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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9년]] (효종 10) 3월 사액(賜額)의 윤허(允許)가 내려졌다.
* [[1662년]] (현종 3) [[조선 현종|현종]]의 어필로 [[장성 필암서원|「筆巖」]]이라 선액(宣額)하고, 예조정랑 윤형계(尹衡啓)를 예관(禮官)으로 보내 사제(賜祭) 하였다.(사제문은 신형(申炯)이 찬하였다)
* [[1672년]] (현종 13) 봄 3월에 증산동의 지대가 낮아 물난리로 흙다리가 위험해지는 등 수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는 공론이 있어 현재의 위치인 해타리(海打里)로 옮기고, 마을 이름도 [[필암리]](筆岩里)라 하였다. 이건(移建)은 원장 [[송준길]](宋浚吉)의 협조하에 남계 이실지(李實之. 1624~1702), 기정연(奇挺然. 1627~?), 박승화(朴升華. 백우당 증손)등의 노력으로 완료되었다.
* [[1786년]] (정조 10) 2월 [[장성 필암서원]]에 제자이자 사위인 고암(鼓巖) 양자징(梁子澂)을 종향 하였다.
* [[1827년]] (순조 27) 순창 유림의 공의(公議)로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 「어암 서원」(魚巖 書院)을 창건하여 제향(祭享)하고, 율곡 [[이이]], 송강 [[정철]], 자연당 김시서를 종향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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