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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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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기에는 유주자사(幽州刺史)인 [[유언 (후한)|유언]](劉焉)이 다스렸으며, 유언이 익주목(益州牧)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새로운 유주목(幽州牧)으로 임명된 [[유우 (후한)|유우]](劉虞)가 다스리게 되었다. 이후 유우와 대립하여 그를 죽인 [[공손찬]](公孫瓚)에게 점령되었으며, 그 뒤 공손찬의 세력을 멸망시킨 [[원소 (후한)|원소]](袁紹)에 의해 함락되었다. 원소의 세력이 [[조조]](曹操)에게 멸망한 이후에는 조조의 세력에 속하였으며, 이후 [[위 (삼국)|조위]](曹魏)와 [[서진]](西晉) 시대에도 유주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당나라]]와 [[후진 (오대)|후진]](後晉) 시대에는 영주(营州)와 대주(代州)에서 군사적 ·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안사의 난]]을 일으킨 [[안녹산]](安祿山)이 근거지로 삼았다. [[요나라]] 시대에 '''남경'''(南京)으로 개명하였으며, 요나라의 남쪽 수도가 되었다. [[금나라]] 시대에 이름을 '''중도'''(中都)으로 고쳤으며, 금나라의 중앙 수도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이후로 이름이 중도대흥부(금나라), 대도(원나라), 북경(명나라·청나라)으로 바뀌어도, 연경으로 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