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 카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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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반자동-완전자동 선택이 제거 되고 반자동만 가능하게 된다. 데이비드 윌리엄스도 이 때 다시 참여했고 이렇게 다듬어진 설계는 1941년 9월에
이 때 반자동-완전자동 선택이 제거 되고 반자동만 가능하게 된다. 데이비드 윌리엄스도 이 때 다시 참여했고 이렇게 다듬어진 설계는 1941년 9월에
미육군에 의해 높은 점수를 받게되어 1941년 10월 21일 미육군에 의해 M1 카빈이란 제식명을 받게 된다.
미육군에 의해 높은 점수를 받게되어 1941년 10월 21일 미육군에 의해 M1 카빈이란 제식명을 받게 된다.


M1 카빈에 쓰이는 .30 Carbine 탄은 기존의 소총탄을 줄이기 보다는 권총탄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그래서 탄약의 형상은 일반적인 권총탄을 확대시킨 형태이고
기존에 위력이 약한 기관단총(M1A1톰슨, M3/M3A1)을 대채했다.





2011년 1월 23일 (일) 16:47 판

M1 카빈

종류 소총
역사
사용국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미국의 기 미국, 브라질의 기 브라질, 이스라엘의 기 이스라엘
개발년도 1938년 ~ 1941년
제원
중량 2.36 kg

M1 카빈(M1 Carbine, 공식명칭 the United States Carbine, Caliber .30, M1)은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동안 미군의 표준 화기였던 경량 반자동 카빈이다. 미군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 군대들과 준 군사조직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M2 카빈은 완전자동 사격기능이 있는 변형이다. M3 카빈은 능동 적외선 스코프를 장착한 M2이다.

대한민국 향토예비군에서 사용 중이다.

부가설명&변형

M1 카빈은 2차 대전 당시 일선전투부대外 병사들의 개인방어용화기를 보급시킬 목적으로 개발하였다. 무전병, 운전병, 보급계통과 같은 지원 임무를 맡은 인원들과 박격포병이나 공수부대원, 장교, 의무병처럼 전투부대이나 보병용 소총 혹은 기관단총/권총으로만 무장시키기에는 뭔가 부족해보이는 이들을 위한 작고 가벼운 자동 화기가 요구됨에 따라 작고, 가볍고, 휴대가 쉬우면서 소총같이 쓸 수 있는 자동화기에 대한 설계가 진행된다.


이는 오늘날의 PDW(개인방어용화기)와 유사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요구한다.


1. 주로 50 ~ 300야드에서 사용되면서 권총보다 정확하고 위력적일 것.

2. 보병의 신형자동소총(개런드)보다 다루기 쉬우면서 가벼울 것.

3. 톰슨 기관단총보다 다루기 쉬우면서 가벼울 것.

4. 무게는 5파운드 정도욀 것.

5. 자동 사격이 가능해야하며 반자동-완전자동 선택이되면 좋음.


이 육군의 요구 사항들은 윈체스터社가 받게되며 윈체스터에서 탄약 개발이 진행된다. 1938년, 27구경보다는 크면서 유효사거리는 300야드정도고 총열을 완전히 수평으로 놓고 쐈을 때 300야드에서 낙차(bullet drop)은 18인치 이내인 자동화기용 탄약이란 조건에 맞춰서 윈체스터사의 수석 기술자이자 공장 책임자였던 에드윈 퍽슬리(Edwin Pugsley)는 100그래인 정도의 30구경 총알을 총구속도 2,000 ft/sec정도로 날려보내는 탄약을 개발한다. 탄약 개발 당시 1906년에 만들어봤던 32 Winchester Self-Loading탄 (32 SL이라불리던)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나온 30 Self-Loading 탄약은 미육군의 새로운 자동화기용 탄약으로 채택된다. 이 30 Self-Loading 탄약은 기존의 소총탄을 줄이기 보다는 권총탄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탄약의 형상은 일반적인 권총탄을 확대시킨 형태이고 기존에 위력이 약한 권총탄 (M1A1톰슨, M3/M3A1)을 대채하는 용도였다.


한편, 금주법 시대인 1921년, 밀주제조 및 유통업자로 암약중 밀조 현장을 급습한 보안관 한명을 쏘아죽였던 David "Carbine" Williams란 1급 살인범이 교수형에 처해질뻔하나 혐의가 희박하다는 이유로 8년동안 감옥에서 지내던중 종이와 연필을 구해 밤에 잠안자고 총기를 설계했고 풀려나와 그의 설계를 윈체스터에 제출한다.


곧 그는 윈체스터에 영입됐고 죠나단 브라우닝의 설계에 자신이 개발한 단복좌 가스 작동식 구조(short-stroke gas operation)을 적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자동소총 M2를 1940년 미해병대의 자동소총 선정사업에 뛰어들지만, 이 M2는 해병대가 요구했던 모래투성이의 환경에서 잘 작동하지 못했고 해병대는 이걸 거부한다. 이 일 이후, M2는 다시 설계되며 틸팅 볼트 대신에 개런드 소총에서 사용된 것과 비슷한 회전 노리쇠(rotating bolt)방식으로 변경된다.


포기할수 없었던 윈체스터는 크기를 더 작게하고 이에 따라 Edwin Pugsley의 지휘하에 William Roemer와 Fred Humeston외 3명의 기술자들이 13일동안 M2 의 설계를 그들이 이미 만든 30 SL 탄에 맞춘다.


이 설계는 육군을 만족시켰고 육군은 1941년 8월까지 테스트하게되며 윈체스터에서도 자신들의 설계을 일부 변경하는데, 이 때 반자동-완전자동 선택이 제거 되고 반자동만 가능하게 된다. 데이비드 윌리엄스도 이 때 다시 참여했고 이렇게 다듬어진 설계는 1941년 9월에 미육군에 의해 높은 점수를 받게되어 1941년 10월 21일 미육군에 의해 M1 카빈이란 제식명을 받게 된다.


M1A1 카빈
파일:M1 z celownikiem noktowizyjnym.jpg
M3 카빈과 암시 조준경
  • M1A1 카빈
    • 공수부대원을 위한 변형으로 기존의 개머리판을 접철식으로 바꾸면서 손잡이도 권총형으로 바뀌었다. 총 15만 정이 생산되었다.완전자동이가능한 버젼도 있다.
  • M1A3 카빈
    • 판토그래프 개머리판를 적용한 변형.
  • M2 카빈
    • 1945년에 전자동으로 사격할 수 있도록 개량된 변형으로, 30발들이 탄창을 사용하였다. 총 60만 정이 생산되었다.
  • M3 카빈
    • M2에 암시 조준경을 장착한 변형으로, 한국 전쟁베트남 전쟁에서 특수한 용도로 쓰였으며 총 3천 정이 생산되었다.

<문제중년 http://glob.egloos.com 제공>

M1 개런드

M1 카빈과 M1 개런드는 전혀 다른 총이다.

같이 보기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