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나우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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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7일 (목) 02:43 판

호나우두
개인 정보
출생일 1976년 9월 18일
출생지 브라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1.83m
포지션 스트라이커 (FW)
구단 정보
현 소속팀 브라질 SC 코린치안스
등번호 9
청소년 구단 기록
Tennis Club Valqueire
소샬 라무스 클럽
상 크리스토방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93-1994
1994-1996
1996-1997
1997-2002
2002-2007
2007-2008
2009-
크루제이루
PSV 에인트호번
FC 바르셀로나
인테르 밀란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SC 코린치안스
013 (12)[1]
046 (42)
037 (34)
069 (49)
127 (83)
020 (9)
022 (14)
국가대표팀 기록
1994- 브라질 097 (62)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9년 7월 12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8년 9월 28일 기준임.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Ronaldo Luíz Nazário de Lima, 1976년 9월 22일 - )는 브라질축구 선수이다. 호나우두라는 애칭으로 더욱 유명하다.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도 선정되었다.

브라질에서

1976년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호나우두는 1986년 유소년축구팀 선수가 되면서 축구선수의 길에 접어들었다. 유소년클럽에서부터 보여주던 천재적인 득점력을 바탕으로 1993년 드디어 브라질 1부 리그 크루이제루와 정식 프로선수 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브라질리그에서의 경기당 1골에 이르는 가공할 득점력을 바탕으로 17살의 어린 나이로 1994년 FIFA 월드컵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막내로 참가한다. 비록 호마리우와 베베토라는 슈퍼스타들의 그늘에 가려 벤치에서만 머물렀지만 브라질의 네번째 월드컵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유럽 무대에서

호나우두는 1994년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준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여 유럽으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이적한 네덜란드리그에서 엄청난 득점력을 보이며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브라질 올림픽팀대표로 참가하였으나 아쉽게 동메달에 그쳤다.


빅리그

1996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호나우두는 96/97시즌 빠른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 능력,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34골로 리그 득점왕을 차지해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소속팀은 리그 준우승, '코파델레이' 우승과 8골로 득점왕, '96/97시즌 컵 위너스 컵'을 우승하고 본인은 5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리그에서는 '프리메라리가 선정 올해의 남미 선수'에 선정 되었으며, 그리고 1996년 'FIFA 선정 올해의 선수'를 최연소의 나이로 수상하였다.

1997년 브라질 국가대표로는 '1997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여 우승 및 6경기 7골로 득점왕을 차지하고, 프랑스월드컵에 앞서 열린 '1997 FIFA 컨페더레이션 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컨페드컵에서는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유명한 카를로스의 'UFO슛'이 나오기도 한다.

1997년 전년도 바르셀로나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한시즌만에 인터 밀란으로 이적한 그는 소속팀 인터밀란을 리그에서는 준우승을 유럽에서는 '97/98시즌 UEFA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유러피언 올해의 선수(발롱드르)'와 1997년 'FIFA 선정 올해의 선수'가 되었다. FIFA 선정 올해의 선수는 2회 연속 수상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리그에서는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고, 유럽에서는 'UEFA MVP'로 선정되었다.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을 결승으로 이끌면서 4골을 기록했는데,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는 부진한 면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대회기간 중에 부상으로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님에도 팀을 결승전까지 이끌었고 결승전 당시에는 진통제를 맞고 출전하는 등 그의 컨디션은 최악에 가까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점 때문에 이례적으로 준우승팀인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골든슈(MVP)'를 수상했다. 이어 '1998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하고 5골로 득점왕과 대회 MVP를 차지했다.

그러나 월드컵 대회기간 중 무릎부상을 숨기며 출전을 강행한 것이 시진이 지난뒤에 큰부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월드컵이 끝나고 시작된 세리어A 98/99시즌에서 잦은 부상으로 리그에서 19경기(14골)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그리고 운명의 99/00시즌에 이르러서는 십자인대파열이라는 큰 부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시즌이 한참 진행중이던 1999년 11월에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서 오랬동안 출전하지 못하고 오로지 재활에 매달렸다. 2000년 기나긴 재활을 거쳐 부상에서 회복여 드디어 리그경기에 복귀하였으나, 복귀 후 첫 경기 SS 라치오와 경기에서 그라운드에 교체되어 들어간지 3분만에 부상부위였던 오른쪽무릎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다시 같은 부위에 부상이 재발한 것이었다. 재수술로 10개월이 넘는 재활기간을 거치며 00/01시즌을 통째로 쉬며 오랫동안 출전하지 못했다. 마침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여 01/02시즌 후반기에 복귀하여 리그에서 9경기 7골을 넣어 브라질대표팀으로의 복귀에 청신호를 알렸다.

많은 논란끝에 마침내 브라질 월드컵대표가 되었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며 80년대 이후 깨지지 않던 '득점왕은 6골이상 넣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깨며 8골로 '대회 득점왕'과 '실버볼'을 수상하며 브라질의 월드컵 5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갈락티코의 일원으로 합류

월드컵 이후 2000부터 시작된 갈락티코 정책의 일환으로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그는 첫 시즌(02/03시즌) 23골로 레알 마드리드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FIFA 선정 올해의 선수'와 2002년 '유러피언 올해의 선수(발롱드르)'를 동시에 수상하였다. '유러피언 올해의 선수(발롱드르)'는 두번째 수상이고, 'FIFA 선정 올해의 선수'는 최초 3번째 수상이었다. 다음해 지단이 2003년 'FIFA 선정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여 두번째로 개인의 3번째 수상이 되었다.

03/04 시즌은 24골로 프리메라 리가 득점왕을 차지한다. 02/03시즌을 시작으로 세시즌 연속 리그에서만 20골 이상을 득점했다. 그러나 05/06시즌 급격히 불어난 체중 문제와 약간의 부상으로 리그 경기에서 20경기 정도밖에 출전하진 못하였지만 여전한 득점력으로(23경기 14골 리그5위)을 기록하였다. '2006 독일 월드컵' 남미예선 1위에 올려 놓았고, 10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부동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동한다.

2006년 FIFA 월드컵 일본전에서 2골을 넣어 월드컵 통산 13, 14호골을 기록했고, 16강전인 가나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월드컵 통산 15골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는 독일의 전설적인 공격수 게르트 뮐러프랑스쥐스트 퐁텐의 기록을 웃돌며, 게르트 뮐러의 기존 14골 기록을 경신한 현재까지 월드컵 통산 최다골 기록이다.[2] 그러나 아쉽게도 브라질은 준우승팀인 프랑스에 8강전에서 앙리의 결승골로 0대1로 패하여 더 이상의 기록경신은 하지 못했다.

2006 월드컵 이후 소속팀인 레알마드리드에서 급격한 체중 증가와 컨디션의 저조로 많은 출장을 하지 못하였다. 전 시즌부터 불어난 체중으로 훈련을 개을리한다거나 페스트푸드를 즐겨먹어 체중조절에 실패했다는 등의 악의적인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보도는 호나우두를 게으른 선수로 낙인을 찍어버렸고 팬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돼지같이 뚱뚱한 호나우두'라고 해서 '호돈'이라는 별명까지 나오게 되었다.


세리에 A로 유턴

결국 2007년 1월 겨울이적시장에서 AC 밀란으로 이적했는데 14경기(2경기 교체출전)에서 7골에 4어시스트로 레알마드리드에서와는 다르게 득점력을 회복하여 축구황제의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시즌이 끝나고 이탈리아의 신문보도로 레알에 있었던 05/06시즌부터 그를 괴롭혔던 급격한 체중증가의 원인이 밝혀졌는데, 그것은 바로 갑상선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 때문에 급격한 체중의 증가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AC 밀란에서의 득점력 회복은 결국 스페인 최고클럽이라 자부하는 레알마드리드에서 밝혀내지 못했던 호나우두의 급격한 체중증가의 원인을 AC 밀란에서 밝혀내고 어느정도 체중조절에 성공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었다.

성공적인 세리어A로의 복귀였지만, 다음 시즌인 07/08시즌에는 자잘한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 못하다가 2008년 초 리그 경기 중 이전에 2번의 부상을 입었던 오른쪽 무릎이 아닌 반대편인 왼쪽 무릎 십자인대의 파열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수술을 하고 재활로 시간을 보냈지만 이후 소속팀 AC밀란과의 재계약이 불발되어 무적선수가 되었다.

브라질 리그로 복귀

부상이후 1여년의 기나긴 재활을 거쳐 유럽리그에 속한 팀들의 러브콜을 뒤로 하고, 2009년 SC 코린치안스와 계약을 맺게 되면서 브라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팀에 복귀한 이후 팀 선수들중 메디컬 테스트가 가장 최악의 결과로 나와 은퇴할 수 있다는 여론이 생겨 세계 축구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그러나 경기에 복귀한 이후 예전 같은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으나 노련함으로 이를 극복하고 9경기 8골이라는 경이적인 득점력을 보이며 소속팀을 브라질 지역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브라질리그 컵대회에서도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브라질 전국리그에서도 여전한 득점행진을 이어가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본인의 통산 24번째이자 브라질리그 복귀 이후 첫번째인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호나우두는 여전히 마지막으로 브라질대표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호나우두의 전성기 시절이었던 FC 바르셀로나인터 밀란 초기에는 그의 실력에 아무도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또한 수많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골을 넣은 축구황제이다. 또한 그는 수많은 미녀 모델들과 염문을 뿌리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이혼한 첫 번째 부인은 현재,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동료였던 아드리아누의 부인이기도 하다.[3]

주석

  1. 브라질 리그는 지역리그와 전국리그가 각기 운영되에 전국리그 경기 13경기 기록만이 표시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기간에 소속팀에서 지역리그와 전국리그포함 브라질리그에서 32경기 34골, 코파 두 브라질에서 5경기 1골, 남미클럽컵에서 12경기 10골 등 총49경기에 출전하여 45골을 넣었습니다.
  2. 동아닷컴. “축구황제는 살아있다…호나우두 월드컵 통산 15골 '득점왕'. 2008년 8월 8일에 확인함. 
  3. 헤럴드경제. “호나우두 전(前)여인-현(現)여인은 닮은꼴 톱모델?”. 2008년 8월 8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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