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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는 [[메르키트족]]의 족장 [[토크토아 베키]]의 아들 혹은 동생인 [[쿠투]](1217년 사망)의 부인이었다고도 한다.<ref name="P. Atwood p.544">C.P. Atwood ''Encyclopedia of Mongolia and the Mongol Empire'', p. 544</ref><ref>{{인용|title=Töregene|date=2018|url=https://www.cambridge.org/core/books/women-and-the-making-of-the-mongol-empire/toregene/3AB147D1C4DC5D78B57FD0DDA79E4D18|work=Women and the Making of the Mongol Empire|pages=164–194|editor-last=Broadbridge|editor-first=Anne F.|series=Cambridge Studies in Islamic Civilization|place=Cambridge|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doi=10.1017/9781108347990.007|isbn=978-1-108-44100-1|access-date=2021-02-01}}</ref> [[라시드 알 딘]]은 퇴레게네의 첫 남편을 메르키트의 다이루 우슨이라 했다.<ref>Fazlullah, Rashiduddin (1998). Jami`u't-tawarikh: Compendium of Chronicles (A History of the Mongols). Harvard University. p. 53.</ref> [[토크토아 베키]]의 세 아들 중 한 사람의 아내 였다는 설도 있다. [[1204년]] [[칭기즈 칸]]이 [[메르키트족]]을 기습, 정벌할 때 [[토크토아 베키]]와 쿠투는 도주했고, 퇴레게네는 칭기즈 칸에게 붙잡혀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에게 주어졌다.
 
[[라시드 알 딘]]에 의하면 퇴레게네는 [[오고타이 칸]]의 아내들 중 중요한 4명의 아내의 한 사람이었다 한다. 라시드 알 딘의 집사에서는 퇴레게네는 두번째 부인이라는 설과, 제1부인이라는 설도 같이 기술하였다. [[오고타이 칸]]의 두번째 혹은 6번째 부인이었지만 용감하고 지적이며, 유능하고 영리한 인물이라 오고타이의 다른 비빈들을 제치고 오고타이의 총애를 받아, [[귀위크]], 쿠투쿠, 호르차르, 카라카르 등 아들 다섯을 낳아 주었다. [[라시드 알 딘]]은 이들이 퇴레게네의 소생이라 하며, [[원사]]에는 [[구유크]]만이 그녀의 소생이라 한다.
 
일설에는 [[코단]]도 퇴레게네의 소생이라는 설이 있다. [[오고타이]]가 칸이 된 뒤 정확한 책봉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보락친 카툰]] 대신 정궁 황후로 승격되었다. 퇴레게네는 오고타이의 정책에도 관여, 영향을 행사하려 했고 [[이슬람]] 상인 출신 [[압둘 라흐만]]을 추천하기도 했다. 오고타이 칸은 그녀의 건의를 받아들여, 압둘 라흐만을 만나 면담한 뒤 [[중국]] 북부지역의 세무 관리자로 임명하였다. 퇴레게네는 무슬림 상인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이들을 점령지의 세무 관리자, 총독 등으로 여러명 발탁, 임명하였다.
 
그는 영리하고 지능이 뛰어난 인물이라 오고타이 칸의 다른 비빈들을 가리고제치고, 자신의 영향력을 빠르게 늘려나갔다. [[오고타이]]의 치세 후반 오고타이는 [[갈색]] [[포도주]]에 중독되면서, 퇴레게네는 몽골 제국의 정치사무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일설에는 퇴레게네가 오고타이 치세 말년에는 국가원수 역할이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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