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보병사단 (대한민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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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0일 (월) 23:39 판

제6보병사단
청성(靑星)마크
국가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소속대한민국 육군
병과보병
종류보병사단
별칭청성부대
표어雖死不敗 靑星鬪魂
압록강 물을 다시 마시자
군가6사단가
참전한국전쟁
지휘관
지휘관육군 소장

대한민국 6 보병사단(한국 한자: 大韓民國六步兵師團, ROKA 6th Infantry Division)는 대한민국의 육군 보병 사단으로 상징명칭은 청성(靑星)부대이다. 청성(靑星)부대명칭은 6.25전쟁 당시 UN군이 사단을 Blue Star'라는 애칭으로 부른 것에착안하여 최강의 전투부대라는 뜻으로 서기 1951년에 사단에서 제정하였다.1948년 11월 20일에 창설되었다. 경례 구호는 '필승'이다. 휴전선 중부지역에 주둔하며, GOP연대 2개(2, 7)와 예비연대(19)와 포병연대 및 직할대로 구성되어 있다.

부대 연혁

제 6 보병사단1948년 4월 29일 국방부 일반명령(육) 제 15 호에 의거, 당시 경기도였던 수색리(지금의 서울 은평구 수색동 일대)에서 제 4 여단으로 최초 창설하여 11월 20일에 제 6 여단으로 개칭되었으며, 이듬해인 1949년 1월 15일 육본일반명령에 의거,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사단으로 승격되자마자 강원도 원주로 이동하였다가 6.25전쟁 직전에 당시 남북 분단선으로 춘천지역을 지나는 38도선을 지키게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춘천 방어전투, 용문산 전투등 전쟁기간동안 154여회의 대·소 전투에 참가하여 적 92,669명을 사살하고 6,437명을 생포하는 등의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된다. 대다수의 남한 국군 사단들이 6.25전쟁 초기에 북한 인민군의 대대적인 기습공세에 밀려 엄청난 피해를 입어 후방으로 후퇴하면서 몇번씩의 재편과정으로 초기편제가 없어지는 등의 일을 겪었으나, 이 6사단만큼은 춘천방어에 성공하다가 서울지역이 함락되고 나서야 전선유지를 위하여 명령에 의한 어쩔수 없는 전술상 후퇴를 하게 되었기에 6.25전쟁 이전에 편성된 부대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까지도 초창기 편제를 유지해온 유일한 부대로서 긍지가 높다. 또한, 서울 수복 이후 북진하여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치열한 격전지였던 압록강 물을 떠서 헌수한 것은 이 부대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휴전 이후에는 1957년 3월부터 1963년 8월까지 강원도 홍천 사창리, 경기도 포천 현리로 이동하여 주둔하였고 1966년 현재 위치로 이동하여 155마일 휴전선 중부지역의 경계를 담당하고 있으며, 제 2 땅굴 발견 등 약 30여회의 대간첩작전을 통해 적 17명을 사살하고, 적 1명을 생포하는 등 전공을 올리고 있다.

부대 편성

  • 2 보병 연대
  • 7 보병 연대
  • 19 보병 연대
  • 포병 연대
  • 직할대

관련 역사

6·25전쟁 발발 당시 남침하는 인민군의 전차(자주포)를 육탄돌격으로 파괴하여 유일하게 전선을 사수하며 3일간 남침을 저지하였다.
그 뒤 용문산 전투, 무극리 전투(동락리 전투), 초산 진격 등의 전공을 세웠다.

특히 동락리 전투에서 1개 대대 병력으로 1개 연대를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고, 전 부대 장병이 일계급 특진하는 기록을 세웠다.[1]

1950년 10월 26일에 국군과 연합군 최초로 압록강변까지 진격에 성공하여 압록강 물을 떠다 이승만 前대통령에게 헌수하였다.[2]

1973년 11월 20일 근무중이던 초병이 미상의 폭음을 감지하여 상부에 보고, 시추공으로 굴착작업 끝에 1975년 3월 19일 북한의 기습남칭용 2번째 땅굴인 제2땅굴을 발견하였다.[3]

드라마 촬영 협조

참조

틀:대한민국 육군의 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