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년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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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5월 5일]] 한국담배인삼공사 (현재 KT&G) 출시 담배제품 88라이트 담배갑에 개구리소년 찾습니다 내용 기재된 담배갑 1천만갑 생산
* [[1991년]] [[5월 5일]] 한국담배인삼공사 (현재 KT&G) 출시 담배제품 88라이트 담배갑에 개구리소년 찾습니다 내용 기재된 담배갑 1천만갑 생산
* 개구리소년 찾는 사진 기재된 쥐포(현재 사라진 회사라 정확한 회사 사명 불분명함) 생산
* 개구리소년 찾는 사진 기재된 쥐포(현재 사라진 회사라 정확한 회사 사명 불분명함) 생산
* [[1991년]] 대한생명 (현재 한화생명)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 고객 책자 DM에 개구리소년 찾기 사진 기재된 책자 발매
* [[1991년]] 대한생명 (현재 한화생명)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 고객 책자 DM에 개구리소년 찾기 사진 기재된 책자 발매
* [[1991년]] 주택은행 (현재 KB 국민은행)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
* [[1991년]] 주택은행 (현재 KB 국민은행)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
* [[1991년]] KB 국민카드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 실시, 카드대금 명세서 뒷면에 개구리소년 찾기 사진 기재
* [[1991년]] KB 국민카드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 실시, 카드대금 명세서 뒷면에 개구리소년 찾기 사진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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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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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91년 살인 사건]]

2020년 5월 22일 (금) 01:24 판

개구리 소년 사건
날짜1991년 3월 26일
위치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달서구
좌표북위 35° 51′ 52″ 동경 128° 31′ 15″ / 북위 35.864341° 동경 128.520702°  / 35.864341; 128.520702
원인실종
최초 보고자오우근
참여자미상
결과2002년 9월 26일 와룡산 세방골 중턱에서 실종자의 유골 발견
사상자
5명 사망
사망자김종식, 박찬인, 김영규, 조호연, 우철원
조사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 만료

개구리 소년 사건1991년 3월 26일대구직할시 달서구에 살던 다섯 명의 초등학교 학생이 도룡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된 사건을 말한다.[1]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과 함께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이다.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는 말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왜곡된 것이 초기에 널리 퍼지면서 "개구리 소년"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사건 발생일인 1991년 3월 26일5·16 군사 정변 이후 중단된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하여 기초의회 의원을 뽑는 시·군·구의회 의원 선거일로 임시 공휴일이었다.

5명의 초등학교학생이 그것도 같은 날 동시에 실종된 이 사건은 당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고, 사건 발생 2년 후인 1993년에는 KBS 1TV사건 25시SBS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심층적으로 방영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공중전화 카드, 엽서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어린이 만화 비디오테이프 등까지 대대적으로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남녀노소 대부분이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할 정도였다.

당시 정부는 경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전국적으로 수배 전단이 배포되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미제 사건으로 묻히는 듯하다가 사건 발생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26일에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쪽의 와룡산 중턱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어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끝내 아이들의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2006년 3월 25일 24시에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면서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공소시효 만료 이후에도 범인을 찾기 위하여 7명의 형사들이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담당하는 대구 성서 경찰서에서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다.

사건의 발단

대구성서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던 동네 아이 다섯 명은 1991년 기초의원선거로 인한 임시 공휴일이었던 1991년 3월 26일에 대구직할시(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와룡산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갔다. 아이들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으며, 부모들은 경찰서에 실종 신고했다.

사망 아동 명단

다섯 아이들은 다음과 같다.(나이는 1991년 실종 당시의 나이이다.)[2][3]

  • 우철원(13세, 6학년, 1979년생) 보호자 : 우종우, 장명자
  • 조호연(12세, 5학년, 1980년생) 보호자 : 조남환, 김순녀
  • 김영규(11세, 4학년, 1981년생) 보호자 : 김현도, 최경희
  • 박찬인(10세, 3학년, 1982년생) 보호자 : 박건서, 김임자
  • 김종식(9세, 3학년, 1983년생) 보호자 : 김철규, 허도선

생존 아동 명단

생존 아이는 다음과 같다.(나이는 2020년 당시의 나이이다.)

  • 김태룡 (39세, 1982년생)

(그는 아침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밥을 먹고 가겠다고 했고, 결국 유일무이한 생존자가 되어 버렸다.) 다만 개구리소년 관련 영상 프로그램에서 그의 근황은 알 수 없다.

사건에 대한 논란

유골 발견

2002년 9월 26일와룡산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시민이 유골을 발견하였고, 유골을 감정한 결과 소년들은 타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4]

하지만 범인은 끝내 찾지 못하고 2006년 3월 25일자로 공소 시효가 만료되어 수사가 종결되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전국민의 관심을 끌었으나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성한 소문을 불러일으켰다. 1992년 11월에는 돌아오라 개구리소년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리고 2003년에 가수 MC 스나이퍼는 〈개구리소년〉이라는 노래를 내기도 했다. 2005년에는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라는 실화소설이 출간되기도 했다.

총격에 의한 타살설

국민일보에서 한 아무개씨(43·대구 달서구)가 2002년 9월 28일 대구경찰청에 2002년 7월에 30∼35세의 남자 1명이 구두를 닦으면서, "사격 중 5명의 소년이 갑자기 나타나 2명이 에 맞아 이중 1명이 숨지고 1명은 다쳤으며,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5명 모두를 다른 곳으로 옮겨 목을 조르고 총을 난사해 죽인 뒤 매장했다."라는 말을 했다"고 제보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1999년 상반기 중 국내 모 사설 주간지에서 개구리 소년이 실종될 당시 인근 군부대 사격장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하여 암매장되었을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도하였다. 일요서울류 주간지[5]

미흡한 수사

헛소문들

1992년 8월경찰에서는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를 유괴해서 죽였다는 헛소문을 믿고 한센병 환자 정착촌을 강압적으로 수사하여, 한센병 환자들의 항의를 받았으며[6], 1996년 1월에는 김종식 군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죽여 에 묻었다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프로파일러인 김가원 씨의 고집센 주장이 있다면서[7] 김종식 군 아버지의 집 마당화장실, 구들장을 임의로 발굴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성급함

아이들의 유골을 발굴할 때도 유골을 분석하여 사인을 밝혀낼 법의학자의 도움 없이 성급하게 작업을 진행하여 현장을 훼손[8]하는 등 실종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놓쳤다는 비난도 받았었다.

특히 2002년유골이 발견되었을 당시 유골이 뒤엉켜있었고, 옷을 얼굴에 덮어놓은 상태였던 것에 대해 경찰은 5명의 아이들이 와룡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조난당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으로 온몸을 덮었을 것이라고 성급한 추측을 하였고, 심지어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피해자 부모들과 와룡산 기슭에 거주하는 할머니는 "와룡산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야산이기 때문에 불빛이 다 보이므로 절대 조난당할 일이 없다."라고 항의하였고, 실제 1993년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당시 성서경찰서 주영철(가명) 경감도 "와룡산은 높은 산이 아니고 엄밀하게 말하면 야산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조난당할 가능성은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영구 미해결 사건

이 사건은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이형호 군 유괴 살해사건과 함께 증거부족으로 영구 미해결 사건이 된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지만, 2019년 9월 18일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은 진범으로 특정된 용의자가 나와 조사중이다.

대중문화 · 미디어

유골 발견 이전 (1991년 3월 ~ 2002년 9월 24일)
  • 1991년 ~ 1992년 광고 LG 생활건강 슈퍼타이[9] 제품에 대구 개구리소년 찾기 광고, 슈퍼타이 세제 뒷면에 개구리소년 찾기 사진 기재된 제품 생산
  • 1991년 5월 MBC 여론광장 개구리소년 찾기 방송
  • 한국통신(현재 KT) 공중전화 카드 뒷면 개구리소년 찾습니다 내용 기재된 카드 발급
  • 오리온 초코파이 뒷면 개구리소년찾기 제품 출시
  • 1991년 서진 꿈돌이 만화 비디오
  • 1991년 5월 5일 한국담배인삼공사 (현재 KT&G) 출시 담배제품 88라이트 담배갑에 개구리소년 찾습니다 내용 기재된 담배갑 1천만갑 생산
  • 개구리소년 찾는 사진 기재된 쥐포(현재 사라진 회사라 정확한 회사 사명 불분명함) 생산
  • 1991년 대한생명 (현재 한화생명)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 고객 책자 DM에 개구리소년 찾기 사진 기재된 책자 발매
  • 1991년 주택은행 (현재 KB 국민은행)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
  • 1991년 KB 국민카드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 실시, 카드대금 명세서 뒷면에 개구리소년 찾기 사진 기재
  • 1991년 한진그룹 개구리소년 찾기 전단 배포 및 전국 영업 운송망 동원해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 전개
  • 1991년 아모레 퍼시픽 미용전문사보 향장에 대구개구리소년 찾기운동 실시 보상금 1천만원 회사에서 기탁
  • 1991년 KEB 하나은행 개구리소년 찾기 전단 배포
  • 1991년 11월 3일 KBS1가요무대》 - 개구리소년 찾는 사연 쇼
  • 1992년 영화돌아오라 개구리 소년
  • 1992년 1월 동아생명(현재 KDB생명) 직원용 사보 동아생명, 고객서비스 책자 파랑새에 개구리소년 찾기 사보 매달 개제 발매
  • 1992년 2월 동원산업 동원 양반김에 대구 개구리소년 찾기 사진 개제된 제품 생산 출시
  • 1992년 3월 대구시 교육청 에서 개구리소년 찾기 전단 22만부 제작 배포
  • 1992년 5월 14일 주간조선 개구리소년 납북설 보도된 주간조선 발매
  • 1993년 3월 21일 SBS그것이 알고싶다》 - 실종, 개구리 소년
  • 1993년 3월 28일 SBS그것이 알고싶다》 - 대구 개구리 소년
  • 1993년 4월 23일 SBS AM 트롯대행진
  • 1993년 6월 26일 KBS2사건 25시》 - 공개추적, 개구리 소년 실종 853일
  • 1993년 9월 23일 개구리소년 5명 부모들 아이들 찾기 포기하고 생업 복귀한다고 선언
유골 발견 이후 (2002년 9월 26일 이후)

같이 보기

각주

  1. "아이들 살해된 이유라도 알고 싶다" :: 네이버 뉴스
  2. 우리가 모방한 日法 ‘공소시효 15년’ :: 네이버 뉴스
  3. "탄두 부식심해 91년 이전 사용 추정" :: 네이버 뉴스
  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248594 '개구리소년' 허위제보 잇따라 경찰 곤혹]
  5. "개구리 소년 총기살해" 제보2002-09-30《국민일보》
  6. 브레이크 뉴스 기사[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7. 개구리소년 사건 개요
  8. “한국일보기사,대구 '개구리소년' 영구미제 되나?”. 2011년 1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6월 25일에 확인함. 
  9. 당시에 생산 · 판매된 슈퍼타이 제품 뒷면에 실종 어린이들의 사진이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