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 (오호 십육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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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0일 (화) 18:22 판

서연(384년 - 394년)은 선비족(鮮卑族)의 일원이던 모용홍(慕容泓)과 모용충(慕容沖) 형제에 의해 건국된 나라이다. 국호는 (燕)이며, 동시대의 다른 연과 구분하기 위해 서연이라 부른다. 서연은 역사가 짧고 영향력이 적어 16국으로 꼽히지 않는 국가이다.

역사

370년전연(前燕)이 멸망한 후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은 선비족 모용부를 대거 관중(關中)으로 이주시켰다. 이때 관중으로 이주한 모용홍·모용충 형제는 부견이 비수 대전(淝水大戰)에서 패배한 후에 관중에서 선비족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도독섬서제군사·대장군·옹주목·제북왕(都督陝西諸軍事大将軍雍州牧濟北王)을 자칭하였다.(384년) 모용홍은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 공격해 온 요장(姚萇)을 격파하고 전진의 수도 장안(長安)을 함락하기 위해 서쪽으로 진군하였다. 전진군을 격파하고 장안에 입성한 모용홍은 연흥(燕興)으로 개원하였다. 그러나 3개월만에 불만을 품은 부하 고개(高蓋) 등에게 살해당하고 동생 모용충이 옹립되었다.

모용충은 장안을 근거로 국가를 발전시키려 하였으나 선비족의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다른 무장들은 이에 반발하여 386년 2월 모용충이 피살되고 단수(段随)가 옹립되었다. 단수는 40만 명의 선비족을 이끌고 장안을 떠났으나 곧 정변이 일어나 살해되었으며, 뒤를 이은 모용의(慕容顗), 모용요(慕容瑤), 모용충(慕容忠) 등도 계속된 정변으로 살해되었다. 386년 6월 모용충(慕容忠)이 살해되자 모용영(慕容永)은 서연의 무리를 이끌고 후연(後燕)의 모용수(慕容垂)에게 항복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이르러 모용영은 장자(長子)에서 황위에 올라 다시 서연을 부활시켰다. 모용영의 서연은 병주(幷州) 남부 일대를 지배하였으나 세력을 크게 떨치지는 못하였으며, 394년에 후연에 의해 멸망하였다.

역대 군주

후연 군주와 연호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1대 - 제북왕
(濟北王)
모용홍(慕容泓) 연흥(燕興) 384년 384년
2대 - - 모용충(慕容沖) 경시(更始) 385년 ~ 386년 384년 ~ 386년
3대 - 단수(段随) 창평(昌平) 386년 386년
4대 - 모용의(慕容顗) 건명(建明) 386년 386년
5대 - 모용요(慕容瑤) 건평(建平) 386년 386년
6대 - 모용충(慕容忠) 건무(建武) 386년 386년
7대 - 모용영(慕容永) 중흥(中興) 386년 ~ 394년 386년 ~ 3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