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 장씨 (직제학계):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bullet
태그: 되돌려진 기여
21번째 줄: 21번째 줄:
* 판윤공파 : 분파조는 6세 장수량이며 판윤공파로도 불린다.
* 판윤공파 : 분파조는 6세 장수량이며 판윤공파로도 불린다.


== 대표 인물 ==
== 인물 ==
조선조 과거 급제 31명 (문과 7명, 진사시 7명, 생원시 17명) 을 배출하였다.<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lst/lstView.aks?lstId=LST_186_500_0434&curSetPos=3&curSPos=1&category=dirSer&isEQ=true&kristalSearchArea=B 인동장씨 (직제학계) -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장말손(張末孫) : 조선조 승문원박사·한성참군·사헌부감찰·함길도평사
* 장말손(張末孫) : 조선조 승문원박사·한성참군·사헌부감찰·함길도평사
* 장맹우(張孟羽) : 조선조 황해도도사
* 장맹우(張孟羽) : 조선조 황해도도사

2020년 11월 13일 (금) 11:05 판

인동 장씨 (仁同 張氏) (직제학계)
관향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시조장계(張桂)
주요 인물장말손, 장맹우, 장응선, 장수희, 장준남, 장진, 장후상, 장위항, 장화식, 장충식, 장익환, 장사훈, 장윤석, 장준규, 장혜진

본관

인동 장씨의 본관인 인동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신라 시대 이래 인동현(별호 옥산(玉山))이었으나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인동도호부를 거쳐 현재의 구미시 인동동으로 개편되었다.

역사

시조 장계는 고려 충렬왕 31년 국학진사 권지도평의녹사에 등과하여 진현전직제학을 거쳐 예문관대제학에 이르고 옥산군에 봉해졌으며 인동현의 남쪽 발영전에 터를 잡아 본관을 인동으로 하였다. 직제학공 이래 후손들이 발영전에 세거하면서 가문의 기틀을 다졌으며 조선초에 5개 파로 분파되어 인동을 떠나 임지인 경북 영주, 예천, 문경과 충북 단양으로 옮겨 살았다.

분파

  • 동정공파 : 분파조는 7세 장선손이며 승훈랑으로 의정부 첨서와 녹사를 역임했다.
  • 주부공파 : 분파조는 7세 장경손이며 사재감 주부를 역임했다.
  • 연복군파 : 분파조는 7세 장말손이며 함길도 병마절제사, 내첨시첨정, 해주목사 등울 역임했으며 안양공파로도 불린다.
  • 송암공파 : 분파조는 10세 장구주이며 강원도 영월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송암공파, 영월파, 군수공파로도 불린다.
  • 판관공파 : 분파조는 7세 장의손이며 판관을 역임했다.
  • 판윤공파 : 분파조는 6세 장수량이며 판윤공파로도 불린다.

인물

조선조 과거 급제 31명 (문과 7명, 진사시 7명, 생원시 17명) 을 배출하였다.[1]

  • 장말손(張末孫)  : 조선조 승문원박사·한성참군·사헌부감찰·함길도평사
  • 장맹우(張孟羽)  : 조선조 황해도도사
  • 장응선(張應璇)  : 조선조 홍문관 검열·풍기 군수·사재감정
  • 장수희(張壽禧)  : 조선조 어모장군·형조참의
  • 장준남(張俊南)  : 조선조 박사·제독·사헌부 감찰
  • 장진(張瑱)  : 조선조 성균관 전적·용담 현령·예조 정랑·진주 목사·사헌부 장령
  • 장후상(張后相)  : 조선조 성균관 전적·사헌부 감찰·성균관 사예·예조 좌랑양산 군수
  • 장위항(張緯恒)  : 조선조 성균관 전적·사헌부 감찰·자인 현감
  • 장화식(張華植)  : 대한제국 한성부판윤·육군참장·군부참모국장·군부군무국장
  • 장충식(張忠植)  : 대한제국 항일의사, 건국훈장 애족장
  • 장익환(張益煥)  : 대한제국 항일의사, 건국훈장 애족장
  • 장사훈(張師勛)  : 대한민국 문학박사, 서울대교수
  • 장윤석(張倫碩)  : 대한민국 법조인, 제17·18·19대 국회의원
  • 장준규(張駿圭)  : 대한민국 제46대 육군참모총장
  • 장미화  : 대한민국 희극인
  • 장혜진  : 대한민국 양궁 선수, 2016년 리우올림픽 2관왕
  • 장승조  : 대한민국 배우, 본명 장현덕

종가·유적

종가는 경상북도 영주시 화기리에 위치하고 있다. 시도 민속자료 98호 인동장씨 연복군 종택 장말손의 후손 장언상이 1500년대 후반 건립한것으로 약 50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는 종택이다.[2] 보물 501호 장계 홍패 및 장말손 백패·홍패는 인동 장씨의 조상인 장계와 그의 후손인 장말손에게 과거에 급제한 것을 알리는 합격증서로 총 3점이며, 인동 장씨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다. 장계에게 내린 홍패는 고려 충렬왕 31년(1305)에 내린 것으로 서체는 행서체이다. 장말손에게 내린 백패는 조선 단종 1년(1453)에 진사시험 2등 제7인에 합격한 증서이고, 홍패는 세조 5년(1459)에 문과의 병과 제3급에 합격한 증서이다.[3] 보물 502호 장말손초상은 조선시대 문신인 장말손을 그린 초상화로, 크기는 가로 107㎝, 세로 171㎝이다.[4] 보물 604호 장말손 적개공신교서은 세조 13년(1467)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수훈을 세운 45인의 공신들에게 내린 교서로서, 그 가운데 장말손은 2등공신으로 선정되어 적개공신의 교서를 받았다.[5] 보물 881호 조선 세조 때의 명신인 장말손(1431∼1486)의 것으로 패도와 적개공신회맹록이다. 패도는 세조 12년(1466)에 함경도 회령에서 오랑캐를 물리친 공으로 왕으로부터 옥적(옥피리) 1정과 은배(은잔) 1쌍과 함께 하사받은 것이다. 적개공신회맹록은 세조 13년(1447)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에 임명되어 예종 원년(1469) 3월에 내린 회맹록이다.[6] 보물 1005호 조선 세조부터 성종 때까지의 문신인 장말손(1431∼1486)의 종손가에 보관되어 전해오는 고문서들로 5종 18점이다. 이들 고문서에는 고려 우왕 11년(1385) 장말손의 증조인 장전의 소지를 비롯하여 장전의 논밭·노비소유관계 문서와 도망간 노비를 잡아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 문서가 있다.[7]

집성촌

각주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