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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 (후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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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에는 [[대사공]]·[[대사도]]·[[대사마]]의 삼공이 있었으며, 또 [[집금오]]·[[대홍려]]의 관직이 있었는데 이는 전한·신의 [[구경]]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따라서 성가에서는 전한·신과 마찬가지로 삼공구경의 관직 체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승상]]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성가에는 제후왕과 열후 등의 봉작도 있었다. 24년, 공도현의 비한족 수장 [[임귀]]가 신나라의 [[월수군|집수]][[태수|대윤]] 죽이고 성가에 귀순하자 임귀를 공곡왕(邛穀王)에 봉한 것이 첫 제후왕 봉건 사례다. 그리고 29년 형주의 군웅 [[전융]]과 [[연잠]]이 망명해 오자 각각 익강왕(翼江王)과 여령왕(汝寧王)에 봉했다. 31년 농서의 [[외효]]가 [[후한]]과의 외교를 끊고 성가와 손잡자 외효를 삭녕왕(朔寧王)에 봉하고 외효가 죽자 외효의 아들 외순(隗純)이 삭녕왕이 되었다. 또 자기의 두 아들을 왕으로 삼고 [[건위군]]과 [[광한군]]의 몇 현을 식읍으로 주었다. 또 사람을 회유하거나 등용하기 위해 공후(公侯) 등의 작위를 제안하기도 했다.
 
== 화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