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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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작품: 화진도독린운(和陳都督璘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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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비록 (드라마)|징비록]]》([[KBS]], [[2015년]], 배우:[[배도환]])
* 《[[징비록 (드라마)|징비록]]》([[KBS]], [[2015년]], 배우:[[배도환]])
* 《[[임진왜란 1592]]》([[KBS]], [[2016년]], 배우:[[조항훤]])
* 《[[임진왜란 1592]]》([[KBS]], [[2016년]], 배우:[[조항훤]])

이순신(李舜臣)의 화진도독린운(和陳都督璘韻)
■ 이순신(李舜臣)이 도독 진린(陳璘)에게 준 시

▒ 제 1수(第一首) ▒

賴天子勤恤 (뢰천자근휼)

遣大將扶危 (견대장부위)

萬里長征日 (만리장정일)

三韓再造時 (삼한재조시)


夫君元有​勇 (부군원유용)

​伊我本無知 (이아본무지)​

​只擬死於國 (​지의사어국)

​何須更費辭 (하​수경비사)​


다행히도 천자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장군을 보내 구원하게 하시었소.

만 리 먼 길 정벌 나온 바로 그날이

이 나라 삼한이 다시 살아난 때라오.


장군께선 본래부터 용감하시고

나는 본래부터 아는 것이 없다오.

다만 나라 위해 죽으려는 각오뿐이니

다시 무슨 긴 말이 필요 하리까.


▒ 제2수(第二首) ▒


若向中朝去 (약향중조거)

其於外國危 (기어외국위)

南蠻更射日 (남만경사일)

北狄又乘時 (북적우승시)


全節終須報 (전절종수보)

成功豈可知 (성공기가지)

平生心已定 (평생심이정)

此外有何辭 (차외유하사)


그대 만약 중원으로 가시고 나면

중원 밖의 이 나라 위태로워질 거요.

남쪽의 왜적들 또다시 설칠 테고

북쪽의 오랑캐도 그 틈을 노릴 때


절개 지켜 끝내 나라 은혜 보답할 뿐

성공 여부야 내 어찌 알 수 있으리오.

평생의 마음 이미 정해졌으니

이 밖에 무슨 말 또 하오리까.


■ 도독 진린(陳璘)이 次韻(차운)하여 이순신(李舜臣)에게 준 시


▒ 제1수(第一首) ▒

堂堂又赳赳 (당당우규규)

微子國應危​ (미자국응위)

​諸葛七擒日 (제갈칠금일)​

陳平六出時 (진평육출시)


威風萬里振 (위풍만리진)

勳業​四維知 (훈업사유지)​

​嗟我還無用 (​차아환무용)

​指揮且莫辭 (지휘차막사)​


당당하고 용감하신 그대 없었으면

이 나라 운명 위험하였으리.

제갈량처럼 여섯 번 사로잡고

진평처럼 여섯 번 계책을 내놓자


위풍은 만 리에 떨쳤고

공적은 세상에 두루 알려졌소.

아, 나는 더 이상 쓸모없으니 돌아가겠소.

지휘권을 돌려드릴 테니 사양 마시오.


▒ 제2수(第二首) ▒

不有將軍在 (불유장군재)

​誰扶國勢危 (수부국세위)​

​逆胡驅曩日 (역호구낭일)

妖​氛捲今時 (요​분권금시)


大節千​人仰 (대절천인앙)​

高名萬國知 (고명만국지)

聖皇求如切 (성황구여절)

​超去豈終辭 (초거기종사)​


만약 장군이 없었다면

그 누가 이 나라 운명 붙들었겠소.

지난날엔 오랑케 몰아내었고

오늘 에는 요망한 기운 거두시었네.


그대 큰 절개 모든 이 우러러 보고

그대 높은 이름 만국이 두루 안다오.

우리 황제 간절히 그대 보자 하시거늘

뛰어가지 않고 왜 끝내 사양하시오.


== 외부 링크 ==
== 외부 링크 ==

2019년 10월 16일 (수) 15:24 판

진린
陳璘
별명 작위광동백(廣東伯)
출생지 명나라 광둥 성 사오관
사망지 명나라 광둥 성 사오관
본관 광동(廣東)
친척 손자 진영소(陳泳素)
복무 명나라 군사 수군
복무기간 1562년 ~ 1598년
최종계급 명나라 수군 어위도총관
주요 참전 임진왜란, 정유재란
기타 이력 사후 태자소보(太子少保) 추증

진린(陳璘, 1543년 ~ 1607년)은 중국 광둥 지방의 무관(武官), 장군(將軍), 제독(提督)이다.

생애

1562년 명나라 관직에 출사하였다.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시 어위도총관 및 전군도독부도독(前軍都督府都督)으로서 5천 명의 수군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들어와 전라도 완도군 고금도에서 이순신(李舜臣)과 더불어 전공을 세워 광동백(廣東伯)에 봉해졌다. 처음에는 이순신(李舜臣)과 불화가 있었지만 이순신이 진린에게 수급을 양보하는 등 공을 세우도록 도움을 주자 점차 이순신에게 감복하여 진정으로 이순신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후 명나라 조정에 이순신의 전공을 상세하게 보고하여 만력제(萬曆帝)가 이순신에게 8가지 선물들(영패(令牌), 도독인(都督印), 귀도(鬼刀), 참도(斬刀), 곡나팔(曲喇叭), 독전기(督戰旗), 홍소령기(紅小令旗), 남소령기(藍小令旗))을 보내도록 하는 데 일조를 했다. 전쟁 당시 사용했던 무기는 총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란이 끝난 후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사망한 뒤에는 태자소보(太子少保)에 추종되고, 그의 손자 진영소(陳泳素)는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를 지내다가 명나라가 멸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난징으로부터 배를 타고 조선로 와서 남해장승포에 표착하였다가 조부인 진린이 공을 세웠던 강진 고금도로 옮겨 살았다. 그 후 다시 해남현 내해리로 이거하여 정착하였으므로 광동 진씨(廣東 陳氏)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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賴天子勤恤 (뢰천자근휼)

遣大將扶危 (견대장부위)

萬里長征日 (만리장정일)

三韓再造時 (삼한재조시)


夫君元有​勇 (부군원유용)

​伊我本無知 (이아본무지)​

​只擬死於國 (​지의사어국)

​何須更費辭 (하​수경비사)​


다행히도 천자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장군을 보내 구원하게 하시었소.

만 리 먼 길 정벌 나온 바로 그날이

이 나라 삼한이 다시 살아난 때라오.


장군께선 본래부터 용감하시고

나는 본래부터 아는 것이 없다오.

다만 나라 위해 죽으려는 각오뿐이니

다시 무슨 긴 말이 필요 하리까.


▒ 제2수(第二首) ▒


若向中朝去 (약향중조거)

其於外國危 (기어외국위)

南蠻更射日 (남만경사일)

北狄又乘時 (북적우승시)


全節終須報 (전절종수보)

成功豈可知 (성공기가지)

平生心已定 (평생심이정)

此外有何辭 (차외유하사)


그대 만약 중원으로 가시고 나면

중원 밖의 이 나라 위태로워질 거요.

남쪽의 왜적들 또다시 설칠 테고

북쪽의 오랑캐도 그 틈을 노릴 때


절개 지켜 끝내 나라 은혜 보답할 뿐

성공 여부야 내 어찌 알 수 있으리오.

평생의 마음 이미 정해졌으니

이 밖에 무슨 말 또 하오리까.


■ 도독 진린(陳璘)이 次韻(차운)하여 이순신(李舜臣)에게 준 시


▒ 제1수(第一首) ▒

堂堂又赳赳 (당당우규규)

微子國應危​ (미자국응위)

​諸葛七擒日 (제갈칠금일)​

陳平六出時 (진평육출시)


威風萬里振 (위풍만리진)

勳業​四維知 (훈업사유지)​

​嗟我還無用 (​차아환무용)

​指揮且莫辭 (지휘차막사)​


당당하고 용감하신 그대 없었으면

이 나라 운명 위험하였으리.

제갈량처럼 여섯 번 사로잡고

진평처럼 여섯 번 계책을 내놓자


위풍은 만 리에 떨쳤고

공적은 세상에 두루 알려졌소.

아, 나는 더 이상 쓸모없으니 돌아가겠소.

지휘권을 돌려드릴 테니 사양 마시오.


▒ 제2수(第二首) ▒

不有將軍在 (불유장군재)

​誰扶國勢危 (수부국세위)​

​逆胡驅曩日 (역호구낭일)

妖​氛捲今時 (요​분권금시)


大節千​人仰 (대절천인앙)​

高名萬國知 (고명만국지)

聖皇求如切 (성황구여절)

​超去豈終辭 (초거기종사)​


만약 장군이 없었다면

그 누가 이 나라 운명 붙들었겠소.

지난날엔 오랑케 몰아내었고

오늘 에는 요망한 기운 거두시었네.


그대 큰 절개 모든 이 우러러 보고

그대 높은 이름 만국이 두루 안다오.

우리 황제 간절히 그대 보자 하시거늘

뛰어가지 않고 왜 끝내 사양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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