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Luckas-bot (토론 | 기여)
잔글 r2.7.1) (로봇이 더함: lv:Pragmatisms
AvocatoBot (토론 | 기여)
잔글 r2.7.1) (로봇이 더함: tt:Прагматизм
70번째 줄: 70번째 줄:
[[ta:நடைமுறைவாதம்]]
[[ta:நடைமுறைவாதம்]]
[[te:వ్యావహారికసత్తావాదం]]
[[te:వ్యావహారికసత్తావాదం]]
[[tt:Прагматизм]]
[[uk:Прагматизм]]
[[uk:Прагматизм]]
[[vi:Chủ nghĩa thực dụng]]
[[vi:Chủ nghĩa thực dụng]]

2012년 5월 10일 (목) 03:22 판

실용주의(實用主義) 또는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공리주의를 응용하여 미국에서 발현하고 성장한 미국적 철학사조이다.

식민시대 이래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사상계는 주로 독일 관념론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에 급속한 발전을 본 미국의 자본주의는 정치나 경제뿐만 아니라 사상면에서도 유럽으로부터 벗어나 미국의 독자성을 확립하게 하였다.

프래그머티즘의 발생 동기는 자본주의의 근대과학적 사고방식과 미국의 전통적 퓨리터니즘과의 조화를 꾀하려는 일군의 학자들(메타피지컬 클럽)에게 귀착된다. 그들 가운데는 철학자를 비롯해서 자연과학, 법학, 역사학, 신학, 심리학 등 여러 전문분야의 인사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프래그머티즘은 어떤 일개인의 노력이나 재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당시의 미국적 현실에서 결실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래그머티즘이라고 해서 유럽의 전통적 사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유럽의 새로운 경험론이나 과학주의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그것에 머무름이 없이 종래의 추상적·관념적인 철학상의 여러 논쟁을 지양하려는 데에 독자적인 성격이 있는 것이다.

찰스 샌더스 퍼스: 미국 박식가로 실용주의를 처음으로 정의하였다.

프래그머티즘이란 용어는 희랍어의 '프라그마(pragma)'에서 유래한 것이다. 퍼스는 이 용어를 실천이성의 명령을 프래그티슈(praktisch), 프래그매티슈(pragmatisch)로 나누어 전자를 선험적(先驗的) 또는 정언적(定言的), 후자를 경험적 또는 가언적(假言的) 의미로 사용한 칸트의 용법에 따라서 채용하였다. 퍼스의 이론은 '의미의 이론'이라고 불리는데, 그에 의하면 사물에 관한 명확한 관념은 필연적으로 실제상의 결과나 가능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관념을 명석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관념의 실제적 결과나 가능성을 고찰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관념이나 사고활동은 회의를 해소하고 확고한 행동을 가능케 하는 신념을 확립하는 데 있다. 신념이란 곧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지시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퍼스의 원리이며 또 프래그머티즘의 근본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퍼스의 '의미의 이론'에 더욱더 행동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프래그머티즘을 '진리의 이론'으로 전개한 사람은 제임스이다. 퍼스의 이론에 있어서는 대상에 관한 우리의 사고가 명확한 판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만 우리의 사고 안에 일정한 신념을 확립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제임스에 의하면 우리의 관념이 참이냐 거짓이냐 하는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실생활에 있어서 어떠한 실천적 차이를 나타내는가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관념의 진위는 그 자체로서는 결정되지 않으며, 다만 그것이 사실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보아서 결과가 유효하다고 검증(檢證)된다면 그것은 참(verity)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는 없으며 진리의 기준은 오로지 우리의 실생활에서의 유용성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는 상대적이며 변화하는 것이다.

프래그머티즘은 듀이에 의해서 그 행동적 요소가 더욱 강조되었고 개인적 관심에서 사회적 관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듀이의 철학은 보통 '도구주의(instrumentalism)' 또는 '실험주의(experimentalism)'라고 불린다. 우리의 모든 관념이나 사상은 우리의 현실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생물(organism)의 일종인 까닭에 환경과의 상호작용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경험이란 곧 이러한 상호작용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의 경험이 순탄하지 못할 때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기능이 다름아닌 사고작용인 것이다. 생활경험의 한 가지 기능으로서 발달하여 장래를 예상할 수 있는 지성을 특히 창조적 지성(creative intelligence)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결국 인간이 장래에 더 잘살기 위한 불가결의 방법이며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대체로 말해서 프래그머티즘은 엄밀한 철학이 아니라 생활의 철학이요, 상식의 철학이라 할 수있다. 그것은 진실를 실생활에 있어서의 유용성에 의해 결정하는 점에서 공리주의이며, 진리는 경험에 의해서 검증되고 변화한다고 보는 점에서 경험주의적이며, 지식보다는 행동을 중시하는 점에서 반주지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철학적 이념과 지향을 은폐하거나 호도함으로써 진정한 철학인지는 의문시되고 여러 비판을 야기했다.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