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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레게네 카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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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생애 초기 ===
정확한 생일과 친정 가계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퇴레게네는 외모가 아름다웠다 한다. 퇴레게네는 처음에는 [[칭기즈 칸]]의 두 번째 황후가 된 크란 하툰의 아버지 우하즈 [[메르키트족]]의 족장 다이루 우슨의 비였다가 칭기즈 칸의 메르키트 토벌시에 포로가 되어 [[오고타이 칸]]의 부인이 되었다. 일설에는 [[메르키트족]]의 족장 [[토크토아 베키]]의 아들 쿠투의 부인이었다고도 한다. 오고타이 칸의 6번째 부인이었지만 그의 총애를 받아, 오고타이의 아들들 다섯을 낳아 주었다.
 
오고타이 칸의 6번째 부인이었지만 유능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라 오고타이의 총애를 받아, 아들 다섯을 낳아 주었다. [[오고타이]]가 칸이 된 뒤 정확한 책봉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보락친 카툰]] 대신 정궁 황후로 승격되었다.
 
=== 귀위크 추대 운동 ===
 
=== 생애 후반 ===
[[1245년]] 퇴레게네는 몽골 장군 차칸, [[금나라]] 출신 귀순장교 장유(張柔) 등에게 지시, 군사를 딸려보내 [[남송]]의 회서(淮西), 양주 등을 공략하게 했다.
 
여러 번의 쿠릴타이 소집 끝에 [[1246년]] [[8월 24일]] 아들 [[귀위크]]를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 옹립하였다.
 
퇴레게네는 권력을 그녀의 아들 [[귀위크 칸]]에게 [[1246년]]에 건네고 2개월 만에 죽었다. 귀위크와 동유럽 원정에서 반목을 일으킨 [[바투]], 그밖에 [[툴루이]] 가문의 [[몽케]] 등은 귀위크의 즉위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 제국의 권력 투쟁은 증폭되어갔다. 후일 [[몽골 제국]] 분열의 한가지 요인이 되었다. [[쿠빌라이 칸]]이 태묘를 설치하고 추서한 중국식 [[시호]]는 '''소자황후'''(昭慈皇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