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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랑호 납북 사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사건의 여파: 해당 내용은 1969년에 납북된 항공기의 내용으로, 본 사건과는 무관함.
(→‎사건의 여파: 해당 내용은 1969년에 납북된 항공기의 내용으로, 본 사건과는 무관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국민항공사는 만송호의 전손처리와 창랑호의 납북으로 인해 발생한 적자를 끝내 해소하지 못하는 바람에 [[1961년]] [[7월 16일]]에 대한국민항공사의 창업주이자 사장인 신용욱 대표가 한강에 투신자살을 하였으며 결국 대한국민항공사는 [[1961년]] [[11월 13일]] 폐업처리 되었다.
 
당시 창랑호의 [[스튜어디스]]였던 성경희와 정경숙은 끝내 석방되지 못한 채 아직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억류되어 있으며 1992년에 귀순한 오길남의 증언에 의하면 '구국의 소리'라는 방송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 성경희는 2001년 2월 이산가족 방북단으로서 평양을 방문한 어머니와 상봉했다. 성경희와 정경숙은 분명히 납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은 이들이 월북했다고 거짓선전하고 있다.
 
== 출처 및 바깥 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