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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8세 디 사보이아 공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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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8세 디 사보이아'''({{llang|it|Amedeo VIII di Savoia}}, 1383년 9월 4일 - 1451년 1월 7일) 또는 '''[[대립교황]] 펠릭스 5세'''({{llang|lait|PacificusFelice V}},{{llang|la|Foelix}})는 사보이아의[[사보이아]]의 귀족이자 [[아메데오 7세 디 사보이아|아메데오 7세 백작]]과 [[본 드 베리]]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평화공'''({{llang|it|il Pacifico}})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1391년에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의 어머니는 아메데오 8세가 어렸기에 섭정을 시작하였다. [[샹베리]]에서 태어난 그는 1391년에서 1416년까지 [[사부아]]의 백작이였고 1416년에 [[지기스문트 (신성 로마 제국)|지기스문트]] 황제에 의해 [[사보이아 공작]]으로 승격했다.
 
1418년에 [[사보이아 가문]]의 가장 오래된 가계의 마지막 남자 후계자였던 그의 먼 친척이자 처남인 [[루도비코 디 사보이아아카이아]]가 아메데오 8세를 [[상속|상속자]]로 남기며 사망하면서, 마침내 사보이아 가문의 남성 계보는 하나로 합쳐졌다.
 
아메데오 8세는 그의 영토를 늘렸고 [[백년 전쟁]]을 종료시키기 위해서 여러 차례 협상을 조장하였다. 그의 아내가 사망하자, 그는 공작 지위에서 은퇴하고 제네바 인근 리파유(Ripaille)에서 [[은자]]가 되었다.
 
아메데오 8세는 [[피렌체 공의회|피렌체-페라라-바젤 공의회]]에서 [[교황 에우제니오 4세]]의 상대 교황으로서 바젤에서 '''펠릭스 5세'''로 선출되어, 1439년 11월에서 1449년 4월까지 재임했다.재임했는데, 그는 현재 [[대립교황]]으로 여겨진다. 역사에서 아메데오 8세의 모습은, 후계자의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하여 금전에 관심을 둔 교황으로 그를 기술한 [[교황 비오 2세]]의 주석(Commentaries)에 의하여 손상되어 있다.
 
1449년 [[교황 니콜라오 5세]]가 새로 선출되자 펠릭스 5세는 그의 정통성을 인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