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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嚴璹, 1716년 ~ 1786)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영월 엄씨|영월]](寧越)이며, 우참찬 [[엄집]](嚴緝)의 손자이다. 초명은 엄린(嚴璘). 자는 유문(孺文), 호는 오서(梧西)이다. [[대사헌]](大司憲), [[형조]][[판서]](刑曹判書), [[예조]][[판서]](禮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엄숙'''(嚴璹, 1716년 ~ 1786)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영월 엄씨|영월]](寧越)이며, 우참찬 [[엄집]](嚴緝)의 손자이다. 초명은 엄린(嚴璘). 자는 유문(孺文), 호는 오서(梧西)이다. [[대사헌]](大司憲), [[형조]][[판서]](刑曹判書), [[예조]][[판서]](禮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2022년 2월 26일 (토) 06:49 기준 최신판

엄숙(嚴璹, 1716년 ~ 1786)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우참찬 엄집(嚴緝)의 손자이다. 초명은 엄린(嚴璘). 자는 유문(孺文), 호는 오서(梧西)이다. 대사헌(大司憲), 형조판서(刑曹判書), 예조판서(禮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생애[편집]

1753년(영조 29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75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8년(영조 44년) 대사간(大司諫)이 되고, 1771년 형조참판(刑曹參判)에 올랐다.[1] 이어 대사헌(大司憲)이 되어 1775년에는 재해를 입은 한전(旱田)에 전세(田稅)를 감면할 것을 건의하였다.[2]

1773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서 청나라에서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귀국하여 『연행록(燕行錄)』를 간행하였다.

1783년(정조 7년)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거쳐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올랐다.[3] 1784년 예조판서(禮曹判書)가 되어 호피(虎皮)를 수여 받았다.[4] 이어 강화부 유수를 지내고 1786년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늙어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가족[편집]

  • 증조부 : 엄성구(嚴聖耉)
    • 조부 : 엄집(嚴緝) - 예조판서
      • 부 : 엄경수(嚴慶遂) - 수찬(修撰)
    • 외조부 : 임순원(任舜元) - 형조참의
      • 모 : 풍천 임씨(豊川任氏)
        • 아들 : 엄사면(嚴思勉)
        • 서자 : 엄사욱(嚴思勗)
        • 서자 : 엄사적(嚴思勣)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