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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레게네 카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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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레게네는 아들 구유크를 칸의 적임자로 지적했다. 그러나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 [[바투]]와, [[툴루이]]의 아들들은 [[구유크]]의 즉위를 반대했고, [[차가타이]]의 자손들만 구유크를 지지했다.
 
==== 섭정으로오고타이 통치측근 제거 ====
퇴레게네는 섭정으로서 완전한 권력을 쥐었으며, [[야율초재]], [[친친카이]], [[마흐무드 아라와치]] 등의 재상들을 해고했으며, 오고타이가 임명한 관료들을 해고하고 그녀 자신의 인물로 대체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무슬림]] 출신 상인 [[압둘 라흐만]], [[타지크]] 또는 [[페르시아]] 여인으로 중동 원정에서 포로로 온 여성 [[시아파]] [[무슬림]] 파티마였다. 퇴레게네는 자신의 측근 인물들을 통해 귀위크가 칸의 적임자라는 여론을 조성하였다.
 
해고된 오고타이의 측근들이 퇴레게네의 섭정에 반대하고, 시레문 대신 귀위크를 추대하려는 것에 반발하자 퇴레게네는 이들 중 일부를 체포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오고타이의 수석비서 [[친친카이]], 트란스옥시아나 총독 [[마흐무드 아라와치]]를 체포하려 했고, 친친카이와 아라와치는 [[간수 성]]의 서량막부 [[코단]]에게로 도망쳤다. 코단은 이들을 넘겨달라는 퇴레게네의 요구를 거절했다. 투르키스탄의 총독으로 있던 [[마우스드베그]]는 [[킵차크 한국]]의 [[바투]]에게로 도망치려고 [[러시아]]를 경유해 도주했다. 중국 북부의 행정 책임자 [[야율초재]] 역시 해임되었다. 퇴레게네는 오고타이의 측근으로, 한때 [[차가타이]]에게 저항했던 [[위구르]] 지역 다루가치인 코구스를 [[이란]]에서 체포, [[차가타이]]의 과부들에게 넘겨주었다. 코구스는 차가타이 사후 그의 과부들을 무시했는데, 퇴레게네 카툰은 코구즈를 입에 돌이 물리게 하는 형벌을 가해 죽였다.
 
==== 섭정 통치 =====
오고타이 사후 그녀는 그녀의 세력이 확고해질 때까지 [[쿠릴타이]]를 여는 것을 미루었다. 퇴레게네는 오고타이가 지명한 후계자 시레문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계자에서 배제하고, 자신의 아들 [[귀위크]]가 대칸 적임자로 정했다. 퇴레게네는 1242년 봄부터 쿠릴타이 소집을 지시했다. [[킵차크 한국]]의 칸 [[바투]]는 [[귀위크]]의 즉위를 반대, 퇴레게네의 [[쿠릴타이]] 소집 명령에 응하지 않고 번번히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