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1,325 바이트 추가됨 ,  1년 전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 {{좌표|35|12|N|128|05|E|region:KR_type:city|display=title}} ======
{{다른 뜻 넘어옴|진양군|조선의 왕족|진양군 (왕족)}}
{{다른 뜻|진저우 시 (스자좡 시)||중국 허베이 성의 시}}
{{본문|진주논개제}}
[[진주논개제]]는 매년 5월에 개최되며, 의기 [[논개]]의 아름다움과 그 애국심을 기리고 있으며, [[의암]]에서 왜장과 함께 빠져죽은 충절의 넋을 기리고 있다.
 
==== 전국 소싸움 대회 ====
{{본문|진주전국민속투우대회}}
농업에 과학을 접목한 기존 농업박람회에 식품·축산분야 전시와 체험을 추가하면서 농업의 과학화와 산업화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세계시장 개방화에 따라 어려움에 처해있는 우리농업의 현실과 미래농업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공간을 마련하고도시민에게는 첨단농업 기술전시와 농업을 이해할 수 있는 체험형 박람회로 운영하고 있다. 첨단농기계관, 농자재관, 해외관/미래산업관, 녹색식품관, 6차산업관, 종자생명관, 펫산업관으로 구성된다.
 
 
== 언론 ==
==== 진주 문화자산과 문화산업 ====
[[1909년]] [[10월 15일]] 창간한 한국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가 진주시 상평동에 자리를 잡고 있다. 경남일보는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문이며<ref>[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about] {{웨이백|url=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about |date=20081012110938 }} 경남일보의 회사소개</ref>, 제1대 주필로는 시일야 방성대곡으로 필화를 입은 위암 [[장지연]] 선생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매천 [[황현]]의 '절명시'를 실어 정간을 당하는 등 일제와 공산주의, 군사정권에 항거하다 수차례 강제 폐간을 당하였고,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작업으로 그 해 [[11월 25일]] 강제 폐간을 당했다가 [[1989년]] [[11월 25일]] 신경남일보로 개칭하여 복간하였다. 2000년 다시 제호를 경남일보로 변경하였다.<ref>[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history] {{웨이백|url=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history |date=20080316220558 }} 경남일보의 연혁</ref>
진주의 민속예술 분야 문화자산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진주삼천포농악’,'진주검무'등 2종목의 국가무형문화재와 ‘한량무’, '진주포구락무', '진주교방굿거리춤', '신관용류가야금 산조', '진주오광대' 등 5종목의 경상남도 무형문화재가 있다. 한국형 써커스‘솟대쟁이놀이’는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를 앞두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 기록자산인 ‘교방가요’는 153년 전 저술되어 지역의 민속예술 전통을 뒷받침 해왔다. 현재 진주의 문화자산에 기반 한 공연예술 산업에는 무형문화재보존회 8개와 전문예술단체 12개, 협회 11개, 생활예술교육단체 16개 등 총 47개 집단이 활동하고 있다.
공예분야의 문화자산으로는 ‘소목장,'장도장','두석장' 등 3종목의 경상남도 무형문화재와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진주비단(실크) 문화가 있다. 또한 노동부에서 지정한 1명의 대한민국 가구제작 명장이 활동한다. 전승된 전통 공예기술은 185개의 공예 제작업체를 통해 산업화되고 있다.
 
== 언론 ==
[[1909년|19의 9년]] [[10월 15일]] 창간한 한국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가 진주시 상평동에 자리를 잡고 있다. 경남일보는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문이며<ref>[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about] {{웨이백|url=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about |date=20081012110938 }} 경남일보의 회사소개</ref>, 제1대 주필로는 시일야 방성대곡으로 필화를 입은 위암 [[장지연]] 선생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매천 [[황현]]의 '절명시'를 실어 정간을 당하는 등 일제와 공산주의, 군사정권에 항거하다 수차례 강제 폐간을 당하였고,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작업으로 그 해 [[11월 25일]] 강제 폐간을 당했다가 [[1989년]] [[11월 25일]] 신경남일보로 개칭하여 복간하였다. 2000년 다시 제호를 경남일보로 변경하였다.<ref>[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history] {{웨이백|url=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history |date=20080316220558 }} 경남일보의 연혁</ref>
 
== 자매 도시 ==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Jinju}}
*☃☃ [http://www.jinju.go.kr/ 진주시청 (공식)]ㅈ{{언어링크|ko|en|ja|zh}} [http://www.jinju.go.kr/ 진주시청 (공식)]
* [https://web.archive.org/web/20180806152957/http://jinjunongae.com/ 진주 논개]
* [http://www.gaecheonart.com/ 개천예술제]
* [http://www.gnnews.kr/ 경남일보]
* [http://www.gmfc.kr/ 경남미디어영상위원회]
 
<br />{{지리적 위치
|중앙 = 경상남도 진주시
|북 = [[합천군|경상남도 합천군]]

편집

3

둘러보기 메뉴