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이씨 (영보당):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욍로리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욍로리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8번째 줄: 18번째 줄:
완친왕이 사망한 이후에도 궁에 남아 고종황제를 모시고 덕수궁과 경복궁을 왕래하며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ref name=autogenerated1></ref>
완친왕이 사망한 이후에도 궁에 남아 고종황제를 모시고 덕수궁과 경복궁을 왕래하며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ref name=autogenerated1></ref>


1928년 12월 17일에 사망한 귀인 이씨는 동명이인으로 그녀의 당호는 내안당 이씨이다.
1928년 12월 17일에 사망한 [[귀인 이씨 (내안당)|귀인 이씨]]는 동명이인으로 그녀의 당호는 [[귀인 이씨 (내안당)|내안당]] 이씨이다.


== 주석 ==
== 주석 ==

2012년 1월 20일 (금) 00:58 판

영보당 귀인 이씨(永保堂 貴人 李氏, 1848년 - 1914년 2월 13일)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후궁으로, 고종의 장남 완친왕의 생모이다.

생애

고종명성황후와 결혼하기 전 궁녀 출신인 이씨를 먼저 알게되어 총애하였다. 뒤에 영보당으로 임명되었으며 1868년 윤4월 10일 운현궁에서 완화군을 낳았다. 영보당 이씨에게서 출생한 완화군(完和君, 완친왕으로 추존) 이선(李墡)을 사이에 두고 귀인 이씨와 명성황후 간에 보이지 않는 암투가 발생하였다.[1]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하면 세력이 불리한 명성황후가 영보당 이씨와 완화군을 대궐 밖으로 내보내서 정적을 제거하여 일을 마무리한 것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1]

1880년 1월 29일 숙원(淑媛)으로 책봉되고, 1906년 5월 27일 귀인(貴人)으로 책봉되었다. 1914년 2월 13일 덕수궁에서 별세하였다. 묘소는 양주군 숭인면 월곡리 완친왕묘 우강 남쪽에 예장하였다가 도시개발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서삼릉 내 후궁묘역으로 이장하였다.[2]

가족

완화군의 죽음 이후 그녀의 행적논란

영보당 이씨는 1914년 2월 13일 사망한 것으로 순종실록 부록에 기재되어 있으며 그녀의 장례는 같은해 2월 24일 옹주와 완친왕이 묻힌 완왕 일가 묘역에서 치뤄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1]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순종실록에 남은 기록을 살펴보면 그녀를 칭하는 호칭은 덕수궁 이씨이며 완친왕이 사망한 이후에도 궁에 남아 고종황제를 모시고 덕수궁과 경복궁을 왕래하며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1]

1928년 12월 17일에 사망한 귀인 이씨는 동명이인으로 그녀의 당호는 내안당 이씨이다.

주석

  1. :::::::::: 한국역사연구회 ::::::::::
  2. 일그러진근대역사의흔적 카페(http://cafe.daum.net/distorted), 이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