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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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황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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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이름 = 黃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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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黃玹, [[1855년]] [[음력 12월 11일]](양력 [[1856년]] [[1월 18일]]) ~ [[1910년]] [[9월 7일]])은 [[대한제국]] [[조선]] 왕조 말기의 선비로 [[시 (문학)|시인]], [[작가|문장가]], [[역사학|역사가]], 우국지사이며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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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장수 황씨|장수]](長水)이고 자는 운경(雲卿)이며 호는 매천(梅泉)이다. 사학자 [[황의돈 (사학자)|황의돈]](黃義敦)은 그의 7촌 재종질이다. 그는 [[전라도]] [[광양시|광양]] |
본관은 [[장수 황씨|장수]](長水)이고 자는 운경(雲卿)이며 호는 매천(梅泉)이다. 사학자 [[황의돈 (사학자)|황의돈]](黃義敦)은 그의 7촌 재종질이다. 그는 [[전라도]] [[광양시|광양]]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함평군|전라도 함평]]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구례군|전라도 구례]]에서 성장했다. [[1892년]] 봄 [[운현궁]]에서 화약이 터지고 여러 건물에 장치된 화약이 발각된 사건이 발생했다. 황현은 [[명성황후]]를 배후로 지목했다. 그에 의하면 이 사건은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 일가를 폭살하기 위해 벌였다.<ref>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15p</ref> [[생원시 (조선)|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낙향하여 제자를 양성하며 지내다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통탄하며 조약 체결 16일 후 [[구례군]] 자택에서 음독 자살했다<ref>[[이덕일]] 의《근대를 말하다》중에서 [[김택영]], [[황현]] 및 [[이건창]] 등이 소개된 부분 [http://blog.city.go.kr/aswook/107748]{{깨진 링크|url=http://blog.city.go.kr/aswook/107748 }}</ref>. 자결하면서 남긴 〈[[절명시]]〉(絶命詩)는 [[장지연]](張志淵)이 주필로 있던 《[[경남일보]]》에 실렸고, 이는 [[경남일보 필화 사건]]의 원인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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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급제 == |
== 과거 급제 == |
2020년 4월 2일 (목) 02:19 판
황현
黃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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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신이 그린 황현의 초상화 | |
조선국 전라도 구례 관청 동몽교관 (朝鮮國 全羅道 求禮 官廳 童蒙敎官) | |
임기 | 1890년 2월 1일 ~ 1891년 2월 1일 |
군주 | 조선 고종 이형 |
이름 | |
별명 | 자(字)는 운경(雲卿) 호(號)는 매천(梅泉) |
신상정보 | |
출생일 | 음력 1855년 12월 11일 |
출생지 | 조선 전라도 광양군 (現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양시) |
사망일 | 1910년 9월 7일 | (54세)
사망지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구례군 (現 대한민국 전라남도 구례군) |
학력 | 1888년 생원시 복시에 장원 급제 |
경력 | 유학자, 시인, 문장가, 역사 저술가 |
정당 | 무소속 |
부모 | 황시묵(부) |
친인척 | 황기주(6촌 아우) 황의돈(재종질) 황윤석(삼종손녀) |
종교 | 유교(성리학) |
상훈 |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 추서 |
황현(黃玹, 1855년 음력 12월 11일(양력 1856년 1월 18일) ~ 1910년 9월 7일)은 대한제국 조선 왕조 말기의 선비로 시인, 문장가, 역사가, 우국지사이며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이다.
생애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자는 운경(雲卿)이며 호는 매천(梅泉)이다. 사학자 황의돈(黃義敦)은 그의 7촌 재종질이다. 그는 전라도 광양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전라도 함평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전라도 구례에서 성장했다. 1892년 봄 운현궁에서 화약이 터지고 여러 건물에 장치된 화약이 발각된 사건이 발생했다. 황현은 명성황후를 배후로 지목했다. 그에 의하면 이 사건은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 일가를 폭살하기 위해 벌였다.[1]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낙향하여 제자를 양성하며 지내다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통탄하며 조약 체결 16일 후 구례군 자택에서 음독 자살했다[2]. 자결하면서 남긴 〈절명시〉(絶命詩)는 장지연(張志淵)이 주필로 있던 《경남일보》에 실렸고, 이는 경남일보 필화 사건의 원인이 됐다.
과거 급제
사후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구례에 있는 황현의 집터에는 그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사당 매천사, 그리고 그의 유품을 전시한 유물관이 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