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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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자 ==
== 생존자 ==
* [[김계원]]-대통령 비서실장, 사건 목격자.

* [[박상범]]-대통령 경호실 수행계장.
* [[박상범]]-대통령 경호실 수행계장.
* [[심수봉]]-유명 신인가수, 사건 목격자.
* [[신재순]]-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3학년의 대학생, 사건 목격자.


== 사건의 개요 ==
== 사건의 개요 ==

2006년 7월 8일 (토) 03:56 판

10·26 사건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중앙정보부 부장이던 김재규박선호, 박흥주 등과 당시 대통령 박정희와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 등을 살해한 사건이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대통령을 살해했다고 주장했으나, 권력간 암투에서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차지철에 밀리는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일으킨 범행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현장에 있던 당사자들

  • 박정희-대한민국 대통령,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머리와 가슴을 맞고 죽음.
  • 차지철-대통령 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팔과 배를 맞고, 경비원 김태원에게 확인사살당함.
  • 김재규-중앙정보부장, 대통령 박정희와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을 안가 연회장에서 죽임.
  • 김계원-대통령 비서실장, 사건 목격자.
  • 심수봉-유명 신인가수, 사건 목격자.
  • 신재순-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3학년의 대학생, 사건 목격자.

사건 가담자들

  • 김재규-중앙정보부장-1980년 5월 24일 교수형
  • 박흥주-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 육군 대령-1980년 3월 6일 총살형
  • 박선호-중앙정보부 의전과장, 중학교 시절 김재규의 제자-1980년 5월 24일 교수형
  • 유성옥-궁정동 안가 운전기사-1980년 5월 24일 교수형
  • 이기주-궁정동 안가 경비과장-1980년 5월 24일 교수형
  • 김태원-궁정동 안가 경비원-1980년 5월 24일 교수형
  • 서영준-궁정동 안가 경비원-징역형 뒤에 석방됨

이들 중 서영준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아 1980년에 처형됨.

간접 당사자들


사망자들

  • 박정희-대한민국 대통령,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머리와 가슴을 맞고 죽음.
  • 차지철-대통령 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팔과 배를 맞고, 경비원 김태원에게 확인사살당함.
  • 정인형-대통령 경호처장,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에게 가슴을 맞고 죽음.
  • 안재송-대통령 경호부처장,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에게 가슴을 맞고 죽음.
  • 김용섭-대통령 경호원, 별관 식당에서 안가 경비원들과 박흥주에 의해 죽음.
  • 김용태-대통령 운전기사, 별관 식당에서 안가 경비원들과 박흥주에 의해 죽음.

생존자

  • 김계원-대통령 비서실장, 사건 목격자.
  • 박상범-대통령 경호실 수행계장.
  • 심수봉-유명 신인가수, 사건 목격자.
  • 신재순-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3학년의 대학생, 사건 목격자.

사건의 개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과, 당진에 있는 중앙정보부 시설에 가려 했다. 그러나 '권력의 제2인자'라 불리던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김재규를 일방적으로 제외시켰고, 그 결과 방조제 준공식은 김재규가 없는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김재규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차지철이 '김부장'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대단히 싫어했다. 그리고 자신을 방조제 준공식의 명단에서 일방적으로 지워버리니, 차지철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정희가 준공식에서 돌아오자, 차지철은 다시 김재규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 6시에 궁정동 안가로 오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전한다.

김재규는 이때다 생각하고 차지철은 물론 차지철을 총애하는 박정희까지 죽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진행

김재규는 궁정동 안가에 들어오자마자 총을 꺼내 자신의 바지주머니에 숨긴다.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에게 박정희차지철을 죽일 것이라고 알렸다. 바로 그 때, 박정희차지철이 궁정동 안가로 들어오고, 김계원과 김재규도 연회장이 있는 '나'동으로 들어갔다.

그 시간에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는 호텔에서 데리고 온 심수봉과 신재순에게 보안서약서를 쓰게 했다.

박정희김재규에게 여러가지로 민중들의 데모에 관해서 물었고, 차지철이 어정쩡하게 대처한다고 중도에 말하자,그의 '죽이고 싶은 마음'은 점점 들어버렸고, 궁정동 안가에 오자마자 전화로 들어오라고 한 정승화와 김정섭이 있는 '가'동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 때가 저녁 7시 10분경이었다.

다시 연회장에 가고 문 앞에서 총 체크를 하는 순간에, 차지철이 나타났다. 김재규는 총을 도로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었고, 차지철은 그냥 지나갔다. 차지철은 경호원들이 있는 주방으로 내려가봤고, 연회장에 들어오는 때에, 심수봉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시 차지철이 들어오자, 김재규는 다시 나가 박흥주와 박선호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각하(박정희)와 차지철을 죽일 것이다. 박선호 너는 정인형(대통령 경호처장)과 안재송(대통령 경호부처장)을 처단하고, 박 대령(박흥주)은 경비원들과 함께 주방의 경호원을 모두 없애라. 이것은 혁명이다!"

그 때가 저녁 7시 30분이었다. 다시 돌아와보고 나니, 시간이 저녁 7시 38분이었다. 심수봉의 노래가 끝나자, 이번엔 신재순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건 순간

1979년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7시 41분, 신재순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중간에, 김재규박정희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내뱉는다.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놈(차지철)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

순간 김재규가 "너 이 새끼 차지철, 아주 건방져! 죽일 놈!" 이라고 말하자 총알은 차지철의 팔에 맞았다.

박정희가 "무슨 짓이야? 김부장!"이라고 호통치자 김재규박정희의 가슴을 향해 총을 쐈다. 그 총소리가 들리는 순간, 박선호는 안재송과 정인형을 차례로 대기실에서 총을 쏴 죽였으며, 박흥주 역시 경비원들과 같이 주방에 있던 경호원들을 죽여버렸다.

김재규가 총구를 차지철 쪽에 조준했고, 차지철은 계속 김재규에게 저항하는데, 김재규가 총을 쏘려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이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 때, 정전이 되었으며, 김재규는 연회장을 빠져나가 1층 로비로 갔다.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박선호가 나타났고, 김재규는 총을 박선호의 총과 맞바꿨다.

박선호는 탐색하러 갔고, 김재규는 연회장으로 다시 들어갔는데, 그 때는 심수봉과 신재순이 박정희를 부축하고 있었다. 차지철은 화장실에 숨었다가 다시 나왔고, 경호원을 찾으러 나가려는 순간에, 다시 김재규가 들어와 있었다. 차지철김재규에게 장을 던져 총을 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김재규는 피하고 차지철의 배를 향해 총을 쐈다. 차지철은 그대로 엎어졌다. 김재규는 박정희 앞으로 다가와 총을 겨누었고, 심수봉과 신재순은 도망가 어디론가로 숨었다. 김재규는 그들이 도망가고, 총구를 박정희의 머리에 겨누더니, 이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박정희의 사인은 머리에 총을 맞은 것이 아니라, 가슴에 맞은 거였으며, 머리에 맞기 전에 이미 사망했다.

김계원은 연회장의 대기실에서 사건을 지켜봤다. 정승화와 김정섭도 20여발의 총소리에 조금 의아하게 여겼다.

김재규는 나가서 정승화와 김정섭과 같이 차를 타고 육군본부로 갔으며, 김계원박정희의 시체와 같이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가서 박정희를 살려내기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김계원은 청와대로 들어오자마자, 국무총리 최규하에게 박정희의 저격범은 김재규라고 말했고, 최규하를 모시고 육군본부로 가 정승화와 국방부 장관 노재현을 만나 범인은 김재규라고 다시 말했다.

궁정동 안가에서는 경비과장 이기주가 박선호의 명령을 받고, 경비원 김태원을 시켜 쓰러져있는 사람 모두를 확인사살시킨다. 꿈틀거리던 차지철도 이렇게 죽어버렸다.

김재규의 체포와 사형집행

한편, 정승화는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에게 김재규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렸고, 27일 오전 0시 40분 김진기가 김재규를 체포하자, 정승화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불러 이를 보안사령부에서 인계받아 김재규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하였다.

이후 김재규는 남영동에 있던 보안사령부 소속 서빙고 분실에서 가혹한 고문과 수사를 받았으며, 군법재판에서 내란목적살인이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아, 1980년 5월 24일 당시에 서울 서대문에 위치하던 서울 구치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사건의 의의

이 사건은 특종이었다.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자신의 충복인 중앙정보부장에게 살해됐다는 그 자체가 놀라웠다. 김재규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습니다. 나는 민주회복을 위해 그리 한 것이었고,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그리 한 것이었습니다. 아무 뜻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에 의해서 길들여진 김재규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쐈다고 평가되지 않고 있다. 김재규의 증언처럼 민주회복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권력투쟁에서 차지철에게 밀려서난 것에 대한 감정이 폭발하여 차지철은 물론 아예, 박정희까지 살해했다고 받아들어지고 있다.

여기서 경호원들 모두(서영준 제외) 사람을 죽였으나, 그들은 상관인 김재규의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군사법원에서 주관했기에 관대한 처분을 받기란 사실상 어려웠으며, 상관의 명령 하나로 대통령을 죽인 공범이 되어 사형당하였다. 지금도 10.26사건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일고 있다.

참고

MBC 특별기획 수목드라마 제4공화국(1995~1996)과 MBC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2005)이 가장 설명이 잘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