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야구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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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金翰秀, [[1971년]] [[10월 30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이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대 [[대한민국]] 실업 야구를 주름잡았던 내야수 김영복이다.
'''김한수'''(金翰秀, [[1971년]] [[10월 30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개씨발호로 나무위키급 개폐급 병신 감독이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대 [[대한민국]] 실업 야구를 주름잡았던 내야수 김영복이다.


기복 없이 꾸준하고 안정된 수비, 정교한 타격 실력을 보여 준 선수로서 준수한 [[3루수]]로 꼽힌다. 연고지인 대구 출신은 아니지만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항상 튀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기복 없이 꾸준하고 안정된 수비, 정교한 타격 실력을 보여 준 선수로서 준수한 [[3루수]]로 꼽힌다. 연고지인 대구 출신은 아니지만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항상 튀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019년 9월 17일 (화) 00:49 판

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No.86 (2019년 10월 1일 경질 예정)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1년 10월 30일(1971-10-30)(52세)
출신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 186cm
체중 88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1루수, 3루수
프로 입단 연도 1994년
드래프트 순위 1994년 2차 1순위(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KBO / 1994년
마지막 경기 KBO / 2007년 10월 12일
대전한화
획득 타이틀
계약금 3억원
연봉 2억원 (2018년)
경력

선수 경력

지도자 경력

감독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년 시드니
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
아시아선수권 2003년 삿포로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남자 야구
올림픽
2000 시드니 야구
아시안 게임
2002 부산 야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3 삿포로 야구

김한수(金翰秀, 1971년 10월 30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내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개씨발호로 나무위키급 개폐급 병신 감독이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대 대한민국 실업 야구를 주름잡았던 내야수 김영복이다.

기복 없이 꾸준하고 안정된 수비, 정교한 타격 실력을 보여 준 선수로서 준수한 3루수로 꼽힌다. 연고지인 대구 출신은 아니지만 삼성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항상 튀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2]

선수 시절

아마추어 시절

초등학교 재학 시절 당시 한창 인기를 누리던 프로 야구를 접하면서 야구 선수에 대한 꿈을 키웠고, 5학년 때부터 야구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그는 광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야구 선수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우상이었던 빙그레장종훈을 1학년 때 만났는데, 그때 그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많이 들으면서 프로 입단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였다.[1][3][2]

삼성 라이온즈 시절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할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그는 199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역시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낮은 지명 순위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는 의아하다 싶을 정도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다.[1][3] 1994년 시즌 팀의 1루수 김성래,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김용국으로 이어지는 리그 최고 수준의 내야 수비진에서 그는 뛸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김용국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기회가 생겼고, 당시 감독이었던 우용득은 신인이었던 그를 과감하게 기용하였다. 프로 입단 첫 해 2할대 타율과 10홈런을 기록하며 준수한 모습을 보여 준 그는 병역 의무로 인해 다음해 방위병으로 2년간 복무를 이행하였다. 1995년 ~ 1996년 동안 그는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방위 복무 기간 동안 힘들게 재활 훈련을 했다. 부상 회복과 동시에 1996년 5월에 제대한 그는 1군 주전 자리를 꿰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고, 1997 시즌 이승엽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의 신예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1][3][4] 방위 복무 기간이었던 1995 ~ 1996년을 제외하고 매년 100경기 이상 출장하였다. 1998~1999, 2001~2002 시즌에는 3할 이상의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을 쳐 내며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특히 수비력을 인정받으며 2004 시즌까지 골든 글러브를 무려 6번이나 수상하였다. 특히 그 중 2001 ~ 2004 시즌 4회 연속 수상 기록은 한대화의 6회에 이어 해당 포지션 2위 기록이었다. 2002년 시즌에는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정규 시즌 1위와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5] 2000년 시드니 올림픽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된 그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각각 동메달과 금메달을 따는 데에 공헌하기도 했다.[1][3] 팀의 주장 자리를 후배 진갑용에게 물려 준 뒤 팀 내 대선배로서 어린 후배들과 함께 2005 ~ 2006 시즌 연속으로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일궈냈다. 그러나 2004년 시즌 후 체력이 조금 떨어졌다고 판단한 코칭 스탭은 2005년 시즌부터 그를 3루수에서 1루수로 포지션을 변경시켰다. 그의 타율은 2005 시즌 2할 9푼대를 기록한 후 점차 떨어지기 시작하여 2007년 시즌에 2할 3푼대까지 하락하였다.[3] 그는 2007 시즌 후반에는 그 해 특별 지명을 받아 입단한 채태인에게 1루수 자리마저 위협받았고, 2군으로 강등되는 등 수모를 겪으며 힘든 선수 생활을 보냈다.[2] 2007 시즌 후 고민을 거듭한 끝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야구선수 은퇴 후

2008년 시즌부터 2군 타격 코치로 활동했다.[6][7] 그의 공식 은퇴식은 2008년 3월 30일 KIA전에 앞서 치러졌다.[8] 자신의 등번호 5번은 현역 은퇴 후 후배 내야수 조동찬에게 물려주었다.[1] 2009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2군 타격 코치로 1년 간 몸담은 후 귀국했다. 2010년 시즌부터 다시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 코치를 맡았고[9] 2011년 시즌부터 1군 타격 코치를 맡았다. 2016년 10월 15일에는 류중일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제 14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김한수는 감독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보여주지 못하고 비판을 받고 있다.

프로 야구 선수로서 14시즌동안 통산 1500 안타를 쳤다. 또한 통산 끝내기 안타 10개로 이 부문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2]

수상 · 타이틀 경력

등번호

  • '50' (1994년 ~ 1995년)
  • '25' (1996년)
  • '5' (1997년 ~ 2008년)
  • '130' (2009년)
  • '86' (2010년 ~ 현재)

출신 학교

통산 기록

















2

3



















O
P
S












4
1994 삼성 24 103 309 279 41 76 13 2 10 31 6 3 15 52 .272 .313 .441 .754 123 5 2 12 1 2
1995 25 34 100 92 17 28 4 0 2 13 3 0 2 12 .304 .330 .413 .743 38 2 2 3 1 0
1996 26 30 59 54 7 10 0 0 0 1 1 0 3 21 .185 .241 .185 .427 10 2 1 1 0 0
1997 27 124 524 466 57 136 27 1 9 68 9 9 36 79 .292 .350 .412 .762 192 6 7 13 2 4
1998 28 126 503 463 65 139 24 1 15 80 5 3 19 70 .300 .332 .454 .786 210 19 6 9 6 1
1999 29 128 551 497 87 169 36 1 18 88 7 6 33 73 .340 .391 .525 .916 261 12 13 1 7 4
2000 30 126 519 464 54 122 26 1 7 57 8 5 30 73 .263 .322 .369 .690 171 7 13 6 6 0
2001 31 117 478 427 59 133 29 2 13 61 3 2 28 57 .311 .366 .480 .846 205 11 13 2 8 3
2002 32 127 541 486 69 151 23 1 17 76 4 2 35 61 .311 .371 .467 .838 227 15 14 2 4 2
2003 33 131 532 478 67 141 23 1 17 70 5 2 29 57 .295 .354 .454 .808 217 20 17 4 4 0
2004 34 133 558 498 60 135 30 1 16 84 1 2 30 79 .271 .335 .432 .767 215 23 20 6 4 2
2005 35 114 465 406 55 119 18 0 15 73 1 0 35 68 .293 .372 .448 .821 182 9 18 3 3 3
2006 36 103 396 343 41 87 15 0 7 54 6 3 32 54 .254 .340 .359 .699 123 12 15 2 4 0
2007 37 101 317 289 25 68 11 1 3 26 0 2 14 44 .235 .283 .311 .594 90 6 7 2 5 0
KBO 통산 : 14년 1497 5582 5242 704 1514 279 12 149 782 59 39 341 800 .289 .346 .432 .778 2264 149 148 66 55 21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각주

  1. KBS N Sports아이 러브 베이스볼》〈레전드 Archived 2013년 12월 13일 - 웨이백 머신〉, 2010년 9월 14[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5[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일 2회 연속 방송.
  2. 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김한수, 아버지는 등으로 말한다"
  3. 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삼성의 김한수"
  4. 데일리안 - 2009년 8월 기사 "‘은퇴’ 김한수… 1997년 그리고 세대 교체"
  5. 매일신문 - 2009년 8월 기사 "삼성 ‘골고루 한 방’이 4강권 이끈다"
  6. 매일신문 - 2008년 1월 기사 "대표적 삼성맨 양준혁·김한수… 새해엔 ‘각자의 길’"
  7. 스포츠 칸 - 2008년 1월 기사 "김한수 ‘연봉킹’… 3억 5,000만원 도장 코치진 최고 등극"
  8. 스포츠 서울 - 2008년 3월 기사 "김한수 은퇴, 야구 선수로서 행복했었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9. 일간 스포츠 - 2010년 9월 기사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 대접 ‘톡톡’"
  10. 매일신문 - 2010년 5월 기사 "선수와 시민이 함께 페어 플레이 정신을"
  11. 삼성 라이온즈 프로 야구단 웹사이트 - 선수단 연도별 개인 표창
  12. 삼성 라이온즈 프로 야구단 웹사이트 - 선수단 골든 글러브 수상자

외부 링크

전임
류중일
제14대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16년 10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