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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田廣, ? ~ [[기원전 204년]])은 중국 [[진나라]] 사람으로, [[전국 시대]] [[전제 (전국)|제나라]]의 왕족이자, [[전영]](田榮)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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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田廣, ? ~ [[기원전 204년]])은 [[전국 시대]] [[진나라]] 사람으로, [[전제 (전국)|제나라]]의 왕족이자 [[전영]](田榮)의 아들이다.


== 생애 ==
== 생애 ==
진나라가 멸망한후 아버지 제왕 전영(齊王 田榮),숙부 전횡(田橫)과 제(齊)나라를 다시 재건하였다.
[[진나라]]가 멸망한후 아버지 제왕 전영(齊王 田榮),숙부 전횡(田橫)과 제(齊)나라를 다시 재건하였다. 팽성 대전이 일어나기 전 아버지 제왕 전영이 양왕(楊王) 진승과 내통하여 [[전한 고조|한왕 유방]](漢王 劉邦)을 도왔다하여 초 패왕 [[항우]](楚覇王 項羽)에게 공격을 당한다.

팽성 대전이 일어나기 전 아버지 제왕 전영이 양(楊)왕 진승과 내통하여 한왕 유방(漢王 劉邦)을 도왔다하여 초패왕 항우(楚覇王 項羽)에게 공격을 당한다.
전광은 아버지 제왕 전영이 죽자 그를 뒤이어 제왕이 되었다.그때 팽성 대전이 일어나자 격분한 초패왕 항우는 초장 용저(龍沮)와 종리매에게 제를 공격하라고 명하고 3만5천 군사를 이끌고 팽성으로 간다.제왕 전광(齊王 田廣)은 한왕 유방이 초패왕 항우를 제압해줄거라고 믿고 용저와 종리매를 막으며 농성만 했다.그런데 항우에게 유방이 50만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내고 패퇴하자 이에 놀란 제왕 전광은 항우가 다시오기도 전에 용저와 종리매에게 항복하고만다.
전광은 아버지 전영이 죽자 그를 뒤이어 제나라 왕이 되었다. 그 때 팽성 대전이 일어나자 격분한 서초 패왕 항우는 초장 [[용저]](龍沮)와 [[종리매]]에게 제나라를 공격하라고 명하고 3만5천 군사를 이끌고 팽성으로 향했다. 전광은 한왕 유방이 서초 패왕 항우를 제압해줄거라고 믿고 용저와 종리매를 막으며 농성만 했다. 그런데 항우에게 유방이 50만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내고 패퇴하자 이에 놀란 제왕 전광은 항우가 다시오기도 전에 용저와 종리매에게 항복하고 만다. 그 후 [[한신 (한나라)|한신]](韓信)이 유방의 명으로 초를 격파하기 위해 주변 국가인 대(代), 조(趙), 연(燕), 제(齊)를 공격한다.

그후 한신(韓信)이 유방의 명으로 초를 격파하기 위해 주변나라 대(代),조(趙),연(燕),제(齊)를 공격한다.대,조,연이 무너지자 한신은 조의 수도 정경성(井徑城)에 머무르며 제를 멸할 준비를 하였다.그런데 유방의 모사 역이기가 공을 세우고 싶어 유방의 허락만 받고 제왕 전광을 설득했다.그런데 그때 한신이 공격하자 제왕 전광은 자신을 속였다고 역이기를 팽살(삶아죽임)하였다.그리고 한신의 공격이 거세지자 숙부 전횡을 앞세워 성을 방어하고 황급히 항우에게 구원을 청했다.초장 용저가 구원병을 이끌고왔으나 한신의 계략에 걸려 죽음을 당하자 제왕 전광은 조카 전광(田光)과 가족들을 이끌고 성을 빠져나갔다.그러나 하후영에게 사로잡혀 한신에게 끌려갔다.한신은 웃으면서"변화무쌍한 성격을 가진자를 살려두어 무엇 하곘는가.우리가 물러가면 다시 항우에게 빌붙을 자다."하고는 제왕 전광의 목을 베라 명했다.
대나라, 조나라, 연나라가 무너지자, 한신은 조나라의 수도 정경성(井徑城)에 머무르며 제나라를 멸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유방의 모사 [[역이기]]가 공을 세우고 싶어 유방의 허락만 받고 제왕 전광을 설득했다. 그런데 그때 한신이 공격하자 제왕 전광은 자신을 속였다고 역이기를 팽살(삶아서 죽임)하였다. 그리고 한신의 공격이 거세지자 숙부 전횡을 앞세워 성을 방어하고 황급히 항우에게 구원을 청했다. 초나라 장수 용저가 구원병을 이끌고왔으나 한신의 계략에 걸려 죽음을 당하자 제왕 전광은 조카 전광(田光)과 가족들을 이끌고 성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하후영]]에게 사로 잡혀 한신에게 끌려갔다.
결국 제왕 전광은 참수형을 당했다.한신이 즉각 제왕 전광을 참수한것은 역이기의 죽음에 대한 꺼림칙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토막글|중국사}}
한신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변화무쌍한 성격을 가진자를 살려두어 무엇 하곘는가, 우리가 물러가면 다시 항우에게 빌붙을 자다."라고 하며, 제왕 전광의 목을 베라 명했다. 결국 제왕 전광은 참수형을 당했다. 한신이 즉각 제왕 전광을 참수한것은 역이기의 죽음에 대한 꺼림칙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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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8일 (금) 11:52 판

전광(田廣, ? ~ 기원전 204년)은 중국 진나라 사람으로, 전국 시대 제나라의 왕족이자, 전영(田榮)의 아들이다.

생애

진나라가 멸망한후 아버지 제왕 전영(齊王 田榮),숙부 전횡(田橫)과 제(齊)나라를 다시 재건하였다. 팽성 대전이 일어나기 전 아버지 제왕 전영이 양왕(楊王) 진승과 내통하여 한왕 유방(漢王 劉邦)을 도왔다하여 초 패왕 항우(楚覇王 項羽)에게 공격을 당한다.

전광은 아버지 전영이 죽자 그를 뒤이어 제나라 왕이 되었다. 그 때 팽성 대전이 일어나자 격분한 서초 패왕 항우는 초장 용저(龍沮)와 종리매에게 제나라를 공격하라고 명하고 3만5천 군사를 이끌고 팽성으로 향했다. 전광은 한왕 유방이 서초 패왕 항우를 제압해줄거라고 믿고 용저와 종리매를 막으며 농성만 했다. 그런데 항우에게 유방이 50만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내고 패퇴하자 이에 놀란 제왕 전광은 항우가 다시오기도 전에 용저와 종리매에게 항복하고 만다. 그 후 한신(韓信)이 유방의 명으로 초를 격파하기 위해 주변 국가인 대(代), 조(趙), 연(燕), 제(齊)를 공격한다.

대나라, 조나라, 연나라가 무너지자, 한신은 조나라의 수도 정경성(井徑城)에 머무르며 제나라를 멸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유방의 모사 역이기가 공을 세우고 싶어 유방의 허락만 받고 제왕 전광을 설득했다. 그런데 그때 한신이 공격하자 제왕 전광은 자신을 속였다고 역이기를 팽살(삶아서 죽임)하였다. 그리고 한신의 공격이 거세지자 숙부 전횡을 앞세워 성을 방어하고 황급히 항우에게 구원을 청했다. 초나라 장수 용저가 구원병을 이끌고왔으나 한신의 계략에 걸려 죽음을 당하자 제왕 전광은 조카 전광(田光)과 가족들을 이끌고 성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하후영에게 사로 잡혀 한신에게 끌려갔다.

한신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변화무쌍한 성격을 가진자를 살려두어 무엇 하곘는가, 우리가 물러가면 다시 항우에게 빌붙을 자다."라고 하며, 제왕 전광의 목을 베라 명했다. 결국 제왕 전광은 참수형을 당했다. 한신이 즉각 제왕 전광을 참수한것은 역이기의 죽음에 대한 꺼림칙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