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왕비 프랑스의 엘리자베트: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Npsp (토론 | 기여)
잔글 사전 참조
Dinamik-bot (토론 | 기여)
잔글 로봇이 바꿈: ro:Elisabeta a Franței
39번째 줄: 39번째 줄:
[[pl:Elżbieta Burbon (1602-1644)]]
[[pl:Elżbieta Burbon (1602-1644)]]
[[pt:Isabel de Bourbon, Rainha de Portugal e Espanha]]
[[pt:Isabel de Bourbon, Rainha de Portugal e Espanha]]
[[ro:Elisabeta a Franţei]]
[[ro:Elisabeta a Franței]]
[[ru:Изабелла Бурбон]]
[[ru:Изабелла Бурбон]]
[[sv:Elisabet av Frankrike]]
[[sv:Elisabet av Frankrike]]

2010년 6월 4일 (금) 16:58 판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초상화

엘리자베트 드 부르봉(프랑스어: Élisabeth de Bourbon, 1602년 11월 22일 - 1644년 10월 6일)은 프랑스의 공주로, 에스파냐 왕 펠리페 4세(Philip IV of Spain)의 왕비이다. 아버지는 프랑스와 나바르의 왕 앙리 4세(Henry IV), 어머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edici)이다. 왕의 장녀로서 그녀는 궁정 내에서 마담 루아이얄(Madame Royale)이라는 특별한 칭호로 알려졌다.

생애

1602년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출생하였다. 악명 높은 바람기를 가진 앙리 4세 탓에 엘리자베트의 유년기는 그다지 행복한 편이 아니었다. 괄괄한 성미를 가진 마리 드 메디시스는 후일 앙리 4세프랑수아 라바이약(François Ravaillac)에게 암살당하자 그 음모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로 남편과 몹시 사이가 나빴고, 앙리 4세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를 무시하며 50명이 넘는 정부와 정부와의 사이에서 난 자녀들, 전 왕비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까지 끼여 북적대는 궁정 속에서 왕비와의 사이에서 난 자녀들을 자라도록 하였다.

앙리 4세의 죽음 뒤 1615년 미래의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4세가 되는 아스투리아스 공 펠리페와 결혼하였다. 이 결혼은 비교적 성공적이어서 서로를 사랑했지만 펠리페 4세 역시 수십 명의 서자를 두었을 만큼 바람기가 심했다. 거듭되는 유산과 조산, 남편의 외도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엘리자베트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체념하는 데 그쳤다.

그녀는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장남이자 후계자인 발타사르 카를로스(Baltasar Carlos)와 막내딸 마리아 테레사(Maria Theresa of Spain)를 제외하면 모두 일찍 죽었고, 그나마 발타자르 카를로스가 일찍 사망하면서 결혼해 자녀까지 둔 자식은 오직 마리아 테레사뿐이었다. 이후 에스파냐-합스부르크 가의 혈통이 끊기면서 이후 에스파냐 왕위는 엘리자베트의 증손자이자 마리아 테레사의 손자인 앙주 공작 필립이 펠리페 5세(Philip V of Spain)로서 잇게 된다.

자녀

  • 인판타 마리아 마르가리타(Infanta Maria Margarita, 1621)
  • 인판타 마르가리타 마리아 카탈리나(Infanta Margarita Maria Catalina, 1623)
  • 인판타 마리아 에우헤니아(Infanta Maria Eugenia, 1625 - 1627)
  • 인판타 이사벨 마리아 테레사(Infanta Isabel Maria Teresa, 1627)
  • 에스파냐의 발타사르 카를로스(Baltasar Carlos, 1629-1646)
  • 인판타 마리아나 안토니아(Infanta Maria Ana Antonia, 1636)
  • 에스파냐의 마리아 테레사(Maria Theresa of Spain, 1638-1683),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