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쿠로팟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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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부터 외교 임무에 고용되어 [[1876년]] [[투르키스탄]] [[코칸트]]의 군사 작전과 [[1877년]]~[[18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 때 전공을 세워 중장으로 승진, [[1898년]]부터 [[1904년]]까지 전쟁성 장관으로 있었다. 한때 [[1890년]] [[중앙아시아]] 지역의 주지사로 돌아가 [[1898년]]까지 역임했고 [[1904년]] 2월 [[러일 전쟁]] 직전 만주 지역의 러시아 지상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904년]] 중기부터 [[1905년]] 초기까지 랴오동 지역에서 그가 이끈 [[요동 전투]], [[사하 전투]], [[산데푸 전투]], [[봉천 전투]] 모두 무승부 또는 패배라는 대참사로 끝나버렸다.끝나버렸는데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장관 직책에서 물러나고 극동군사령관으로 취임하였으나, 이듬해 만주의 선양봉천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하여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되어 1군 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15년]] 10월 척탄병 부대를 담당했고 [[1916년]] 7월부터 투르키스탄 지역의 토착 민족 반란을 진압하다가 [[1917년]] 은퇴하였다. [[러시아 혁명]] 후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생활했으며 저서로는 《러시아군과 일본군의 전쟁》([[1909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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