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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레게네 카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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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는 [[코단]]도 퇴레게네의 소생이라는 설이 있다. [[오고타이]]가 칸이 된 뒤 정확한 책봉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보락친 카툰]] 대신 정궁 황후로 승격되었다. 퇴레게네는 오고타이의 정책에도 관여, 영향을 행사하려 했고 [[이슬람]] 상인 출신 [[압둘 라흐만]]을 추천하기도 했다. 오고타이 칸은 그녀의 건의를 받아들여, 압둘 라흐만을 만나 면담한 뒤 중국 북부지역의 세무 관리자로 임명하였다. 퇴레게네는 무슬림 상인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이들을 점령지의 세무 관리자, 총독 등으로 여러명 발탁, 임명하였다.
 
그는 영리하고 지능이 뛰어난 인물이라 오고타이 칸의 다른 비빈들을 가리고, 자신의 영향력을 빠르게 늘려나갔다. [[오고타이]]의 치세 후반 오고타이는 [[갈색]] [[포도주]]에 중독되면서, 퇴레게네는 몽골 제국의 정치사무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일설에는 퇴레게네가 오고타이 치세 말년에는 국가원수 역할이었다고도 한다.
 
=== 귀위크 추대 운동 ===
=== 몽골 제국의 섭정 ===
==== 오고타이 칸 사망 직후 ====
[[1241년]] [[12월 11일]] [[오고타이 칸]]이 사냥 도중 술병으로 갑자기 죽자 퇴레게네는 시레문이 아직 유년이라는 이유로, 그의 제위 계승을 반대하였다. 차기오고타이의 칸이사후 옹립될섭정 때가지 몽골의 통치자가 누가 되느냐가 곧 쟁점이 되었고,자리는 [[차가타이모게 카툰]](木哥)이 퇴레게네를 지지했다지명되었다. 퇴레게네는그러나 [[차가타이]]의 지원과,칸과 자신의그의 아들들의 지원으로, [[몽골섭정 제국]]의자리는 섭정이 되어퇴레게네에게 임조칭제오게 하였다되었다.<ref>The 오고타이의Journey 일부of 측근들은William 퇴레게네에게of 퇴레게네는Rubruck 국가를the 책임지고Eastern 있는parts 인물이며,of 시레문을the 지지하고World, 추대할1253-55, 것을 건의하였다p.62</ref> 퇴레게네는 시레문이부유크 어리다는카툰(대 이유로카툰, 이들의Büyük 요구를Hatun)이라는 거절했다.호칭으로 섭정직을 수행했다.
 
차기 칸이 옹립될 때가지 몽골의 통치자가 누가 되느냐가 곧 쟁점이 되었고, [[차가타이]]는 퇴레게네를 지지했다. 퇴레게네는 [[차가타이]]의 지원과, 자신의 아들들의 지원으로 [[몽골 제국]]의 섭정이 되어 임조칭제 하였다. 오고타이의 일부 측근들은 퇴레게네에게 퇴레게네는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며, 시레문을 지지하고 추대할 것을 건의하였다. 퇴레게네는 시레문이 어리다는 이유로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퇴레게네는 바로 [[몽골 제국]]의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차가타이는 퇴레게네의 섭정을 지지하였으나, 많은 오고타이 칸의 친척, 전직 관리 및 기타 [[칭기즈칸 왕조]]의 귀족들, 몽골 부족장들은 당황해하거나 분노하였다. 오고타이 칸으로부터 후계자로 지정된 시레문의 정당한 지위를, 퇴리게네가 임의로 결정, 처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영향력 있는 일부 몽골 부족장, 왕공족들은 차기 대칸을 추대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보고 퇴레게네에게 [[쿠릴타이]]를 소집하라고 요구했다.
 
==== 섭정으로 통치 ====
퇴레게네는 섭정으로서 완전한 권력을 쥐었으며, [[야율초재]], [[친친카이]], [[마흐무드 아라와치]] 등의 재상들을 해고했으며, 오고타이가 임명한 관료들을 해고하고 그녀 자신의 인물로 대체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무슬림]] 출신 상인 [[압둘 라흐만]], [[타지크]] 또는 [[페르시아]] 여인으로 중동 원정에서 포로로 온 여성 [[시아파]] [[무슬림]] 파티마였다. 퇴레게네는 자신의 측근 인물들을 통해 귀위크가 칸의 적임자라는 여론을 조성하였다.
 
몽골은 일부다처제를 시행하였는데 [[오고타이 칸]]이 선호했던 [[:zh:闊出|코추]]는 다른 아내를 통해 얻었다. 그는 코추의 아들 [[:zh:失烈门|시레문]]으로 자신을 계승하게 지명하였다. 퇴레게네는 반대하고 [[귀위크]]를 선택할 것을 설득하였으나 오고타이에게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책략으로 야망을 달성하였다.
 
해고된 오고타이의 측근들이 퇴레게네의 섭정에 반대하고, 시레문 대신 귀위크를 추대하려는 것에 반발하자 퇴레게네는 이들 중 일부를 체포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오고타이의 수석비서 [[친친카이]], 트란스옥시아나 총독 [[마흐무드 아라와치]]를 체포하려 했고, 친친카이와 아라와치는 [[간수 성]]의 서량막부 [[코단]]에게로 도망쳤다. 코단은 이들을 넘겨달라는 퇴레게네의 요구를 거절했다. 투르키스탄의 총독으로 있던 [[마우스드베그]]는 [[킵차크 한국]]의 [[바투]]에게로 도망치려고 [[러시아]]를 경유해 도주했다. 중국 북부의 행정 책임자 [[야율초재]] 역시 해임되었다. 퇴레게네는 오고타이의 측근으로, 한때 [[차가타이]]에게 저항했던 [[위구르]] 지역 다루가치인 코구스를 [[이란]]에서 체포, [[차가타이]]의 과부들에게 넘겨주었다. 코구스는 차가타이 사후 그의 과부들을 무시했는데, 퇴레게네 카툰은 코구즈를 입에 돌이 물리게 하는 형벌을 가해 죽였다.
 
오고타이 사후 그녀는 그녀의 세력이 확고해질 때까지 [[쿠릴타이]]를 여는 것을 미루었다. 퇴레게네는 오고타이가 지명한 후계자 시레문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계자에서 배제하고, 자신의 아들 [[귀위크]]가 대칸 적임자로 정했다. 퇴레게네는 1242년 봄부터 쿠릴타이 소집을 지시했다. [[킵차크 한국]]의 칸 [[바투]]는 [[귀위크]]의 즉위를 반대, 퇴레게네의 [[쿠릴타이]] 소집 명령에 응하지 않고 번번히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