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의 시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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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0일 (토) 00:49 판

칼레의 시민백년 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에서 벌여진 사건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를 소재로 하여 로뎅은 '칼레의 시민'이라는 작품을, 독일의 극작가 '게로오크 카이저'는 1917년에 이 소재를 바탕으로 3막 희곡을 선보이며 독일 표현주의 시대의 스퍼트를 끊기도 했다.



사건 경과

1347년, 영국 도버시와 가장 가까운 거리였던 프랑스의 해안도시 칼레는 다른 해안도시들과 마찬 가지로 거리상의 이점 덕분에 집중 공격을 받게된다. 이들은 기근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1년여간 영국군에게 대항하나, 결국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처음에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1년동안 자신들을 껄끄럽게 한 칼레의 모든 시민들을 죽이려 했으나, 칼레측의 여러번의 사절과 측근들의 조언으로 결국 그 말을 취소하게 된다. 대신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들'에게 다른 조건을 내걸게 되었다.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허나 시민들중 6명을 뽑아와라. 그들을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처형하겠다.' 

모든 시민들은 한편으론 기뻤으나 다른 한편으론 6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딱히 뽑기 힘드니 제비뽑기를 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 때 상위 부유층 중인 한 사람인 '외스티슈 드 생 피에르'가 죽음을 자체하고 나서게 된다. 그 뒤로 고위관료, 상류층 등등이 직접 나서서 영국의 요구대로 목의 밧줄을 매고 자루옷을 입고 나오게 된다. 그 '상류층 6명'의 희생으로 모든 '칼레의 시민들'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평가

이 일은 '그들이 상류층으로써 누리던 기득권에 대한 도덕성의 의무', 즉 노빌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를 이행한 주요한 예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