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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祭基洞)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의 [[동 (행정 구역)|동]]이다.
'''제기동'''(祭基洞)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의 [[동 (행정 구역)|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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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일 (토) 23:35 판

제기동(祭基洞)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이다. 동대문구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안암동(성북구), 북쪽으로 종암동(성북구), 동쪽으로 청량리동, 남쪽으로 용신동과 접해있다. 제기동 중심에는 정릉천이 지난다. 조선 시대에도 마을을 이루었으며, 2010년 기준으로 면적 1.18㎢, 인구는 2만 8174명[1]이다.

명칭의 유래

동의 명칭인 ‘제기(祭基)’는 ‘제사터’를 의미하며, 조선초에 지어진 선농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2]

조선 시대 선농단에서는 왕이 직접 밭을 갈고 신농씨와 후직씨에 제를 지내는 선농제가 거행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끊긴 것을 제기동 주민들이 ‘선농단 친목회’를 조직하여 1979년부터 매년 1차례 제를 올렸고,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청에서 행사를 담당하게 되었다.[3][4]

지역 정보

보제원터

주석

  1. 주민등록인구로, 실제 거주인구와는 다를 수 있다.
  2. 제터고개­계터고개 (제기동) - 서울의 고개, 서울특별시 문화정보네트워크
  3. 선농단 현황, 서울六百年史
  4. 선농제향 행사 참여, 동대문문화·관광
  5. “고대 앞 막걸리촌 35층 재개발 반대”, 《경향신문》, 2009.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