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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5일 (금) 23:05 판

곽연성(郭連城, ?~1464년)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을 일으키는데 가담하였다. 두 번 무과에 급제하기도 했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보지(保之).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생애

내금위(內禁衛)에 있다가 무과에 급제하여 1452년(문종 2)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갈 때 군관으로서 수양대군을 수행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1453년(단종 1) 수양대군, 신숙주, 한명회 등을 도와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김종서(金宗瑞), 황보인, 안평대군 등을 제거하고, 양정 등의 무관들과 함께 정변을 성공하게 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후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으로 서훈되고 청성군(淸城君)으로 봉해졌다.

세조 즉위후 여러 벼슬을 거쳐 1457년 (세조 3년) 무과 중시에 급제하여 당상관으로 승진, 중추원첨지사(中樞院僉知事)로 임명되었으며, 그 후 함길도병마도절제사, 인순부(仁順府) 부윤,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경상도도절제사(慶尙道都節制使)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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