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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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선농단에서는 왕이 직접 밭을 갈고 신농씨와 후직씨에 제를 지내는 선농제가 거행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끊긴 것을 제기동 주민들이 ‘선농단 친목회’를 조직하여 1979년부터 매년 1차례 제를 올렸고,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청에서 행사를 담당하게 되었다.<ref>[http://seoul600.seoul.go.kr/seoul-history/munwhasa/txt/text/2-4-1-1-4.html 선농단 현황], 서울六百年史</ref><ref>[http://tour.ddm.go.kr/sub05/sub01_02.asp 선농제향 행사 참여], 동대문문화·관광</ref>
조선 시대 선농단에서는 왕이 직접 밭을 갈고 신농씨와 후직씨에 제를 지내는 선농제가 거행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끊긴 것을 제기동 주민들이 ‘선농단 친목회’를 조직하여 1979년부터 매년 1차례 제를 올렸고,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청에서 행사를 담당하게 되었다.<ref>[http://seoul600.seoul.go.kr/seoul-history/munwhasa/txt/text/2-4-1-1-4.html 선농단 현황], 서울六百年史</ref><ref>[http://tour.ddm.go.kr/sub05/sub01_02.asp 선농제향 행사 참여], 동대문문화·관광</ref>

=== 연혁 ===
조선 시대에는 제기리계(祭基里契)로 인창방(仁昌坊)에 소속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제기정(祭基町)이 되었고, 1943년에는 경기도 경성부 동대문구에 속하게 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에 현재의 명칭인 제기동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숙종 24년(1698년)에는 호랑이가 출몰하기도 했다. 청량리 로터리에서 고려대학교 뒷편에 이르는 일대는 일제강점기까지 논과 밭이 주를 이루었고, 1960년대 후반 주변 도로가 개설되고 청량리 상가가 발전하면서 3개 동 40만㎡에 5만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게 되었다.<ref>祭基洞 交通 편리한 住宅街, 《매일경제》, 1969.9.16</ref>


== 지역 정보 ==
== 지역 정보 ==

2010년 11월 9일 (화) 02:05 판

제기동(祭基洞)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이다. 동대문구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안암동(성북구), 북쪽으로 종암동(성북구), 동쪽으로 청량리동, 남쪽으로 용신동과 접해있다. 제기동 중심에는 정릉천이 지난다. 조선 시대에도 마을을 이루었으며, 2010년 기준으로 면적 1.18㎢, 인구는 2만 8174명[1]이다.

명칭의 유래

동의 명칭인 ‘제기(祭基)’는 ‘제사터’를 의미하며, 조선초에 지어진 선농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2]

조선 시대 선농단에서는 왕이 직접 밭을 갈고 신농씨와 후직씨에 제를 지내는 선농제가 거행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끊긴 것을 제기동 주민들이 ‘선농단 친목회’를 조직하여 1979년부터 매년 1차례 제를 올렸고,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청에서 행사를 담당하게 되었다.[3][4]

연혁

조선 시대에는 제기리계(祭基里契)로 인창방(仁昌坊)에 소속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제기정(祭基町)이 되었고, 1943년에는 경기도 경성부 동대문구에 속하게 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에 현재의 명칭인 제기동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숙종 24년(1698년)에는 호랑이가 출몰하기도 했다. 청량리 로터리에서 고려대학교 뒷편에 이르는 일대는 일제강점기까지 논과 밭이 주를 이루었고, 1960년대 후반 주변 도로가 개설되고 청량리 상가가 발전하면서 3개 동 40만㎡에 5만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게 되었다.[5]

지역 정보

보제원터

주석

  1. 주민등록인구로, 실제 거주인구와는 다를 수 있다.
  2. 제터고개­계터고개 (제기동) - 서울의 고개, 서울특별시 문화정보네트워크
  3. 선농단 현황, 서울六百年史
  4. 선농제향 행사 참여, 동대문문화·관광
  5. 祭基洞 交通 편리한 住宅街, 《매일경제》, 1969.9.16
  6. “고대 앞 막걸리촌 35층 재개발 반대”, 《경향신문》, 2009.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