 1세기의 저자 플루타르코스는 이 건물을 '헤카톰페돈 파르테논'이라고 칭하였다.[12]

건축[편집]

파르테논 신전의 바닥 평면도.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488년경) 직후 지금의 자리에 아테나 파르테노스에 바치는 성소를 짓고자 처음으로 시도하여, 튼튼한 석회암 기반을 깔고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의 남쪽 부분을 편평하게 골라 넓혔다. 이 건물은 '헤카톰페돈'으로 대체되었으며, 아테나 폴리아스에 봉헌된 옛날 신전 옆에 서 있었을 것이다. 옛 파르테논 신전페르시아군이 기원전 480년에 아테나이를 약탈하고 아크로폴리스를 파괴할 때에도 아직 건설 중이었다.[13][14]

기원전 5세기 중반, 아테나이의 아크로폴리스가 델로스 동맹의 중심지가 되고, 아테나이가 당대 문화 중심지가 되면서 페리클레스는 야심찬 건설 계획을 세워 5세기 후반기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아크로폴리스에서 보이는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파르테논 신전, 프로퓔라이아, 에렉테이온, 아테나 니케 신전은 이 시기에 세운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은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총 감독을 맡았으며, 조각 장식도 그가 맡았다. 건축가인 익티노스칼리크라테스는 기원전 447년에 작업에 착수하여, 건물은 432년에 사실상 완공되었으나 장식 작업은 431년까지 이어졌다. 파르테논에 관한 일부 재정 기록이 남아있어 아테나이에서 16km 떨어진 펜텔리코스 산에서 캐온 돌을 아크로폴리스로 운반하는데 단일 항목으로 가장 많은 비용이 들었음을 보여준다. 건축 자금의 일부는 델로스 동맹의 금고에서 끌어다 썼는데, 이 곳 금고는 기원전 454년에 델로스 섬의 범그리스 성소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옮긴 바 있었다.

근처의 헤파이스토스 신전도리스식 기둥 양식을 써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건축물이지만, 당대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가장 훌륭한 것으로 여겨졌다. 존 줄리어스 쿠퍼(John Julius Cooper)는 파르테논 신전에 대해 "지금까지 가장 완벽한 도리스식 신전이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고대에도 파르테논의 건축미는 전설적이었는데 스타일로베이트(stylobate, 기둥을 받치는 토대 최상단 부분.)와 나오스(naos, 성상 안치소) 벽과 기둥의 엔타시스(entasis, 배흘림 기둥)의 미묘한 조화가 특히 그러하였다."[15] 엔타시스란 기둥이 위로 갈수록 약간 굵어지는 배흘림 기둥을 말하는데, 궐련 모양으로 유명한 이전의 신전보다 파르테논의 엔타시스가 시각적으로 훨씬 미묘한 효과를 낸다. 스타일로베이트는 기둥이 서는 토대를 일컫는다. 여러 다른 그리스 고전기 신전처럼,[16] 파르테논의 스타일로베이트도 위쪽으로 포물선 모양으로 약간 휘어져서 빗물이 밖으로 흐르도록 처리하였다. 토대가 휘어져 있으므로 기둥은 바깥 방향으로 기울게 되는데, 실제로 기둥은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으며, 기둥의 높이는 모두 같으므로 위쪽의 처마도리(architrave, 평방)와 지붕 위도 휘어진다. 거햄 스티븐스(Gorham Stevens)는 "미묘하게 휘어지도록 설계한 규칙이 모든 데 적용된다"라고 지적하면서 더 나아가 서쪽 면이 동쪽 면보다 약간 지반이 높다는 점도 알아냈다.[17] 이러한 "시각적 정교함"이 의도된 효과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종종 그러한 설계가 만곡이 없을 경우 건축물의 경우 건물이 둔중하게 보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개념상 직선적인 신전보다는 파르테논보다 훨씬 더욱 휘어진 구조의 이전 건축물과 비교가 필요하다.

파르테논을 비롯한 이곳 아크로폴리스에 대한 일부 연구에서 건축물의 비율 상당 부분이 황금비에 근접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파르테논의 정면부와 정면부의 여러 건축 요소나 다른 곳도 황금 사각형의 모양으로 볼 수 있다.[18] 황금비가 건축 설계에 쓰였다는 주장은 최근 연구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19]

맨 위쪽 단에서 측정했을 때 파르테논의 기단 면적은 69.5m x 30.9m의 사각형이다. 구조상 지부을 받치기 위해 필요한 두 줄로 된 내부 주랑을 비롯하여 성소 안치실(cella 또는 naos)은 길이는 29.8m이고, 폭은 19.2m이다. 바깥의 도리스식 열주는 직경이 1.9m이고, 높이는 10.4m이다. 각 모퉁이의 기둥은 직경이 약간 더 크다. 파르테논 신전은 외부에 46개의 기둥이 있고, 안에는 23개의 기둥이 있다. 스타일로베이트는 가운데 부분으로 갈수록 높아져, 가운데 부분은 동쪽과 서쪽 끝 부분보다 60mm 높아지며, 측면보다 110mm 높다. 지붕은 임브렉스와 테굴라(imbrex, tegula, 지붕에 덮는 기와)라는 큰 대리석 기와로 덮혀 있었다.

역사[편집]

주석[편집]

  1. Ioanna Venieri. Acropolis of Athens.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2. Greece urges Britain to return sculptures. UPI.com (2009년 6월 22일).
  3. Hurwit, The Athenian Acropolis, 161–163.
  4. Research has revealed a shrine with altar pre-dating the Older Parthenon, respected by, incorporated and rebuilt in the north pteron of the Parthenon (Pelling, Greek Tragedy and the Historian, 169).
  5. “Parthenon”. Encyclopaedia Britannica.
  6. Parthenon, Online Etymology Dictionary
  7. Bernal, Black Athena Writes Back-CL, 159
  8. Frazer, The Golden Bough, 18
  9. Parthenos”. Encyclopaedia Mythica.
  10. Whitley, The Archaeology of Ancient Greece, 352
  11. Harpocration.[출처 필요]
  12. Plutarch, Pericles 13.4.
  13. Hurwit, The Parthenon and the Temple of Zeus, 135
  14. Ioanna Venieri http://odysseus.culture.gr/h/3/eh351.jsp?obj_id=2384
  15. John Julius Norwich, Great Architecture of the World, 2001, p.63
  16. And in the surviving foundations of the preceding Older Parthenon (Penrose, Principles of Athenian Architecture 2nd ed. ch. II.3, plate 9).
  17. Penrose op. cit. pp 32-34, found the difference motivated by economies of labour; Gorham P. Stevens, "Concerning the Impressiveness of the Parthenon" American Journal of Archaeology 66.3 (July 1962:337-338).
  18. Van Mersbergen, Audrey M., "Rhetorical Prototypes in Architecture: Measuring the Acropolis", Philosophical Polemic Communication Quarterly, Vol. 46, 1998.
  19. See e.g. George Markowsky, Misconceptions about the Golden Ratio, The College Mathematics Journal, Volume 23, No 1, 199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