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 염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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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2년(공민왕 21년) 음력 10월 갑술일 공민왕은 젊고 잘생긴 남자들을 뽑아 설치한 [[자제위]] 소속의 [[한안]], [[홍륜]] 등을 시켜 자신의 후비들을 강간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들이 생기면 그 아들을 자신의 소생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때 [[익비 한씨]] 등은 이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실제로 임신까지 하였으나, 신비와 [[혜비 이씨]], [[정비 안씨]] 등은 그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였다<ref>《고려사》권43〈세가〉권43 - 공민왕 21년 10월 - 자제위를 설치해 온갖 불륜을 저지르게 하다</ref>.
 
공민왕이 시해 당하자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생몰년이나 능지에 대한 기록 역시 남아있는 것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공민왕과의 사이에서 소생은 없었다.
 
== 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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