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구석기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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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기의 출현 ==
== 토기의 출현 ==
[[파일:JapanesePolishedStoneAxes.JPG|left|thumb|간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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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최초로 토기가 어떻게 출현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고, 특별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나 일단은 북방에서 전파되어 왔다고 여겨지고 있다. 어쨌든 구석기시대의 종반에는 [[규슈]]에서는 도류문 토기([[:ja:豆粒文土器|豆粒文土器]])가, [[혼슈]]에서는 [[민무늬토기]]가 출현하였다. 일반적으로 토기는 운반·저장·취사에 쓰였으나 토기가 막 출현하기 시작한 이 시기의 토기의 역할은 아직 충분히 해명되지 못했다.
일본에서 최초로 토기가 어떻게 출현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고, 특별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나 일단은 북방에서 전파되어 왔다고 여겨지고 있다. 어쨌든 구석기시대의 종반에는 [[규슈]]에서는 도류문 토기([[:ja:豆粒文土器|豆粒文土器]], 長崎県・泉福寺洞窟)가, [[혼슈]]에서는 [[민무늬토기]]가 출현하였다. 일반적으로 토기는 운반·저장·취사에 쓰였으나 토기가 막 출현하기 시작한 이 시기의 토기의 역할은 아직 충분히 해명되지 못했다.


== 각주 ==
== 각주 ==

2010년 8월 6일 (금) 00:05 판

  해수면 위의 지역
  식물 무생식 지역
  바다

일본 열도의 구석기시대(틀:Ja-y)는 인류가 일본 열도로 이주를 시작하였을 때부터 1만 6000년 전까지의 시대로 추정한다. 무토기 시대(無土器時), 선토기 시대(先土器時代)라고도 한다.

말기는 아오모리 현 소토가하마 마을 오다이야마모토이치 유적(大平山元I遺跡)에서 출토된 토기에 부착한 탄화물의 'AMS법방사성 탄소연대측정 역년교정연대법'에 의해 1만 6500년 전으로 추정한다.

일본 열도에서 인류의 족적은 이와테 현 도노 시 가네토리 유적(金取遺跡)에 의해 98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

지질학적으로는 빙하기라고 불리는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 말기부터 홀로세 초두까지를 말한다.

개요

일본에 불완전하지만 호상 열도의 형태가 완성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5백만 년 전 쯤이다. 이 때는 아직 유라시아 대륙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뒤, 빙기와 간빙기가 교차하는 빙하기에는 화산의 분화에 따른 지각변동으로 지형의 변화가 일어났다.

종래의 학설에서는 빙하시대에 일본 열도는 대륙과 연결되어 있어 일본인의 선조는 사냥감을 쫓아 일본 열도까지 오게 된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2], 근년의 연구에서는 방하기의 최한기에도 쓰가루 해협, 쓰시마 해협에는 바다가 남아 있어 대륙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배를 타지 않으면 왕래할 수 없는 이즈 제도·고지마 섬흑요석간토 지방의 후기 구석기 시대의 적에서 발견된 것에서 “일본인의 선조는 배를 타고 일본 열도로 왔다”라는 연구자의 발언도 신문에 보도되었다[3]. 한편, 약 4만년 전의 후기 구석시시대 초기부터 흑요석의 채굴이 계속되어 온 다카하라 산 흑요석 원산지 유적군(高原山黒曜石原産地遺跡群)에서는 지적으로 효율적인 작업의 흔적도 확인되고 있어, 후기 구석기 고증, 일본인의 기원 고증에 큰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주거와 무덤

일본의 구석기시대 유적은 대지·단구·구릉·고원 등 전망이 좋은 플라이스토세의 대지 연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 장소로서의 거주지 유적, 사냥감해체장소 유적, 석기제작장 유적 등이 있다. 정주 주거 유적의 출토 예가 적기 때문에 구석기 시대 사람은 일정한 생활 영역 내를 이동하면서 채집·수렵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동굴과 바위그늘을 주거지로 이용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움막 주거지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오사카 부 후지이데라 시의 하사미산 우적의 주거지가 잘 알려져 있다.

그 외, 사자를 매장하는 널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사자가 생전에 사용하던 장신구와 석기·옥 등을 부장하고, 거기에 적색 안료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시베리아캄챠카 반도, 동아시아에서 사자를 매장하는 습속은 늦어도 2만년 전에는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주술적인 것으로 만들어진 듯한 높이 약 9cm, 너비 2~3cm의 고케시(こけし, 손발이 없는 원통형의 몸통에 둥근 머리가 붙는 모양의 인형) 모양의 석우(石偶, 돌로 만든 작은 인형)가 출토되기도 한다. 또한, 자갈로 가는 선 모양을 만들어 동물을 묘사한 것도 발견된다.

구석기시대 유적은 석기와 파편 등의 유물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 여러 곳, 복수의 자갈 군, 화로터, 주거지 터, 토갱, 묘갱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집락촌의 규모와 구성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토기의 출현

간석기

일본에서 최초로 토기가 어떻게 출현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고, 특별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나 일단은 북방에서 전파되어 왔다고 여겨지고 있다. 어쨌든 구석기시대의 종반에는 규슈에서는 도류문 토기(豆粒文土器, 長崎県・泉福寺洞窟)가, 혼슈에서는 민무늬토기가 출현하였다. 일반적으로 토기는 운반·저장·취사에 쓰였으나 토기가 막 출현하기 시작한 이 시기의 토기의 역할은 아직 충분히 해명되지 못했다.

각주

  1. 일본 열도에서는 후기 구석기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화석은 발견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최종 빙기 이전에 도래한 것으로 보이는 포유동물의 화석은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어, 이러한 동물을 쫓아 대륙의 구석기인이 일본 열도로 이동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하다.
  2. 「동북아시아와 일본의 구석기문화(東北アジアと日本の旧石器文化)」오바타 히로키(小畑弘己) 『일본의 고고학(日本の考古学)』나라문화재연구소 편(奈良文化財研究所編) 2007년
  3. 2007年04月14日Asahi.comニュース-陸続き否定情報、3万5千年前の黒曜石採掘坑遺跡情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