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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레게네 카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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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년]] 퇴레게네는 몽골 장군 차칸, [[금나라]] 출신 귀순장교 장유(張柔) 등에게 지시, 군사를 딸려보내 [[남송]]의 회서(淮西), 양주 등을 공략하게 했다.
 
여러 번의 쿠릴타이 소집 끝에 [[1246년]] 여름 [[카라코룸]]에서 열린 [[쿠릴타이]]에서 [[귀위크]]를 칸으로 정했다. [[1246년]] [[8월 24일]] 아들 [[귀위크]]를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 옹립하였다. 이후 퇴레게네는 섭정 자격으로 다시 정치에 관여했다. 퇴레게네는 마우스트베그에게 [[트란스옥시아나]]의 다루가치에 임명해, 트란스옥시아나 내의 성지와 도시를 관리하게 했다. 또한 압둘 라흐만을 [[중국]] 화북지역의 대리인으로 임명하여 보냈다.
 
[[1246년]] [[블라디미르 대공국]]과 [[수즈달 공국]]의 대공 [[야로슬라프 2세 블라디미로비치]]가 퇴레게네 카툰을 방문, 같이 식사하고 돌아가다가, 의문의 중독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귀위크를 칸으로 추대했으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퇴레게네와 아들 [[귀위크]] 간의 관계는 무너졌다. 귀위크의 동생 [[코단]]은 [[파티마]]가 자신의 건강을 악화시키려고 [[주술]]을 사용한다고 비난했다. 귀위크는 퇴레게네에게 파티마의 사형 집행을 위해 넘겨줄 것을 요구하였고, 퇴레게네는 아들 [[귀위크]]의 요구를 거절, 자살하겠다고 위협하였다.
 
퇴레게네는 권력을 그녀의 아들 [[귀위크 칸]]에게 [[1246년]] [[10월]]에 건네고, 남편 [[오고타이]]의 영지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에밀]] 지역으로 은퇴했으며, 얼마 뒤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죽었다. 그의 귀위크 추대 운동은 황금 씨족 내부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